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촛불·미투…이 나라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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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시집 발표한 김지하 시인 인터뷰

"이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봐요." 

노(老)시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편안했다.  
 
1969년 등단한 김지하(78) 시인은 늘 사회에 충격파를 던져왔다. 행동과 발언에 거침이 없었다. 필연적으로 굴곡과 논란이 따라붙었다. 1970년대 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그는 어느 즈음부터 보수진영 가까이에 있었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는 진보진영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며 김 시인에 대한 시선이 더욱 차가워졌다. 곱씹어보면 김 시인이 '보수주의자'나 '정치인'이었던 적은 없다. 시인(詩人)의 언어, 주장이 현실 정치의 그것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미투 긍정 평가…"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김지하 시인은 최근 발표한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에서 '여성성'(女性性), '여성 리더십' 등에 또다시 주목했다.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지지 선언 당시에도 김 시인은 여성 리더십을 강조했다. 다만 이 여성 리더십론은 갑자기 등장한 정치적 구호는 아니었다. 김 시인이 불교, 주역, 동학 등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주창해온 바였다. 여성의 힘이 되살아날 때 새로운 문명사가 열린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실패했어도 여성 리더십은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김 시인은 강조했다. 자신의 오판(誤判)은 절절하게 인정했다. 김 시인은 "박근혜씨가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한테서 정치를 배웠고, 출중한 참모들도 있으리라 봤다. (여성 지도자로서) 섬세하게 잘할 거라고 예상했다"며 "전혀 몰랐던 최순실이란 사람이 나와서 '우당탕탕'하니까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새 시집에 수록된 '바보1'에서 김 시인은 '박근혜를 지지하면서/ 최순실이를 몰랐고/ 그 애비/ 최태민이를 몰랐다./ 그렇다./ 바보만이 그럴 수 있다'며 자신을 '바보'로 깎아내렸다.  

 

김지하 시인 ⓒ 연합뉴스


 

아울러 새 시집과 산문집을 통해 김지하 시인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끈 촛불집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 '촛불'에는 '대통령이 제 나름으로 손을 들었다/ 야당 때문이/ 아니다. …생명과 평화의 촛불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산문집 《우주생명학》에선 '여성·어린이·젊은이·노약자·백성들이 더불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기위친정(己位親政·동학사상의 개념으로, 개벽이 시작되면 소외계층이 임금처럼 우주정치를 담당하는 큰 전환이 일어난다는 의미)', '200만, 300만 촛불의 평화적 행동에 의한 대개벽의 길, 통일·융합·창조의 과정에 이제 또 하나의 더 큰 4·19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김지하 시인은 촛불집회와 함께 최근 사회를 달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도 거론하며 "여성성을 중심으로 이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여성성의 세계관을 담은 시를 써보려 한다고 전했다. 《흰 그늘》에 담긴 시 '너는 나에게'에는 창작의 열망이 표현돼 있다. '새벽에/ 홀로 일어나/ 옛 詩/ 오적을 생각한다… 나 이제 나이 80에/ 결심한다.// 또 쓰리라!/ 또 써서 세상을 확 뒤집어놓으리라.'

 

이에 관해 묻자 다소 알쏭달쏭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 시인은 "나는 늙었다. 젊은 사람들보고 쓰라는 얘기"라며 "물론 나도 쓸 수 있으면 쓰겠지만, 이 나이에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굴곡진 삶을 많이 내려놓은 노시인이 전화기 너머로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음은 김지하 시인과의 문답이다.     

 

이번 신간 발표 과정에서 '절필'(絶筆) 얘기가 언뜻 나왔다. 시집에 '마지막 시집'이라고 적은 것 때문이었다. 
"한 6년 전에 안 쓰려고(절필하려고) 생각했는데, 나라 형편이 알다시피 복잡하다. 그래서 계속 시를 쓸 생각이다. 내가 잘난체하는 얘기를 할 게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뭔가 말을 조금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다."

 

'나라 형편이 복잡하다'는 말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우선 남북 관계가 달라지고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과의 관계가 다 조금씩 변하고 있지 않나. 변하는 과정에서의 가장 큰 부분은 여성성이다."

 

앞으로의 집필 활동도 여성성 세계관에 집중해서 할 계획인가.  
"결국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 

 

시집에 담긴 '너는 나에게'라는 시에선 창작에 대한 열망이 엿보인다. 
"내가 쓴다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보고 쓰라는 얘기 아닌가.(웃음) 내 나이가 78세다. 늙었다. 이 나이에 그런 말(창작 의지 표현)을 하는 건, 나를 포함한 문학 집필진 전체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그렇게 쓰라'는 말이 되는 거다. 물론 나도 쓸 수 있으면 쓴다. 그런데 이 나이에 쓰겠느냐.(웃음)" 

 

 

"朴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별개로 여성 리더십 발전해 나가야" 

 

산문집은 동학사상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의 길을 제시한다. 남녀·음양·빈부의 해방과 평등, 진보·보수의 통일과 융합 등을 강조한 것이 인상 깊다. 

"동학 자체는 아니고, 동학을 다시 강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돼 있다. 따져 봐야 아는 얘기고, 깊게 들어가야 보인다. 그냥 껍데기로 봐선 잘 모를 거다."

  

이번에 시집과 산문집에서 촛불집회를 거론했다.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사회가 바른길을 찾아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특히 여성성… 미투 문제까지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여성 문제가 정역(正易) 사상에 등장하는 유리(琉璃)와 같이 낙관적이다. 유리는 여성성을 의미한다. 여성성의 낙관을 포함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에 '여성 리더십이 상처를 입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근혜씨가 자기 아버지한테 다른 학문보다도 정치를 배웠다고 생각했다. 또 그 밑에 여러 출중한 참모들이 있으리라고 봐서 정치 문제에서 섬세하게 잘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난 최순실은 전혀 몰랐다. 그런 사람이 나와서 '우당탕탕' 하니 깜짝 놀랐다. 실망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와 별개로 여성적인 세계관이나 여성 리더십은 계속 발전해 나가리라 전망하는가.
"발전해 나가야 하고, 발전해 나갈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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