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대 수입차들의 공세가 시작됐다
  • 김성진 시사저널e. 기자 (star@sisajournal-e.com)
  • 승인 2018.08.07 14:26
  • 호수 15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10년간 수입차 시장 4배 증가…국산차 시장 점유율 높다는 지적도

 

수입차 업체들은 지난 10년간 거침없이 시장을 확장해 왔다. 수입차는 점점 더 다양해지는 소비자들의 개성과 요구를 충족시키며 매해 새로운 판매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수입차는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란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가격마저 대폭 낮아지며 수입차 대중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의 할인 공세에 국산차 업체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BMW코리아의 가격 할인 경쟁이 국산 프리미엄 모델 성장을 위협했다면, 아우디폴크스바겐의 2000만원 후반대 가격 공세는 볼륨 모델이 포진한 국산 준중형 세단까지 사정거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차 할인 공세가 시작되면 수입차 업체의 점유 비중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미 올 상반기 내수시장에서 수입차 점유 비중은 18%를 넘어섰다. 가까운 미래에 20%를 웃돌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차 업체의 득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엇갈리고 있다. 지나친 가격 할인이 시장 질서를 교란할 것이란 우려와, 수입차 대중화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맞부딪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8월 중순 출시 예정인 준중형 세단 북미형 파사트 TSI를 출고가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에 출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30%에 가까운 할인이 적용돼 2600만원대에 구매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폴크스바겐은 파격 할인 가능성을 시사했다. 7월27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미드-써머 미디어 나이트 행사에서 슈테판 크랍 폴크스바겐 사장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 차를 대중화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아우디는 준중형 세단 A3를 4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밝혀 2차 수입차 할인 공세에 불을 지폈다.

 

폴크스바겐 파사트(왼쪽)와 아우디 A3 ⓒ폴크스바겐·아우디


 

2000만원대 수입차, 누구 시장 뺏어올까

 

아우디 준중형 세단 A3의 정상가는 4000만원대다. 여기에 40% 할인이 적용되면 가격은 2400만원대까지 떨어진다. 아반떼 가격이 1394만~2384만원 사이에 형성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단숨에 아반떼와 가격 경쟁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할인된 수입차가 고가의 국산차와 한정적으로 간섭효과를 일으켜온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A3의 이번 파격 할인이 현실화된다면 국산 준중형 세단 시장의 위축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최근 준중형 세단 구매를 위해 차량 정보를 확인 중인 곽아무개씨(32)는 “직장을 집에서 먼 곳으로 옮기면서 차량이 필요해졌다. 아직 미혼이라 큰 차도 필요 없고 준중형 세단 정도면 알맞을 것 같은데, 수입 준중형 세단을 2000만원대 후반에 살 수 있다면 당장 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산 준중형 세단 시장은 최근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득세하며 빠르게 시장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여가 중심으로 재편되며 엔트리카(생애 첫 차) 역할을 소형 SUV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아반떼의 경우 올 상반기 총 3만5803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판매량이 14.8% 감소했고, 한국GM의 크루즈는 54%나 줄었다. 르노삼성의 SM3도 21%나 뒷걸음질 쳤다. 기아차 K3는 전년 동기 대비 75%나 판매량이 급증했는데, 이는 뛰어난 연비를 앞세운 신차효과가 컸다. 아우디 관계자는 “A3 판매는 8월 안에 실시할 예정이다. 아직 정확한 할인율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소비자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큼의 가격을 책정할 것”이라며 “아직 딜러사에 차량이 배분되지는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의 파사트는 중형 세단으로 아반떼보다 한 단계 차급이 높다. 직접적으로는 현대차 쏘나타, 기아차 K5, 르노삼성 SM6, 한국GM 말리부와 경쟁 관계에 있다. 파사트가 2000만원 후반 가격대에 제공된다면 쏘나타(2219만~3233만원)와 일부 가격이 겹치게 된다. 파사트의 경우 단기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으로 할인 정책을 유지할 계획이어서 장기적인 간섭효과가 예상된다.

 

수입차 업체의 할인 공세는 수입차 시장 확장을 폭발적으로 부추길 전망이다. 수입차 시장은 이미 최근 10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왔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판매량은 6만1648대에 불과했으며, 점유 비중 역시 6%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시장이 크게 성장하며 2011년에 판매량이 10만 대를 넘어섰으며, 다시 3년 뒤인 2014년에는 20만 대 가까운 판매를 기록했다. 올해가 절반밖에 지나지 않은 지난 6월까지 수입차 판매는 14만 대로 집계됐다. 내수시장에서의 점유 비중은 18%에 이른다. 10년 만에 판매량이 약 4배 늘었으며, 점유 비중은 3배나 뛰었다.

 

 

급성장하는 수입차 시장…비정상의 정상화?

 

일각에선 수입차 업체의 거침없는 몸집 불리기에 우려를 표한다.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할인가를 제시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를 우롱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큰 폭의 할인보다 애초 정찰가를 낮게 책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비판도 따른다. 다만 수입차 시장 확장에 따른 국산차 시장 축소 자체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국내 시장의 자국 차량 점유율이 이미 비정상적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는 분석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입차의 공세로 국산차 시장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내수시장에서 국산차 점유 비중이 20%대로 떨어져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OECD 국가 중 자국 차량 점유율이 60%가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수출을 위주로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내수시장 점유를 잃더라도 회사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앞으로도 수입차 업계의 할인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번 내린 가격을 다시 올려서 판매하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수입차 할인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일단 할인해 판매하고 3개월 후엔 정가로 팔면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다. 영구적 하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망했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