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이산가족은 북한 변화의 척도다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4 10:13
  • 호수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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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민족만 이런 분단의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8월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21차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있으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 날인 8월22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이 끝난 뒤 남측 이금섬(92)씨가 배웅하는 북측 아들 리상철(71)씨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번에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산가족 중에서도 부모·자식 간 상봉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 지 올해로 65년째다. 당시 10대, 20대 자식과 생이별한 부모들은 대부분 불귀(不歸)의 객(客)이 됐다. 젖먹이 자식과 헤어진 부모라야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그나마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아무리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고 부모·자식 관계는 천륜이라고 하지만 자식이 부모와 공유한 추억이 있고, 자식이 부모를 기억할 나이인 상태에서 헤어진 경우라야 보고 싶고 애절하다.

 

젖먹이 자식하고 헤어진 경우는 그래도 다른 가족 관계에 비하면 낫다. 역시 부모·자식 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부모 세대들이 대부분 작고해서 이산가족이라고 해도 형제간이나 숙질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형제 사이는 부모·자식 사이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 대가 건너간 숙질 사이보다는 낫다.

 

이산가족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이산가족 2세라고 가정하면 우리 부모님이 살아 계셔야 이북의 부모님 형제자매와 만나게 해드려야겠다고 노력하게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무래도 재미가 없다. 공유할 추억이 없고 얼굴도 모르는 명목상의 핏줄을 만나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부모님 본인과는 비교할 바가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고 보면 이산가족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최대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문제든 그렇지만 이산가족도 1세, 2세, 3세로 갈수록 상봉의 간절함이 약해진다.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망한 후의 이산가족 문제는 아무래도 관심을 받기 어렵다. 남북이 이산가족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상봉을 가로막은 세력은 북한이라는 사실이다. 생이별한 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만큼 인도적인 문제는 달리 없다. 도대체 이념이 뭔데 핏줄끼리 서로 보겠다는데 이토록 방해를 했단 말인가. 북한이 지구상 가장 비인간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은 이것 하나만 봐도 입증된다. 지금도 북한은 선심 쓰는 척 극소수의 이산가족 상봉만 허용했다. 앞으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북한이 변했다고 믿기 어렵다 할 것이다. 생존자가 얼마 남지 않은 이산 1세대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한 국민적 각성도 시급하다. 시간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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