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기업가로 둔갑한 조폭들의 두 얼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7 13:24
  • 호수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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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사·은수미 시장 조폭 연루설…“사실 아니다” 부인

 

정치권에 ‘조폭 연루설’이 대형 이슈로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연일 이재명 경기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의 ‘조폭 연루설’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특검 추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바른미래당은 이 지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재명 지사와 은수미 시장의 성남 지역 폭력조직인 ‘국제마피아파’와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인 이아무개씨(38)가 핵심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2012년 3월 ㈜코마트레이드(코마)를 설립했다. 그 뒤 성남시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2015년 10월 성남시와 복지시설 환경개선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노인요양시설 등에 공기청정기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성남FC에 기부금을 후원했다. 이씨는 성남시 중소기업인대상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이 지사가 변호사 시절이던 2007년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61명이 검거된 사건에서 이 중 2명의 변론을 맡아 2차례 법정에 출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두 사람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 지사도 이런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들이 조폭인지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은수미 시장의 조폭 유착설도 제기됐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이 대표가 은 시장후보에게 운전사와 차량을 지원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은 시장은 “당시 최씨가 자원봉사 차원에서 도운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특정 회사가 급여를 지급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이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에는 진실을 규명하라는 청원들이 빗발치고 있다. 

 

© 일러스트 오상민


 

기부천사 흉내 낸 현역 조폭

 

코마의 이 대표는 국제마피아파와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조폭 출신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선량한 기업가로 활동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 대표는 두 얼굴의 기업가였다. 그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에 나서는 등 선량한 사업가처럼 행세했지만, 여전히 ‘현역 조폭’이었다. 경찰의 ‘관리 대상’ 조폭 명단에도 올라 있었다.

 

이씨는 2015년 1월 온라인 게임을 하다 광주의 조직폭력배들과 시비가 붙자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20여 명을 이끌고 광주에 가서 패싸움을 벌이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해 8월부터 국제마피아파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던 중 이씨의 범죄혐의를 포착했다. 이씨가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구속되자 옥중 조사를 진행, 올해 6월에 추가 입건했다. 

 

정치와 조폭의 유착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조폭들은 시대 상황에 맞게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으며 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배경이 될 정치세력과 결탁했다. 이승만 정권은 정적들을 제거하거나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 깡패’들을 이용했다. 조폭들은 이것을 배경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이들은 ‘반공단체’로 위장하며 애국자처럼 행세했다.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정의사회 구현’을 내세웠다. 사회악을 일소한다며 ‘삼청교육대’까지 운영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조폭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여 꼭두각시처럼 이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일명 ‘용팔이 사건’이다. 1987년 4월 통일민주당 창당 행사에 각목을 든 폭력배들이 난입해 각목으로 당원들을 폭행하고 기물을 부수고 집기를 불태웠다. 전두환 정권의 지시로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이 전주파 두목 ‘용팔이’ 김용남에게 사주해 벌어진 일이다. 

 

조폭들은 광범위한 인맥을 맺고 있다. 겉으로는 ‘사회악’이라며 손가락질하는 경멸의 대상이지만 이들의 인맥을 보면 혀가 내둘러진다. 2013년 1월5일 국내 ‘조직폭력 3대 패밀리’ 중 하나인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우리 속담에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많아도, 정승이 죽으면 조문객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조폭 두목’의 죽음 앞에 이런 말은 무색해졌다.

 

김씨의 장례식장은 연일 조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최소 2000여 명이 다녀갔다. 김씨가 사망하면서 평소 그가 관리하던 화려한 인맥도 드러났다. 그의 빈소는 종교인, 프로스포츠 감독, 연예인, 경제인 등이 보낸 조화 200여 개로 가득 찼다. 물론 개인 신상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 유명 인사들은 다른 방법으로 조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폭 연루설에 휩싸인 이재명 경기지사(왼쪽)와 은수미 성남시장 ©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더욱 치밀해진 조폭들의 ‘인간 보험’ 

 

이들 중에는 정치인·군인·법조인·관료 등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김씨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유명 인사들의 조화는 안으로 들여놓은 후 문상객들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조폭들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조폭들은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 주먹을 휘둘러서는 먹고살기 힘들 뿐 아니라 더 이상 설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조직형’에서 ‘기업형’으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폭력을 호구지책으로 삼을 때는 ‘두목’ ‘부두목’ ‘행동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기업 형태로 바뀌면서 ‘고문’ ‘회장’ ‘사장’ ‘부장’ 등의 호칭으로 바뀌었다. 물론 구성원들 대부분은 조직원들로 채워졌다.

 

이때부터는 ‘의리’가 아니라 ‘돈’을 따지기 시작했다. 조직원들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사업체를 늘려가며 ‘돈’을 버는 데 치중한다. 돈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돈이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돈의 흐름에 아주 민감하다. 도박장을 운영하고, 기업사냥꾼으로 변신해 돈 한 푼 없이 알짜기업을 꿀꺽하기도 한다. 조직들 간에는 ‘전쟁’ 대신 필요에 의해 ‘협력’하는 행태로 바뀌었다. 과거 집단 패싸움을 벌이던 수준을 넘어 코스닥 상장기업을 인수해 자금을 횡령하거나 사행성 게임 영업장을 운영하면서 법망을 피해 불법 행위를 일삼고 있다. 또 코마처럼 선량한 기업 행세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거액의 기부금을 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겉으로는 조폭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된다.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는 더욱 은밀해졌다. 조폭들은 자신들의 사업체 보호를 위해 끊임없이 ‘인간 보험’을 든다. 특히 경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에게는 스폰서 역할을 자처한다. 용돈 명목으로 돈을 주거나 선물 등으로 환심을 산다. 퇴직 경찰관들의 경우에는 직원으로 채용해 로비스트로 활용하기도 한다. 코마도 성남 지역 전직 경찰관들을 법무팀 직원으로 채용했다.

 

정치권 인사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보험을 든다.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거나 회식비 대납, 운전 대납, 선거 홍보활동 등에 나서는 것으로 파악된다. 훗날 이것은 해당 정치인에게는 ‘족쇄’가 돼서 사사건건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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