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외치는 지상파 드라마 왕국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7 10:50
  • 호수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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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드라마들이 비지상파로 간 까닭은

 

현재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다. 그런데 지상파 미니시리즈 중 최고 기록이라는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고작 8.8%(닐슨 코리아)다. 동시간대 방영되는 MBC 《사생결단 로맨스》가 2.6%, KBS 《너도 인간이니?》가 5.3%인 점과 비교하면 굉장히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 3사의 드라마 시청률을 모두 합해도 16%에 불과하다. 한때 드라마 하나의 시청률이 20%, 나아가 30%까지 기록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참담한 추락이다. 이런 사정은 한때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수목드라마를 보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SBS 《친애하는 판사님께》 7.1%, MBC 《시간》 3.5%, KBS 《당신의 하우스 헬퍼》 3.1%를 다 합쳐도 15%에 못 미친다. 반면 비지상파인 tvN의 화제작 《미스터 션샤인》은 최고 시청률이 13%대다. 추산방법이 달라 《미스터 션샤인》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훨씬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것이지만, 단순 비교만 해도 이 한 편만으로 지상파 드라마 몇 개를 합친 시청률이 나온다. 

 

왼쪽부터 《비밀의 숲》 《미스터 션샤인》

 

지상파 드라마의 추락, 이미 확정된 미래

 

더 뼈아픈 건 극명하게 체감되는 화제성의 차이다.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 중 단연 최고의 화제성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이다.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로 연달아 히트를 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인 데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얼굴을 내민 이병헌과 최근 영화계에서 뜨거운 루키로 떠오른 김태리가 주연을 맡았다. 화제가 안 될 수가 없다. 또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라이프》 역시 화제의 중심에 올라 있다. 《비밀의 숲》을 통해 대중들과 평단에서 모두 극찬을 받았던 이수연 작가의 작품인 데다, 조승우·이동욱 같은 굵직한 배우가 주연이다. 늘 비슷비슷한 로맨틱 코미디를 반복하던 지상파 드라마들과는 너무 다른 본격 장르물의 맛을 보여주는 데다, 디테일이 느껴지는 치밀한 이야기는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항간에는 이 쫀쫀하게 밀도 높은 드라마를 보고 나면 지상파 드라마들은 너무 느슨해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든 걸까. 가장 큰 것은 드라마에 대한 투자 여력의 차이다. 방송사가 얼마만큼의 매출을 내느냐는 투자 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투자 여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지난해 MBC가 565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JTBC의 매출이 3000억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매출 성적표가 희비쌍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해 준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외주제작이다 보니 투자가 많고, 제작 여건이 수월한 쪽으로 좋은 대본이 먼저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약 3년 전만 해도 좋은 드라마가 들어가는 순서는 ‘SBS→KBS→MBC→tvN→JTBC’ 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tvN→JTBC→SBS→KBS→MBC’ 순으로 바뀌었다. 좋은 대본이 간다는 건 A급 작가가 투입된다는 걸 의미하고, 그것은 캐스팅 또한 A급 배우들로 채워진다는 걸 의미한다. 

 

왼쪽부터 《사생결단 로맨스》 《너도 인간이니?》

 

위축된 지상파, 해법은 없는 걸까

 

그래도 SBS의 경우 A급 작가들의 작품이 먼저 들어가긴 하지만, 제작 여건이 어려워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금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 이 그 사례다. 애초 SBS 편성을 두고 이야기됐지만 43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는 SBS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광고수입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구조적 한계는 성공이 분명한 대작을 먼저 손에 쥐고도 포기할 수밖에 없게 했다는 것이다. 반면 tvN은 케이블 채널로서 광고 자체만으로도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중간광고가 가능하고 방영시간도 얼마든지 늘릴 수 있으며(광고를 그만큼 더 붙일 수 있다는 뜻이다) 재방, 3방은 물론이고 아예 특정 ‘방영데이’까지 만들어 여러 차례 방영할 수 있다. 성공한 작품의 광고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해외 판권 수익 또한 규모가 작지 않다.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투자 규모가 큰 《미스터 션샤인》 같은 대작 드라마는 이제 비지상파가 아니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급속도로 위축된 저간의 사정들이 쉽게 보인다. 두드러지는 양상은 ‘로맨틱 코미디’ 같은 멜로물들이 주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지상파들은 이미 멜로의 틀을 벗어나 다양한 장르물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의 젊은 시청자들에게 이미 장르물은 익숙해졌고, 그들을 타깃으로 비지상파가 장르물들을 내놓으면서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주 시청층에는 극명한 차이가 생겼다. 충성도는 높지만 미래의 시청층이라고 볼 수 없는 나이 든 세대를 주 시청층으로 갖고 있는 지상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투자 여력이 줄어드니 소소한 멜로물로 프로그램을 주로 채우고, 그러면서 젊은 시청층은 이탈한다. 결국 미래에 더더욱 어려운 환경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상파들은 최근 오히려 비지상파에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드라마 중간광고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매출 차이가 극명해 이대로 지상파를 방치하다간 자칫 고사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광고가 허용된다고 해도 지금 같은 제작방식은 지상파가 처한 위기를 넘어설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지상파들이 조금씩 구상하고 있는 건, CJ E&M의 스튜디오 드래곤 같은 자회사 형태의 제작사를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자회사 형태의 외주제작사는 기존 지상파 방식의 제작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사 드라마만이 아닌 다양한 채널의 드라마를 제작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실제로 KBS는 자회사 형태로 몬스터 유니온을 만들어 예능과 드라마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생산해 수급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회사는 본사의 제작진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워낙 제작 환경이 달라 본사 제작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상파 드라마의 몰락은 예고돼 있다. 현재의 제작·편성 환경을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더욱 소소해질 수밖에 없고, 그건 시청자들의 외면을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한 채널의 위상에 맞는 법적 조치와 함께 기존 플랫폼의 지위에 취했던 지상파 내부의 총체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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