일진, 경영권 이양 완료됐지만 편법상속 뇌관 여전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10.05 13:19
  • 호수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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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뺨치는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 실태] 중견에 칼 빼든 공정위와 국세청 타깃 되나

일진그룹은 재계 순위 50위권의 중견기업이다. 그룹의 모태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1968년 설립한 일진금속공업(현 일진전기)이다. 자택 앞마당에 마련한 공장에서 종업원 2명으로 출발한 일진은 전기금속 분야를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 결과, 지금은 국내외에 4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룹 매출은 2006년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이후에도 높은 성장세가 이어졌고, 현재는 3조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위상과 달리 일진이라는 사명(社名)은 일반에 익숙하지 않다. 사업 분야가 전기·통신·부품·소재 등에 집중돼 있고, 거래 방식도 기업 간 거래(B2B)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일진그룹 본사 건물과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 시사저널 포토

 

허진규 회장 2세들에 경영권 승계 마무리


창업주인 허 회장은 올해 79세의 고령에도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다. 허 회장은 부인 김향식 여사와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사인 일진전기는 장남 허정석 일진그룹 부회장에게 대물림됐다. 그는 현재 지주사 격인 일진홀딩스를 통해 일진전기·일진다이아·아이텍 등 자회사와 마그마툴·일진복합소재·매직드림 등 손자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를 정점으로 한 소그룹을 맡았다. 그가 지분 56.36%를 보유한 일진머티리얼즈 아래 일진엘이디·일진유니스코·일진건설·오리진앤코·아이알엠 등 계열사를 거느린 구조다.


허 회장의 두 딸은 계열사 지분을 상속받았다. 경영은 허 회장의 사위들이 맡았다. 장녀 허세경씨는 일진반도체와 루미리치를 넘겨받았다. 일진반도체는 허세경씨(34.2%)와 남편 김하철 일진반도체 대표(8.1%)가 지분 42.3%를 보유하고 있다. 일진반도체가 48.9%의 자사주를 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허세경씨 부부의 지배력은 확고하다. 루미리치의 최대주주는 일진반도체(25.54%)이고 김하철 대표가 2대 주주(21.47%)다. 차녀 허승은씨의 몫은 일진자동차다. 허승은씨(55.56%)와 남편 김윤동 일진자동차 대표(44.44%)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일진자동차는 혼다 차량 판매와 정비서비스 등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형제간 계열분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지금도 형제들 기업 간 지분 관계는 없다. 별도의 지분 정리 작업 없이도 어렵지 않게 계열분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차남 허재명 대표의 최근 행보도 계열분리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그는 최근 민간 아파트 건설업에 진출키로 했다. 이를 위해 계열사인 삼영글로벌의 사명도 일진건설로 변경했다. 삼영글로벌은 이전까지 토목공사에 주력해 온 건설사다. 업계에서는 허 대표가 민간 아파트 건설업에 진출한 것을 향후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해석한다. 


이처럼 일진그룹은 경영권 이양과 형제간 교통정리가 순조롭게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을 동원했다는 점이 뇌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세가 소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 마련한 재원을 바탕으로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가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된 이후까지도 계속되고 있어 강도 높은 재벌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세 승계의 창구로 지목된 것은 일진파트너스다. 장남 허정석 부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다. 당초 일진파트너스 지분은 일진전기(61.8%)와 일진다이아몬드(30.9%)가 전량 보유하고 있었다. 허 회장은 허 부회장이 일진중공업 대표이사로 승진하며 경영 일선에 나선 2006년부터 일진파트너스 지분 매입에 나서 2007년 지분 100%를 확보했다. 일진파트너스 지분 전량은 2010년 다시 허 부회장에게 넘어갔다.

 

ⓒ 시사저널 미술팀


승계 창구 일진파트너스 내부거래 현재진행형


그 직후 금융업이던 사업 내용이 운송업으로 전환됐다. 일진파트너스는 일진전기의 제품 운송업무를 전담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특히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매출 전체를 내부거래로 채웠다. 이로 인해 2009년 8억원에 불과하던 일진파트너스 매출은 2010년 33억원, 2011년 90억원, 2012년 135억원 등으로 수직 상승했다. 2013년부터 외부 일감을 수주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줄긴 했지만, 78.73%(총매출 128억원-내부거래액 100억원)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일진파트너스는 내부거래를 통해 확보한 재원을 바탕으로 일진홀딩스 지분 매입에 나섰다. 2013년 허 회장의 일진홀딩스 지분 전량(15.27%)을 매입하며 지분율을 24.64%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허 부회장의 지분 29.1%를 더하면 그의 일진홀딩스 지분율은 53.74%에 달한다. 허 부회장이 ‘일진파트너스→일진홀딩스→일진전기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대한 장악력을 공고히 하게 된 것이다. 


일진파트너스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도 아랑곳 않고 지금까지도 내부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4년 74.27%(187억원-139억원), 2015년 65.80%(133억원-87억원), 2016년 78.48%(151억원-118억원) 등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지난해에는 내부거래율이 43.61%(195억원-85억원)까지 낮아졌다. 외부 매출을 늘리고 내부거래를 다소 줄인 결과지만, 다른 그룹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일진그룹은 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가 아닌 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거래라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진전기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려면 고난도의 물류작업이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특수물류 사업을 영위하는 일진파트너스와 거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장남 허정석 일진그룹 부회장(왼쪽)과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 ⓒ 연합뉴스·뉴스1


일진다이아·일진디앤코 등도 내부거래 많아


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사명을 올린 계열사가 일진파트너스뿐만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곳이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업체인 일진다이아몬드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55.59%)다. 허 부회장의 간접지배 아래 있는 계열사인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일진다이아몬드의 내부거래 비중과 규모를 계속 늘려 갔다는 점이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2년 47.33%(963억원-456억원), 2013년 48.66%(877억원-427억원), 2014년 57.12%(802억원-458억원), 2015년 57.28%(869억원-498억원), 2016년 63.68%(856억원-545억원), 2017년 64.79%(973억원-630억원) 등이었다.


일진홀딩스의 100% 자회사인 건물 임대업체 일진디앤코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매년 내부거래 비중을 40% 전후로 유지했지만 내부거래 규모는 계속 증가세를 보였다. 일진디앤코의 내부거래율은 2013년 40.76%(63억원-26억원), 2014년 38.46%(68억원-26억원), 2015년 40.05%(68억원-27억원), 2016년 42.82%(70억원-30억원), 2017년 41.80%(75억원-31억원) 등이었다. 


이 밖에 ‘장녀 회사’인 일진반도체도 내부거래율이 높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0년 17.96%(195억원-35억원)에서 2011년 20.67%(206억원-42억원), 2012년 59.24%(152억원-90억원) 등으로 증가했다. 다만 이 회사는 2013년부터 매출이 급락했다. 또 다른 계열사인 일진엘이디에 주요 매출원인 LED패키징 사업을 영업양수도 방식으로 넘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일진반도체는 내부거래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각각 10억원과 11억원의 매출 전량이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나왔다. 2016년과 지난해의 내부거래율도 66.74%(5억6600만원-3억7800만원)와 47.92%(7억4000만원-3억5500만원)였다.


이처럼 일진그룹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이후에도 내부거래를 계속해 올 수 있던 배경은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법’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을 규제 대상으로 정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 대상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세청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세금 없는 부(富)의 대물림’을 집중 점검하고 나섰다. 일감 몰아주기가 일진그룹에 상당한 리스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진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대해선 별도로 정리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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