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으로 北 핵무장 명분 제거하라
  • 손기웅 한국DMZ학회장·前 통일연구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7 09:11
  • 호수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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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노림수에도 종전선언 추진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

 

결론적으로 종전(終戰)은 선언돼야 한다. 4·27 판문점 선언과 10·4 선언에서 합의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길이어서 그렇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네 번에 걸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오는 9월 다섯 번째 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북한을 신뢰할 수 있나. 남북 간 협력이 이뤄졌을 때도 없었던 신뢰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고 해서 생길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우리의 국가안보다. 국가안보와 성장을 위해 옳다면 그 길로 가야 한다. 한번 해 봤는데도 안 됐으니 그만두자는 게 아니라, 더 꿋꿋하게 나가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7월7일 평양에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안내를 받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현재 4차 방북을 준비 중이다. ⓒAP연합

 

北, 종전선언 시 ‘미제 침략 승리’ 선전할 것

 

북한이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이유는 첫째, 전쟁에 대한 책임 회피다.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이라 규정해 온 북한이 전쟁 발발의 책임을 인정, 배상에 동의할 리 없다. 북한과의 그러한 평화조약 체결은 어렵다. 따라서 북한은 전쟁 발발의 책임을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모호하게 하고, 전쟁에 대한 유감 표명과 향후 관계 발전만을 명시하는 선에서 국제법적 조약이나 협정이 아닌 ‘정치적 선언’으로 넘어가려 할 것이다. 그리고 종전선언이 이미 이뤄졌음을 근거로 해서 평화조약과 평화체제 논의를 북한 체제의 안전, 상호 관계의 발전만을 구체화하는 내용으로 진행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북·미 관계 개선이다. 체제의 안전은 물론 경제난 극복에 사활을 건 북한이 대북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김정은은 종전선언을 이유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면서 수교, 대사관 설치, 교류협력 등으로 환경 조성을 꾀하고자 한다.

 

지금도 북한은 6·25전쟁을 미제의 침략을 물리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내부 주민들에게는 반제(反帝)·반미(反美)투쟁이라고 세뇌시켜왔다. 아마도 북한은 종전선언을 통해 이를 확인시키려 할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넷째 이유는 종전선언, 북·미 관계 개선이란 환경 조성으로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경협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종전선언은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또 종전선언은 김정은이 통치자금과 자원을 확보하고 경제난의 숨통을 트이도록 하는 데 즉각적인 효력을 발생시킬 것이다.

 

다섯째, 종전선언으로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될 것이다. 이는 우리로서는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한·미 연합훈련의 장기적 중단을 관철시켜 한국의 안보력을 약화시키고자 할지 모른다.   

 

마지막 여섯째, 종전선언은 남한의 내부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북한으로선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데 있어 이보다 좋은 호재가 없다. 어쩌면 이 문제는 남남뿐만 아니라 한·미 간 갈등과 틈을 벌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모든 위기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생각하는 게 좋다. 종전선언 역시 마찬가지다. 종전선언이 이뤄진 뒤 우리가 경험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은 ‘남한 패싱’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는 담보 상태에 머물게 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만 진전시키는 경우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직접적 관심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만 폐기하고 핵실험 중단과 핵무기·핵물질·핵기술의 대외 수출 등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상응해 미국이 대북제재를 완화해 미국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하고, 거대 자본이 북한의 기간산업, 부동산 등에 다양하게 투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현재로선 북·미 관계 개선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북한 관광에 나서는 것도 전혀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북·미 관계 개선으로 체제 안전과 경제난으로부터 한숨을 돌린 북한이 남쪽과의 관계 개선에는 선택적·제한적으로 나설 경우 우리는 애간장을 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노림수에도 종전선언을 추진해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핵무장에 대한 북한의 명분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도 종전선언은 필요하다. 북한은 핵무장을 미제와 결탁 세력들에 의한 외침에 대비한 자위적 방위 수단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통해 북·미 양국이 평화적 관계를 약속하고 남북이 다시 한번 평화적 공동 번영을 합의한다면 북한의 핵무장은 명분이 없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를 기반으로 한 북핵 해결법은 더욱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 두 번째)을 수석대표로 하는 남측 대표단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을 수석대표로 하는 북측 대표단이 8월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종전선언, 남·북·미·중 4국 간 이뤄져야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은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국가와 국민이 알고 있다. 구(舊)소련의 자료들이 이미 그것을 확인했다. 비록 종전선언에 그 사실이 적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화를 위해 우리에 의해 선언이 채택됐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는 평화와 비핵화의 새로운 동력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다. 

 

셋째, 종전선언은 남북이 평화적 공동 번영을 위한 교류협력을 전방위로 확대시키고 속도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의 국가 성장에 필수적인 토지·노동력·자원·시장·교통로를 확보하는 수단이 된다. 동시에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높여 외자 유치가 확대될 계기가 된다. 

 

물론 종전선언 이후에도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관계는 지속돼야 한다. 여기서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 등의 문제는 한·미 양자 간의 사안이다. 양국의 국익에 근거해 판단하면 그만이다.  

 

다만 종전선언은 반드시 남·북·미·중 4국 간 이뤄져야 한다. 민족 내전이자 국제전인 6·25전쟁에서 중국의 책임은 반드시 역사적으로 기록돼야 한다. 정전협정의 당사자이자 전쟁 책임의 한 축인 중국이 종전선언에도 당사자가 돼 종전은 물론이고 향후 평화체제 형성에도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 남·북·미 3자만이 참여한 종전선언은 미제의 침략에 대항한 조국해방을 위한 성전(聖戰)이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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