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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감옥서 펼쳐진 인간 파괴의 ‘고문’ 잔혹사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15화 - 유관순 순국 98주년 즈음해 되짚어본 식민지의 ‘감옥 속 감옥’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8(Fri)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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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8일은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 지 꼭 98년이 되는 날이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이끌다가 붙잡힌 유 열사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친지들이 다시 항소할 것을 권유하자 유관순은 “삼천리 강산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습니까”면서 이를 포기했다고 한다. 실로 18세 소녀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식민지 현실을 정확히 간파한 말이다. 주권을 뺏긴 어둠의 나라는 창살 없는 감옥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식민지라는 감옥 속에서도 '진짜' 감옥이었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들어서면 한 인간이 파괴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곳 지하실에서는 고춧가루 섞은 물을 수감자 코에 들이붓거나 꼬챙이로 손톱 밑을 후비는 등 끔찍한 고문이 이뤄졌다. 대못을 박은 상자에 가두고 이리저리 흔드는 '궤짝 고문' 또한 악명 높았다. 이런 고문은 식민지인들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의도로 자행됐다. 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이 식민통치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감옥 짓기'였다. 


1861년 프랑스는 베트남 남동쪽 꼰다오섬에 식민지 감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항불(抗佛) 투사들은 발가벗겨지고 발에 족쇄가 채워진 채 구타와 고문에 시달렸다. 모두 11개 옥사 중 고문이 이뤄진 4번 옥사는 '호랑이굴'로 알려졌다. 호랑이를 잡아 가두는 우리 구조와 조련하는 방식이 비슷한데서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이런 '프랑스식' 호랑이굴은 지붕이 없는 1.65평의 독방이 60개씩 두줄로 이어져 있었다. 간수들은 각 독방의 천장에서 긴 죽창으로 죄수들을 찔러대며 맹수 대신 인간을 길들였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있는 호아로 감옥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문이 이어졌다. 1901년 프랑스 식민당국이 만든 이 감옥에는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식' 호랑이굴이 생겼다. 1964년부터 북베트남 간수들은 미군 전쟁포로를 뙤약볕 아래 한 사람 정도 들어갈 크기의 철장에 가두고 창으로 찌르는 고문을 일삼았다. 프랑스에서 배운 고문 방식을 미군에게 고스란히 써먹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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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도 식민지 감옥에서 경찰로 근무​

 

이곳에 갇힌 미군 포로 중 잘 알려진 인물로는 지난 8월에 사망한 존 메케인 상원의원을 들 수 있다. 미 해군 조종사였던 그는 1967년 베트남 전쟁 때 자신이 몰던 비행기가 미사일에 맞아 추락하는 바람에 포로로 붙잡혔다. 호아로 감옥에 수감된 그는 5년 반 동안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고문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그의 아버지가 미군 태평양 사령관으로 부임하자 북베트남 당국은 조기 석방을 제의했다. 이때 메케인은 "나만 먼저 나갈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가 미국 보수의 양심으로 존경받아 온 이유가 아닐까 싶다.

미얀마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 역시 감옥을 여럿 만들었다. 그 중 정치범들은 주로 양곤의 인세인 감옥에 수용하고 갖은 고문을 일삼았다. 영국식 고문으로 특이한 건 '까젠'이 있었다. 미얀마 말로 '온몸을 묶는 틀'이란 뜻을 가진 고문 형태인데, 대나무 막대기로 형틀을 짜서 땅에 박고 수감자의 사지를 벌여 손목과 발목을 끈으로 묶었다. 4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아 살점이 터져 나가기 일쑤였다. 또 수십일 동안 그대로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경우도 허다했다 .

아이러니한 것은 정치 풍자소설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악명높은' 인세인 감옥의 경찰로 근무한 사실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오웰은 영국의 명문 이튼 스쿨을 졸업한 후 미얀마 근무를 자원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31년 《교수형》이란 에세이를 발표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죄수가 곧 죽을거란 사실을 잊은 듯 신발이 젖지 않도록 물웅덩이를 피하는 부분이 인상적인 글이었다. 이 글에서 그는 '식민지 감옥에서 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제국주의의 부당함을 보았다'고 적었다.

조지 오웰이 인세인 감옥에 근무할 무렵 우 위사라(1889~1929)라는 스님이 수감됐다. 미얀마 불교 민족주의를 이끈 그는 영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체포와 구금을 반복하던 우 위사라는 1929년 무기징역에 처해지자 단식투쟁을 펼쳤다. 스님의 죽음이 몰고올 파장을 두려워한 식민당국은 눈, 코, 입, 귀나 심지어 항문으로도 음식물을 집어 넣었다고 한다. 살리기는 커녕 되레 고문을 한 셈이었다. 무려 166일 동안 투쟁 끝에 숨을 거둔 스님은 "영리하게 살아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민중을 '멍청한 노예'로 만드는 영국에 맞서 싸우란 뜻이었다. 결국 그의 사망 4개월 후 수만명의 분노한 '노예'들은 미얀마 최대의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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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빠삐용》처럼 감옥을 다룬 영화를 보면 탈옥자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식민지 감옥의 현실은 어땠을까? 높은 담벼락과 철조망이 쳐진 서대문형무소와 사방이 망망대해로 둘러쌓인 꼰다오섬 감옥은 탈옥에 성공한 기록이 없다. 미얀마 감옥도 마찬가지다. 반면 베트남 호아로 감옥에서는 두 차례 탈옥 사례가 있다. 1945년 공산당 지도자 '도 무오이'가 100명의 동료들과 감방의 쇠창살을 자르고 하수도를 통해 탈옥한 적이 있다. 또 1951년 성탄절에는 16명이 탈옥을 시도해 5명이 성공했고 이들은 다시 독립투쟁에 합류했다.


만주에서 펼친 우리 항쟁사에도 탈옥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1935년 중국 지린성 연길 감옥에서 벌어진 탈주사건이 그것이다.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제는 조선인 저항세력들을 이곳에 잡아 넣었다. 그 중 김명주를 비롯한 17인의 결사대는 단오 명절에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일본인 지도관과 간수들을 죽이고 수감자 49명과 함께 도주했다. 추격해 온 일본수비대와 교전 끝에 두 명이 사살됐고 부상 당한 이들도 많았지만 50명 정도가 항일근거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이었다. 베트남 탈옥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무장투쟁을 이어갔고 무송과 장백 전투에서 일본군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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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유언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유일한 슬픔이다"

 

지난 1월 필자가 연길 감옥 옛터를 찾았을 때 비문에 새겨진 '연길감옥가'란 노래 가사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 단식투쟁을 하거나 처형장에 끌려갈 때면 온 감방이 이 노래로 목소리를 합쳤다고 한다.

“~폭탄차고 싸우던 몸이/ 연길감옥 갇힌 뒤에 몸은 여위여도 ~ 두발에 족쇄 차고 자유 잃은 몸/ 네 고문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이 노랫말 처럼 베트남 감옥에서도 고문에 굴하지 않은 여성 애국열사가 있었다. 보티사우(1933~1952)는 14살 때 프랑스군에게 수류탄을 던져 한 명을 죽이고 1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2년 후에는 민족반역자인 동족을 폭탄으로 처단하려다 체포되었다. 이처럼 나라를 빼앗기면 어린 학생이 책 대신 폭탄을 들게 되는 모양이다. 꼰다오 감옥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사형을 당한 보티사우는 "눈가리개를 풀어달라, 조국 산하를 보며 죽고 싶다"라며 두 눈을 뜨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의 나이 겨우 19살이었다.

마치 어린 나이에도 총칼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외친 유관순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두 사람 모두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고 끝까지 항쟁 의지를 꺾지 않았다. 유관순 역시 숨을 거두기 전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다"란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마침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감옥인 서대문형무소가 세워진 지 110년이 되는 해다. 조지 오웰이 미얀마에서 목도한 '제국주의의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은 역설적으로 우리 감옥의 항쟁사를 웅변한다. '소녀' 유관순 조차 일제 침략의 부당함에 맞서 재판을 거부했고 옥중에서도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감금, 고문, 처형이라는 제국주의가 휘두른 '흉기'는 수많은 지사와 열사를 낳았고 오히려 항쟁의 불꽃을 더욱 지폈다고 여겨진다.

그나저나 지금 이 땅에는 나라에 목숨을 바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순국 98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 더욱 되새겨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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