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통치 홍보 수단 ‘멍텅구리 컴퓨터’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3 11:40
  • 호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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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대부분 인터넷 접속 안 돼…가상화폐 채굴만 열 올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에서 나타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컴퓨터와 정보기술(IT) 분야다. 공장·기업소의 생산라인 관리에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새로 문을 연 현대식 쇼핑센터에서는 상품관리와 결제에 컴퓨터와 모바일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게 북한 매체들의 보도다. 김책공대나 김일성대 같은 대학뿐 아니라 중학교(우리의 중·고교 과정)와 소학교에서도 컴퓨터 교육이 실시되는 모습이 조선중앙TV를 통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치 리더십을 부각·선전하는 데도 컴퓨터를 활용하고 있다. 그의 집무실에 애플컴퓨터가 놓여 있는 장면을 공개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체를 쏘아올리는 장면을 김정은이 대형 컴퓨터 모니터로 지켜보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서방국가(스위스)에서 조기 유학한 젊은 최고지도자를 외부 문물에 밝고 첨단기술에 익숙한 인물로 알리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집권 초기 컴퓨터와 CCTV를 적극 이용함으로써 권력을 조기에 안정시키고 장악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는 첩보 분석도 있다”고 귀띔했다. 주요 권력기관과 핵심 엘리트의 동향을 체크·감시하는 건 물론이고, 국가 기간 생산시설까지 CCTV로 꼼꼼히 들여다봄으로써 과거 횡행했던 자재·생산품 빼돌리기와 부정부패를 크게 줄였다는 얘기다.

 

2017년 4월17일 평양 시내 과학관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 EPA 연합

 

하드웨어 열세 소프트웨어 개발로 만회하려

 

하드웨어에서의 열세를 만회하려 컴퓨터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과 인재육성에 관심을 기울인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해킹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 근거지를 마련한 뒤 해커를 현지에 체류시키면서 한국과 미국을 집중 타깃으로 해킹범죄를 저질러온 것으로 국제사회는 지목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전 세계 150여 국가의 컴퓨터 30여만 대를 다운시킨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공격의 배후도 북한인 것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2014년에는 김정은을 희화화한 영화를 제작한 뒤 해킹당한 소니사의 공격 주체가 북한이라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공개한 바 있다. 

 

컴퓨터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각별한 관심은 김정일 집권 시기인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당시 북한 경제·공학 관련 학술지나 발간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컴퓨터와 IT(정보기술) 분야와 관련해 언급하는 대목이 심심치 않게 드러났다. 당시 관련 매체에는 김정일이 평양의 한 공업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스캬냐로 빨았소”라고 담당교수에게 질문했다는 얘기가 소개됐다. 교수의 설명을 듣던 김정일이 ‘스캐너로 영상정보를 입력시켰냐’는 취지로 물었다는 것이다. 

 

최고지도자가 최신 컴퓨터 기술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선전하려는 차원일 수도 있지만, 김정일이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2001년 중국 방문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베이징의 컴퓨터 생산업체인 롄샹(聯想)을 찾아 제작 공정 등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컴퓨터 도입 초기 북한의 신문과 방송·잡지 등에는 컴퓨터 관련 상식과 기술을 소개하는 코너가 눈에 띄게 늘었다. ‘말티 메디아(멀티미디어)’ ‘마킹톳슈(매킨토시)’ 같은 용어들이 등장했고, 디스켓을 ‘자기원판’이라는 우리말로 바꿔 부르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장마당에서 남한 드라마나 영화를 담은 CD를 ‘알’이라는 은어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최근에는 서방세계의 과학기술 용어를 전문분야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서 컴퓨터의 역사가 태동을 시작한 건 1960년대 말 전자계산기 조직집단이 만들어지면서다. 이후 1982년 8비트급 시제품인 ‘봉화 4-1’이라는 제품을 조립 생산했다. 그러나 시험단계의 북한 컴퓨터 산업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정체상태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초기 단계의 사업 착수는 남한에 비해 다소 빨랐지만 북한은 하드웨어 양산에 실패했다. 북한은 2000년대 과학기술전망 목표에서 32비트 퍼스널 컴퓨터 양산과 64비트 컴퓨터의 자체개발을 설정했다. IT부문에 대한 투자나 개발 없이는 다가오는 정보화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폐쇄적 경제체제로 인해 급변하는 국제 컴퓨터 기술의 발전 추세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북한 IT산업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특히 하드웨어 생산은 거의 불가능해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드웨어의 열세에 비해 소프트웨어 분야는 상대적으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컴퓨터 전문인력 양성에 큰 힘을 쏟고 있다. IT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젊은 인재들을 대거 내보내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엄청난 생산설비 투자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컴퓨터 기기의 생산과는 달리 인력 양성을 통한 소프트웨어 개발은 상대적으로 그리 많은 자본이나 투자시설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2014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희화화하는 영화 《더 인터뷰》의 제작사 소니를 해킹 공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EPA 연합

 

워드프로세서 단축키로 ‘김일성’ ‘당’ 입력

 

북한이 개발해 사용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에는 체제의 특성이 반영돼 있다. 문서 편집용 프로그램의 시발점이라 할 ‘창덕’은 김일성 주석이 어린 시절 다닌 소학교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문서편집 소프트웨어는 김일성과 김정일·김정은 이름을 단축키로 따로 입력해 놓아 일일이 이름을 치지 않고도 한 번에 입력이 가능토록 했다. 단축키의 Ctrl키와 I를 누르면 김일성이란 글자가 나오는 식이다. 각종 산업용 프로그램 등에는 초기 화면에 ‘당(노동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생산도 학습도 주체의 요구대로’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나타난다.

 

북한의 컴퓨터·IT분야 발전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의 자유로운 접속 문제다. 폐쇄적인 체제의 특성상 아직 인터넷 사용은 일반 주민들은 물론 노동당 간부와 전문가 집단에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북한 일반가정의 컴퓨터 보급률은 18.7% 수준이고, 내부 접속망인 인트라넷(인터넷은 불가)에 접근하는 가구는 1.4%에 불과하다는 게 유엔아동기금(UNICEF)과 북한이 지난해 북한 전역의 8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라디오와 TV 보급률이 각각 94.1%와 98.2%인 것과 비교하면 컴퓨터와 인터넷 접근이 얼마나 통제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5~49세 남녀를 대상으로 문의한 결과, 조사시점 3개월간 컴퓨터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 경우는 남자 44.2%, 여자 32.8%에 그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북한은 컴퓨터와 전문인력을 동원해 가상화폐(암호화폐) 채굴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일부 계층이 독점하는 북한 현실을 볼 때, 탈중앙화(Decentralization)적 가치가 중요한 가상통화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김민관 산업은행 한반도신경제센터 박사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북핵 폐기를 의미하는 ‘비핵화’ 약속의 충실한 이행과 개혁·개방 없이는 체제 고립을 탈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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