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에 사랑받는 최은영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 11:04
  • 호수 15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세한 목소리로 풀어내는 작가의 예민한 외침

 

이 땅에서 여성 문인으로 살아가기는 녹록지 않았다. 남녀가 유별한 조선시대를 살았던 허난설헌은 중국까지 문명(文名)을 떨쳤지만, 남편에게 질시를 받으며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근대도 마찬가지다. 문인이든, 예술가든 평탄한 삶을 사는 여성은 많지 않았다. 순식간에 선거권을 얻는 등 긍정적 흐름도 있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로 피해를 받고 있다. 그런 현실과 인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문학에서도 그 흐름은 있었다. 이경자 등 소설가나 최승자 등 시인은 여성들이 갖는 비극적인 서사나 감성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 인식은 최근 ‘워마드’의 혜화동 시위가 보여주듯 대결적인 측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까지 이른 것은 그간에 쌓인 분노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늦었지만 그 내면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달래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더 극단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당대 젊은 여성작가들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최은영 지음│문학동네 펴냄│328쪽│1만3500원 © 문학동네 제공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공감받는 작가

 

이런 흐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작가 중 한 명이 최근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최은영 작가다. 출간 2년이 지났지만 소설집 《쇼쿄의 미소》가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있는 것은 젊은 독자층이 그녀가 보여주는 세계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강하게 페미니즘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이 시대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공감받는 작가라는 데 이견이 없을 작가를 만나봤다. 작가는 요즘 시위를 어떻게 볼까. 

 

“저에게는 앞 세대 여성들의 투쟁을 통해 얻은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는 투쟁하지 않고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앞 세대 여성들이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전히 호주제가 있는 나라에서, 폭력 남편에 대한 처벌법도 없는 나라에 살았을 것입니다. 나만 참고, 나만 타협하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여성들을 위해, 그녀들의 더욱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도 그런 제 생각을 보여줍니다.”

 

삼십대 중반인 작가가 최근 젊은 여성들의 감성과 코드가 다르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다만 작가의 소설에는 노골적으로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에 등장하는 여성들 모두가 이 시대 여성들의 침잠한 삶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두운 느낌인 것은 맞다. 그 배경에는 단편소설 《601, 602》에서 보여주듯 가부장적 가정 질서 체계에 순응해 온 여성들의 고통이 자리하고 있고, 그 세계는 무력한 결말이 보여주듯이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다. 작가는 이런 상황이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고 인식한다. 과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젊은 여성들에게 영향력 있는 여성 작가로서 화해의 책임에 대해 물었다.

 

“화해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누구와 화해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화해하는가, 무엇을 위해 화해하는가, 화해하는 당사자들의 관계성은 어떠한가. 이런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오랜 시간 약자들에게 강자와의 ‘화해’를 미덕으로, 좋은 것으로 강요하곤 하였는데요. 저는 쉽게 화해하지 않으며 끝까지 갈등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화해는 부지불식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진정한 반성을 통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허물을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 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느껴지는 결기는 결국 혜화동이나 광화문에서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는 시위를 공감하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 속 인물 등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면서 그 답을 찾아가는 걸음도 걷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던 ‘진희’가 레즈비언이란 것을 친구들에게 알린 후 결국 자살하고, 남은 두 친구마저 처절하게 서로를 힐난하는 소설 《고백》 역시 결과적으로 감정의 밑단을 드러내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 세계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지는 것이 여행이다. 《쇼쿄의 미소》에 수록된 단편소설 가운데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를 제외하면 주요 등장인물이 외국 속에 존재하는 한국인이고, 이번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아치디에서’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외국인들과의 교감을 작품에 넣을 수 있는 배경을 물었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유일한 계획”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국내의 여러 장소를 데리고 다녀주셨습니다. 여행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스물두 살에 처음 혼자 여행을 가고 난 뒤, 자주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몰타에서 아홉 달, 프랑스에서 두 달, 베트남에서 한 달, 터키에서 한 달, 쿠바에서 석 달, 이런 식으로 길게 머문 일이 많았습니다. 여행할 때는 불안하고, 더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더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제가 매몰되어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또, 외국을 여행할 때는 저 스스로가 동양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제 안의 소수자성에 대해 생각하고, 저와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소수자성을 지닌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소설에서 이렇게 다양한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 문단에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여행가 한비야가 여성들에게 여행 지역을 넓혀주었다면, 작가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미세한 감정을 나누는 것에 대해 다양한 지평을 열어준 셈이다. 우선 두 권의 단편집으로 찾아온 만큼 이후 작업에도 관심이 갔다.  

 

“제가 좋아하는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면, 작가가 가장 마지막에 쓴 작품들이 모두 작가의 유년 시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작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 같은 경우, 글을 쓸 때 가까이 있는 일보다는 멀리 있는 일이 더 가깝게 다가오곤 합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습니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형식엔 큰 의미는 두지 않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저의 유일한 계획입니다. 결과는 언제나 미지수이기 때문에, 언제 어떤 책을 낸다, 이런 장담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글을 쓰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