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에게 잘 보이려 ‘이베이’ 창업했다 대박 터뜨려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4 13:57
  • 호수 15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퍼스트 무버(First Mover)들의 창업 동기는 이것


청년 스타트업 교류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해 홍콩과학기술대학(HKUST)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대학 관계자는 한 졸업생을 소개해 줬다. 전 세계 드론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DJI(Dà-Jing Innovations)의 창업자 왕타오(汪滔)였다. 그가 재학 중 만들었다는 여러 종류의 드론이 강의동 사이 공유공간에 전시돼 있었는데, 학생들은 그를 자랑스러운 롤 모델로 여긴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영문 이름 ‘프랭크 왕(Frank Wang)’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980년 중국 저장성(浙江省)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부모는 성적이 오르면 그가 원하는 원격 조종이 가능한 장난감 헬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생소한 물건을 다루다 보니 헬기가 자꾸 추락했다. 이를 계기로 자동제어가 가능한 헬기에 관심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음식점 평판 사이트 ‘다베로그(食べログ)’에서 라멘 가게를 검색하면 약 5만1000개가 나온다(2018년 8월 현재). 그 가운데 1위에 오른 가게가 도쿄 신코(シンコ)에 있는 ‘잇토(一燈)’다. 이용자 평점은 4.08점. 4점 이상을 기록한 가게가 전체 90만 개 음식점 중 0.05%밖에 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인기다.

 

이베이를 창업한 피에르 오미디어 ⓒ REUTERS·EPA연합

 

어릴 때부터 창업 준비한 혁신가들


이 가게 창업자 ‘사카모토’가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프랭크 왕과 마찬가지로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부모는 야채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 늘 귀가가 늦었고, 이 때문에 제때 식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엄마가 해 준 밥을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직접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부모는 아들의 요리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부터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창업가들의 경우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한 후에야 아이디어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례에서 보듯 혁신가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아이디어를 얻고, 창업을 목표로 차근차근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 


경매 플랫폼의 선도기업 이베이(eBay)를 창업한 피에르 오미디어(Pierre Omidyar)도 마찬가지다.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던 중 페즈(Pez) 디스펜서 수집가인 여자친구 웨슬리(Wesley)를 만난다. 그녀가 미국 전역에서 다양한 종류의 페즈 디스펜서를 사고팔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웨슬리에게 점수를 따고자 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러나 최초로 팔려 나간 물건은 망가진 레이저 포인터였다. 못 쓰는 물건을 팔았다는 죄책감에 피에르 오디미어는 구매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레이저 포인터가 망가진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구매자로부터 “망가진 레이저 포인터를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답변을 받고 안도하며 본격적인 사업화의 길로 나서게 된다. 동기를 부여해 준 그 여자친구는 아내가 됐고, 지금도 구글에서 ‘페즈 디스펜서’를 치면 이베이의 상단에 다양한 페즈 디스펜서가 검색된다. 아내로부터 아이디어가 시작됐으니 그만한 배려는 당연할 것 같긴 하다.


스타벅스의 회장으로 6월말 회사를 떠난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그가 드립 커피 메이커를 주로 파는 스웨덴 기업 햄머플래스트(Hammarplast)의 판매 책임자로 근무할 당시, 시애틀의 작은 커피점에서 커피 메이커를 대량으로 주문한 점에 주목했다. 수개월의 관찰 결과 신선하게 배전(roast)한 원두커피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이탈리아풍의 예술적 낭만이 살아 있음에 매료되어 그 작은 커피점으로 직장을 옮기게 된다. 익히 알려진 대로 스타벅스는 당시 3개의 스토어에 불과한 소규모 커피 소매업체였지만 미래 비전을 보고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스타벅스의 모토는 ‘정서적 일체감’이다. 기업과 종업원, 그리고 고객이 신뢰와 믿음으로 관계를 갖도록 모델링했다. 그 배경에는 어릴 적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의 직업은 기저귀를 수거하고 배달하는 트럭 운전사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직장에서 발목을 삐는 사고를 당해 한 달 이상 깁스를 한 채 쉬어야 했다. 그런데 회사는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고, 결국 아버지는 버림받아 인생의 패배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를 지켜본 슐츠가 ‘소외되지 않는 조직’을 모토로 삼았다.

 

스타벅스의 회장이었던 하워드 슐츠


하워드 슐츠처럼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한 경우는 아주 많다. 지금은 본사가 독일로 옮겨간 DHL의 창업자 래리 힐브룸(Larry Hillblom)도 버클리 법대에 재학 중에 한 보험회사에서 택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하면서 두 가지 점에 의문이 생겼다. ‘더 빠르게 배달할 수는 없을까?’와 ‘국제 택배로 확대할 방법은 없을까?’였다. 때마침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가 전 세계 신용카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래리 힐브룸은 이전부터 사용하던 항공여행카드(Air Travel Card)와 결합, 국제운송 사업에 도전해 오늘에 이른다.

 


국내에도 선도적인 창업가 많아 


우리나라 음식업계에도 경험에서 나온 창업가들이 많다. 치킨업계의 선도업체인 BBQ 윤홍근 회장은 대상그룹에 재직할 당시, 배달치킨 사업모델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뛰쳐나와 창업했다. 전 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인 조동민 ‘대대에프씨’ 대표도 병아리 감별사로 호주 취업이민을 준비하다가 좌절되자 치킨공장을 차려 성공했다. 


이들 창업가와 일반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 하나다. ‘도전(challenge)’ 그것뿐이다. 일단 시작하면 시장이 더 나은 길을 가르쳐준다. 필자도 비즈니스 정보를 전역장교들에게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춰 국방일보에 기고를 했다. 전역자들이 민간 시장의 트렌드를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의외로 민간인들에게 연락이 많아 민간시장으로 목표를 수정해 오늘에 이른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곳에 절대 갈 수 없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