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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남북 실화 첩보전 《공작》이 갖는 차별화

다른 분단 소재 영화들과 다른 이유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Fri) 17:00:00 | 1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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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은 ‘북으로 간 스파이’ 이야기다. 1997년 12월 열린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설계한 ‘북풍 공작’ 실화가 중심에 놓인다. 영화는 존 르 카레의 작품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 고전 스파이 소설의 무드를 입고, 1990년대 요동치던 남북 정세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현란한 액션이 아닌 서로의 신뢰를 얻기 위한 자들의 말과 감정이 거래되는 첩보 스릴러. 기존 남북 분단 상황을 중심에 둔 여타 한국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영화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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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갖는 힘과 차별성

 

스파이는 냉전시대의 부산물이다. 이념이 충돌하는 장막의 시대. 서로의 장막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필사적인 국가적 노력은 수많은 스파이들을 낳는다. MI6, CIA, KGB, 모사드 등등의 조직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문학과 영화는 그들이 겪었던 고뇌와 갈등에 착안해 스파이물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에서는 이를 어떻게 소화했을까. 스파이물의 공식을 한반도의 상황에 대입하면 여지없이 분단이라는 국가적 갈등이 중심에 놓인다. 남과 북의 이념 차이가 냉전시대의 그것만큼이나 견고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코미디,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소화되어 왔던 이유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를 시작으로 한국영화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바뀌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이자, 남북 이념의 대립을 안타까운 멜로에 녹여낸 작품이었다. 김광석의 노래 가사에 감동하고, 함께 초코과자를 나눠먹을 수 있는 ‘인간적 북한군’의 묘사로 북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낸 《공동경비구역 JSA》(2000) 역시 색다른 시도였다. 

 

이는 특정 임무나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이념을 넘어 우정을 나누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의형제》(2010), 《공조》(2017), 《강철비》(2017) 같은 영화들이 등장할 수 있는 단초가 된 셈이다.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요원들의 이야기를 액션으로 풀어내는 시도 역시 많았다. 《베를린》(2012), 《용의자》(2013) 등은 할리우드 첩보 액션의 대명사로 불리는 《본》 시리즈(2002~)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이 함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오늘날, 현실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웬만한 픽션은 현실을 넘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지난해 핵전쟁의 위험을 현실적으로 강조한 《강철비》의 상상력은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비핵화와 종전선언이 오가는 오늘날의 한반도에서 관객의 경각심을 촉구하는 이 같은 영화적 논의는 조금 무력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공작》의 선택은 영리했다. 기존 영화들과 달리 《공작》이 갖는 힘과 차별성은 이것이 실화라는 점이다. 과거의 일을 들여다보고 재평가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현재 한반도 분위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의미 있는 작업이다.

 

《공작》의 배경은 1990년대다.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를 감싼 위기와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정보사 소령 출신 박석영(황정민)은 북핵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대북사업가로 위장, 북측 수뇌부들과 접촉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에게 주어진 암호명은 ‘흑금성’. 이 존재를 아는 자는 오직 석영의 상사이자 안기부 해외사업팀 최학성(조진웅) 그리고 대통령뿐이다. 

 

박석영은 베이징 주재 북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리명운은 북한에 필요한 돈을 구하려 하고, 두 사람은 북한을 배경으로 한 CF 촬영 허가를 얻는 데 합의한다. 당연히 박석영의 진짜 목적은 CF 촬영 답사 목적으로 북한에 잠입해 핵 개발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과장 정무택(주지훈)은 리명운과 달리 박석영을 향한 의심을 쉬이 거두지 않는다. 그러던 박석영은 대선을 앞두고 남과 북의 수뇌부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거래의 기운을 감지하고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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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이 아닌 말과 눈빛의 스릴러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이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즉 여기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분단의 상황을 이용하는가. 혹은 이용해 왔는가. 《공작》은 격동의 90년대 안에서 그 증거들을 찾아내 조심스레 제시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망하려는 이 영화의 열망은 분명해 보인다. 적 아니면 우정의 관계로 남북을 조명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한반도에 비극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분단을 안고 와야 했는지, 그 안에서 희생된 것은 무엇인지 역사 안에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공작》은 ‘말(言)과 눈빛의 스릴러’다. 첩보영화에 으레 기대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액션 장면은 등장하지 않으며, 흔한 총성 한 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치열하게 탐색하던 이들이 결국 서로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중요하게 묘사한다. 박석영과 리명운은 적이 아니라 다른 신념을 지닌 인간이며, 서로의 조국을 위해 노력한 자들일 뿐이다. 이들의 여정은 서로의 이념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과정이다. 

 

이는 최근 영화들이 ‘브로맨스’로 남북의 인물들을 엮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다. 2004년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실제로 한 기업 광고 CF를 찍었던 일화 뒤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감독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공작》은 그렇게 처음으로 정권이 바뀌었던 90년대라는 한국의 격동기, 분단 상황에서 개인의 신념이라는 문제를 들여다본다. 

 

《공작》의 흥행 호조 분위기를 타고 이후 하반기 개봉을 기다리는 분단 소재 영화 두 편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는 시기다. 강형철 감독의 《스윙 키즈》는 관객의 사랑을 받은 뮤지컬 《로기수》가 원작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이 붙잡혀 있었던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우연한 기회에 탭댄스에 빠져든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념 아래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이 강조되는 작품일 것으로 보인다. 김병우 감독의 《PMC》는 판문점 30m 아래 지하 벙커 회담장에서 글로벌 민간군사기업(PMC) 블랙 리저드가 펼치는 군사작전을 그린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블랙 리저드의 리더 에이햅(하정우)과 북한 군의관 윤지의(이선균)가 조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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