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의 ‘끊을 수 없는 달콤한 유혹’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 08:28
  • 호수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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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북·미 정상회담 화해무드 속 불법 무기 거래 적발

 

국제 무기 암거래 시장에서 벌어져 온 북한의 은밀한 거래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개최와 ‘비핵화’ 약속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가 무기 밀매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촘촘하게 펼쳐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불법 무기 수출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8월3일 AFP와 로이터통신 등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북한은 시리아의 무기 브로커를 통해 예멘과 리비아에 불법적인 무기 수출을 시도했다. 북한 군부와 관련 기관이 시리아 정부 및 예멘의 친(親)이란 반군인 후티 세력 등과의 군사협력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패널 측은 북한이 소형화기와 경량무기 등을 포함한 무기체계를 제3국 중개인을 통해 리비아와 예멘, 수단에 공급하려 시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패널 보고서는 북한산 소형 무기체계의 브로커로 시리아 무기 불법거래상인 ‘후세인 알-알리’를 지목했다. 그는 예멘과 리비아 무장단체에 재래식 무기와 함께 북한산 탄도미사일 판매를 시도했고, 2년 전 다마스쿠스에서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 측과 북한의 군사무기 거래를 중재하기도 했다.

 

2013년 쿠바와 불법으로 무기를 거래한 혐의로 파나마 만사니요항에 억류 중인 북한 청천강호 © 조선중앙통신 연합


 

안보리 “北, 예멘·리비아에 불법 무기 수출”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 수출 활동은 1990년대 말부터 국제사회의 의심과 우려를 낳아왔다.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무기 거래까지 벌이고 있는 데 따른 문제제기였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듬해인 2013년 7월에는 쿠바에서 미그-21 전투기 등을 싣고 가던 청천강호가 파나마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억류된 북한 화물선에는 작전 투입이 가능한 전투기 2대와 함께 부품 수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15개 비행기 엔진도 실려 있었다.

 

2015년에는 싱가포르 법원이 현지 업체인 진포해운 측에 대해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한 혐의로 재판을 하기도 했다. 4년간에 걸쳐 북한 관련 기업이나 기관과 605회에 걸쳐 400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미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 무기 거래를 도운 혐의로 싱가포르 소재 선박회사 세나트(SSC)와 네오나르도 라이 회장을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싱가포르에서 무역·보험 사업을 벌이다 탈북·망명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싱가포르가 동남아 선박 운영의 중심지란 점에서 북한 군부와 육해운성, 보험부문 등에서 많은 회사가 진출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무기 밀거래는 1980년대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란과 이라크의 8년 전쟁(1980~88년)을 틈타 미사일 판매로 큰돈을 벌어들이면서 무기 밀매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제동이 걸린 건 2006년 10월 첫 핵실험 이후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 1718호를 채택해 전차나 전투기·헬기·전함·미사일 등의 부품이나 기술을 북한에 제공하는 걸 금지했다. 그렇지만 대북제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이 무기 수출을 통해 어느 정도 규모의 달러를 벌어들이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북 정보 당국자는 “바다가 없는 몽골에 선박을 편의치적 형태로 등록해 놓고 운항하는 방식으로 철저히 위장하는 데다 워낙 은밀하게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실태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0년 7월 북·미 미사일 협상 때 수출 중단 대가로 매년 10억 달러를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연간 2억~5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美 “北, 무기 팔아 2억~5억 달러 벌어”

 

북한이 주기적으로 선보이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불법적인 무기 수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무기에 눈독을 들이는 해외 국가와 무장단체 등 잠재적 고객을 의식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셈이란 얘기다. 지난 2015년 10월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개량형 KN-08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300mm 방사포 등 30종이 넘는 무기 300여 점이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란 게 군 당국의 진단이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산 무기 수출 차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중동의 분쟁지역 반군과 무기 거래를 시도하고 특히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집단에 북한산 무기가 흘러들어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 거래 실태는 대북제재 회피 움직임과 함께 최근 공개된 유엔 보고서에 담겼다. 김정은 체제가 유엔의 대북제재를 피하려 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으로 이뤄지는 석유제품 환적을 크게 늘린 정황과 맞물려 무기 거래의 심각성은 더욱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패널 보고서는 “북한과 시리아 측의 금지된 거래가 계속돼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탄도미사일 수출과 기술이전 등에 관여하는 북한 기술자들이 2011년과 2016년, 2017년에 시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패널 측은 북한이 무기금수 제재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를 벌여 나간다는 입장이다.

 

‘세기의 담판’으로까지 불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는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예전과 다른 변혁의 길을 갈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도 간주됐다. 여기에는 비핵화 약속 이행뿐 아니라 개혁·개방과 인권증진, 민생문제 등 북한체제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조치들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유엔의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하고 있다. 대북제재망을 피해 재래식 무기 밀수출과 이를 통한 외화획득 등을 시도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개방과 국제화라는 도도한 세계사의 흐름 앞에 노출된 김정은식 생존전략은 이제 진실의 순간을 맞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번영과 공존을 택하느냐, 아니면 또다시 기약 없는 은둔과 고립의 질곡에 빠져드느냐 하는 기로에 선 것이다. 김정은의 한여름 구상과 향후 통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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