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가린 ‘롯데아울렛’ 간판…사기업 간판이 전면에 걸린 세계 주요 수도 기차역은 없어
서울역 정문을 멀리서 보면 ‘LOTTE OUTLETS’이라 적힌 빨간색 옥상 광고물을 볼 수 있다. 롯데아울렛 서울역점 간판이다. ‘서울역’이란 파란색 간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북쪽에서 바라보면 롯데아울렛 간판이 서울역 간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수도의 관문을 재벌그룹 유통업체가 가리고 있는 셈이다.
서울역 신(新)역사에 있는 롯데아울렛은 2013년에 문을 열었다. 원래는 한화의 콩코스 백화점이 있던 자리였다. 구(舊)역사에 입점한 롯데마트는 2004년부터 영업해왔다. 이를 두고 한때 “서울역인지 롯데역인지 모르겠다” “서울의 랜드마크가 롯데마트인가?” 등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의 랜드마크는 ‘롯데’?
서울시도 이 같은 여론을 인식해 서울역 간판 정비를 고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작년 8월 서울역 구역사 뒤편의 롯데마트 옥상 간판이 사라졌다. 간판의 빨간 바탕색도 문제로 지적됐다. ‘광고물의 바탕색은 적색 사용을 2분의 1 이내로 해야 한다’는 서울시 조례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앞쪽에 빨간색으로 적힌 ‘롯데마트’ ‘롯데아울렛’ 간판은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관할 관청인 용산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8월20일 “빨간색 글씨가 미관상 안 좋다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바탕색이 아닌 글자색에는 제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롯데아울렛 간판은 서울역 간판보다 더 크다. 코레일과 용산구청에 따르면, 파란색 서울역 간판의 크기는 가로 12.4m, 세로 6m다. 롯데아울렛 간판은 가로 16.7m, 세로 5.8m다. 높이는 비슷한데 폭은 4m 넘게 차이가 난다.
단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 따르면, 옥상간판에 허용되는 최대 가로 길이는 30m다. 세로는 15m 이하면 상관없다.
세계 주요 수도 기차역사 ‘역사상’ 이례적
세계 주요 수도의 기차역들과 비교해 봐도 서울역에 사기업 간판이 이처럼 크게 걸려 있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파리 북(北)역은 프랑스 최대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다. 이 역의 정문 근처에서 특정 업체의 상징물은 찾아볼 수 없다. 영국 런던 워털루역과 독일 베를린 중앙역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의 경우, 정문 양쪽 옆에 약국과 식당 등의 간판이 있다. 단 역사 간판보다 작은데다 낮은 곳에 걸려 있다.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역 정문엔 광고물이 걸개 형태로 달려 있다.
미국 워싱턴 유니언역은 그 자체가 거대한 쇼핑몰로도 유명하다. 역사 내에 120개가 넘는 상점과 식당 등이 들어서 있어서다. 일본 도쿄역 또한 식도락과 쇼핑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울역처럼 특정 업체의 간판이 역사 전면에 나와있진 않다. 중국 베이징역엔 마오쩌둥의 필체로 ‘北京站’이라 적힌 간판이 중앙 입구 위에 걸려있다. 그 외에 다른 간판은 없다.
2017년 10월 촬영된 프랑스 파리 북역 정문. ⓒ 구글지도 캡처
2010년 2월 촬영된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 구글지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