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딥체인지’, 4차 산업 뉴노멀 될 수 있을까
  • 오상태 KOFI R&D(한국 4차산업 연구소) 대표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8 12:12
  • 호수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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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4차 산업 오디세이’] ‘혁신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보다 더 과감한 시스템 전환 필요해

 

[편집자 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경쟁적으로 과감한 변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동남아 등 후발주자들도 하루가 멀다 하게 변화의 속도를 내고 있다. ‘재벌’ 경제란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의 형편은 어떨까. 대한민국 4차 산업의 수준은 과연 어디에 와 있을까. 시사저널은 AI(인공지능)・IoT(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 하이테크 전문가들의 냉정한 현실 직시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4차 산업 현주소를 들여다보고자 ‘4차 산업 오디세이’라는 새 연재를 마련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9월1일 취임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년간 SK그룹은 재계순위 3위의 입지를 탄탄히 굳히는 등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최 회장 취임 당시이던 1998년 32조원이던 그룹 자산은 지난해 말 192조6000억원으로 6배 증가했다. 매출은 36조원에서 158조원으로 4배 이상 상승했다. 

 

SK의 거침없는 성장은 최 회장이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 비즈니스를 주도하고,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면서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을 비즈니스에 접목시키는 등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란 평가를 낳기도 한다. 특히 미래를 내다본 성공적인 투자는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이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업황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해 누구도 인수하려 하지 않았고 SK 내부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었지만, 최 회장이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며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최근 최 회장이 ‘사회적 기업’ 등을 내세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주목되지만,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딥체인지를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을 선언한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다.

 

최태원 SK회장이 2015년 8월25일 경기도 이천시에서 열린 SK하이닉스 M14 반도체공장 준공 및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산다”는 최 회장의 도전 주목

 

기획연재 ‘4차 산업 오디세이’의 첫 회를 열면서 수많은 기업 중에 우선 SK를 주목한 것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젊은 그룹총수가 ‘딥 체인지’ 등을 언급하면서 향후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정면으로 강조하고 나선 점 때문이다. 

 

사실 ‘딥체인지(Deep Change)’는 유식한 표현이나 구호가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개방형・공유형 경제환경에 대한 ‘뉴SK’의 새로운 성장전략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업 브랜드 제고를 위한 사회공헌활동의 제한적 공간을 벗어나 사회적 동반성장을 통한 가치주도형 변화, 즉 새로운 시스템을 향한 과감한 혁신 디자인이란 얘기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 글로벌 기업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소유의 인프라와 지적 재산권・혁신기술을 공유하면서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개방형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경쟁・제품경쟁’의 시대가 저물고, 플랫폼・공유인프라 경쟁으로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미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휴머니즘을 통한 개방형 혁신으로 사회적 가치창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그룹도 혁신을 향한 강도 높은 해법들이 쏟아지고, 계열사 정관에도 ‘딥체인지(근원적 변화)’ 경영철학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계열사별 실천계획이 경쟁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아직은 새로운 전환의 맹아를 만들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지만, “사회와 함께 근본적인 변화”라는 최태원식(式) 공유경제가 시험대를 넘어 구체적인 사업모델로 구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성장전략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비즈니스모델은 물론 기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든데스 출구전략으로 선택한 ‘딥체인지’가 어떤 미래가치를 창출할지 기대가 큰 탓이다. ‘가치’ ‘시스템’ ‘인재’라는 혁신의 삼각편대로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산다”는 최 회장의 도전에 한국경제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 대기업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대처가 더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딥체인지’가 한국경제의 뉴노멀(New Normal) 이 될 것인가? 

 

 

대담한 배팅 평점 주기엔 부족…아직 가야할 길 멀고 험난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업의 이윤추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넘어 자본주의 기업이 가지는 도덕적・윤리적 맹점을 완화 내지 해소하는 대담한 배팅이라는 평점을 주기에는 아직 이른 듯하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비즈니스모델의 근본적인 혁신이 되려면, 가치와 시스템, 인재라는 세 가지 동력의 동시적 융합이 필요하다. 

 

첫째, 기업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원적 인식변화이다. 물량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기업들은 ‘지속가능한 역동성’을 위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에 나서고 있다. 이윤확대를 위한 효율성과 경쟁력이라는 경제가치를 넘어 ‘커뮤니케이터’로서 기업의 사회가치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물질적인 부의 창출에 머물지 않고 사회를 위한 정신적・문화적 부를 창조하는 시스템의 전환이다. 이제 사회는 생산제품과 자산의 가치만으로 기업을 판단하지 않는다. 사업구조와 기업문화 전환이라는 하향식 혁신이 아닌 ‘혁신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혁신과 변화의 주체인 ‘인재’ 생태계에 대한 근원적 변화가 필요하다. 워킹 플랫폼의 변화로 기업 내 강력한 조직력으로 효율을 추구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인재영입・육성・관리에 대한 다양한 솔루션으로 ‘개방과 공유’라는 네트워크의 방향성을 제대로 살려내야 할 것이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 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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