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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팩트 폭행’ 하고 싶다면 ‘이것’부터 보자

[김종일의 국회 사용설명서] 5회 - 강령은 지지자들을 향한 ‘프러포즈’이자 ‘서약서’

김종일 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3(Mon) 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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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한 마리 먹었습니다. 러시아 월드컵, 한국과 독일 경기를 보며 먹었습니다. ‘1인1닭’ 원칙에 따라 혼자 한 마리 다 먹었습니다.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좋은 경기력으로 2:0이라는 스코어로 승리해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외신들은 일제히 한국이 이번 월드컵 최대 이변의 역사를 썼다고 보도했습니다.

 

저도 새 역사를 썼습니다. 최고 신기록입니다. 인생 몸무게를 경신했습니다. 지인들이 일제히 “살 쪘네”라고 합창을 합니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요가와 자전거 타기를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의지박약 타파를 위해 주변에도 일제히 알렸습니다. 직장 동료가 묻습니다. “선배, 요가 재밌어요?” 요가를 같이 하는 다른 동료가 저 대신 대답했습니다. “얘, 딱 두 번 왔어.”

 

맞습니다. ‘팩트 폭행’을 당하면 아픕니다. 정치인들도 똑같습니다. 팩트에 근거한 제대로 된 비판과 지적을 당하면 뼈아파합니다. 정치인들이 유독 뼈아파할 때가 바로 자신이 속한 정당의 강령에 근거한 지적과 비판을 받을 때입니다. 이런 비판과 지적이 이어지면 각별히 언행을 주의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심지어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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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헌법…비전·정체성·이념 모두 담겨 

 

당의 강령이란 국가의 헌법과 같은 겁니다. 모든 정당은 자신들의 정치 이념과 비전을 담은 강령을 갖고 있습니다.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강령만큼 그 당을 설명하는 건 없습니다. 당의 정체성, 존재 이유, 비전 달성 방법 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 할 것인지, 어떻게 그 이익을 보호하고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지지자들을 향해 건네는 프러포즈라고 할 수도 있고, 서약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당들은 어떤 강령을 갖고 있을까요? 2018년 7월23일을 기준으로 각 당의 홈페이지에서 찾아봤습니다. 오늘은 각 당의 강령 전문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강령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정체성과 비전의 엑기스가 담겨져 있는 게 바로 전문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해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확보한다’는 내용을 담은 헌법 전문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담긴 한 문장입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강령 전문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민주당의 강령 전문은 다소 긴만큼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중산층과 서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가 있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하여 ‘정의, 안전, 통합, 번영, 평화’를 우리의 시대적 가치로 삼는다. (중략) 우리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로운 사회, 누구나 천재지변과 사건·사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사회, 모든 국민이 서로 존중하면서 더불어 사는 통합된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고 삶이 풍요로운 번영된 나라, 튼튼한 안보를 토대로 남북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로운 나라를 실현할 것을 다짐한다.

 

민주당이 타깃팅하고 있는 핵심 세력은 ‘중산층과 서민’입니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는 ‘정의, 안전, 통합, 번영, 평화’입니다. ‘정의’를 맨 앞에 배치한 게 눈에 띱니다. 민주당은 강령에서 “정치·경제 권력을 분산시키고 각 부문마다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과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최근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민주당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자본과 노동이 상생하는 인간 중심의 민주적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면서 ‘정의가 숨 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는 약속도 했습니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보수 정당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 그리고 국가 안보를 강조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의 원칙을 바탕으로, 국가존립과 경제성장의 기반이 되는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대한민국 국토와 주권을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개인,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도전정신과 성과가 보상받도록 하면서 경제의 포용성을 높여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조화롭게 추구하며, 소득·지역·세대·이념·성 등에 의한 격차나 차별을 해소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간다. (후략)

 

민주당과 한국당의 강령은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사실은 적잖은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 예가 ‘시장 경제’라는 용어입니다. 두 당은 이 말을 서로 다르게 사용합니다. 한국당은 그냥 ‘시장 경제’라고 하는 반면, 민주당은 시장 경제라는 말 앞에 ‘공정한’ ‘민주적’ ‘건전한’ 등의 말을 붙여 사용합니다. 상대적으로 한국당은 시장에서의 자유를 더 중시합니다. 당연히 그만큼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등 국가의 제약을 줄이는 정책을 선호합니다. 민주당은 반대입니다. 민주당은 “건전한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 국가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입장입니다. 자유로운 경제활동도 중요하지만 시장 실패 등을 보완하기 위해 복지와 분배정책을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복지, 노동 등 모든 분야에서 두 당은 이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우클릭’이라는 말에, 반대로 한국당 내부에서 ‘좌클릭’이라는 말에 노이로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습니다. 여야는 모두 큰 선거를 앞두고 기존의 지지자(집토끼)가 아닌 중도층(산토끼) 등의 지지를 얻기 위해 ‘좌클릭·우클릭’ 전략을 펼칩니다. 하지만 곧 내부에서는 ‘당의 정체성이 무너진다’며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애초에 당을 지지했던 이유가 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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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강령 개정 시도는 왜 실패했나

 

정당의 강령을 가볍게 생각했다가 큰 코를 다친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안철수 전 대표입니다. 2014년 초 민주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던 안철수 전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통합신당의 정강·정책 등이 담긴 강령 초안에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 등을 제외하려다 민주당 안팎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안 전 대표 측은 신당 정강·정책 초안에 ‘6·15 선언’ ‘10·4 선언’을 제외하면서 “과거의 소모적, 비생산적인 이념논쟁은 피하는 게 좋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행동은 민주당 내부에서 민주당의 역사와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사건을 ‘이념 논쟁거리’로 치부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역사인식과 철학, 안철수표 ‘새정치’의 실체 문제로까지 불붙기도 했습니다. 결국 안 전 대표 측은 강령에 ‘6·15 선언’ ‘10·4 선언’을 적시키로 한 발 물러섰지만, 그가 입은 내상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안 전 대표가 당을 떠나고 민주당은 2016년 8월 ‘안철수표 강령’을 다시 수정합니다. 민주당은 강령 전문·본문에서 ‘새정치’ ‘새로운 정치’라는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새정치’는 안 전 대표의 주요 슬로건입니다. 또 민주당은 ‘혁신과 함께 하는 경제로 번영하는 국가’를 ‘성장과 분배가 조화롭게 실현되는 더불어 잘사는 국가’로 교체했습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방지한다’는 부분은 양극화 등 사회문제 해결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하는 등 경제민주화 기조도 강화했습니다. ‘안철수의 색깔’을 지운 것이죠. 

 

지금 ‘안철수의 색깔’이 담긴 강령은 어떨까요? 

 

바른미래당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여 굳건한 국가안보체계 위에서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자유와 평등, 정의와 공정, 인권과 법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고,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진영정치와 지역주의 극복, 미래지향적 개혁과 국민통합을 주도하여 정의롭고 따뜻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바른미래당은 합리적 보수를 지향합니다. ‘공정한 시장경제’는 민주당 쪽에, ‘굳건한 국가안보체계’는 한국당 쪽에 가깝습니다. 중도보수와 그 좌우 중도층을 타깃팅 한 것입니다. 

 

 

강령 보면 원하는 지지 정당 찾을 수 있어


보다 강령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정당들도 있습니다. 정의당은 “우리는 비정규직의 정당”이라고 강령에서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청년 구직자와 같이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를 대표하는 데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정의당이 내세운 방법론은 ‘함께 행복한 정의로운 복지국가’입니다. 

 

녹색당은 스스로를 ‘반(反)정당의 정당’이라 정의했습니다. 녹색당은 “우리는 보편적 인권을 넘어 생활정치·다양성 정치·녹색정치를 통해 소수자와 생명과 자연을 옹호합니다”라고 강령에 적어놓았습니다. 얼마 전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왜 페미니즘 이슈를 내걸고 선거를 치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제가 연재를 시작하며 ‘정치가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박태환 수영선수에게 박지성 축구선수만큼 공을 왜 잘 차지 못하냐는 질문 어떻게 느껴지시나요?”라고요. 서민과 중산층을 우선하겠다고 선언한 정당에게 “왜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은 내놓지 않느냐”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제대로 된 비판일까요? 혹은 ‘비정규직 정당’을 선언한 정당에게 “너희는 왜 알바노동자 편만 드냐”라고 하면 그건 또 제대로 된 지적일까요? ‘팩트 폭행’은 ‘팩트’에 근거해 ‘폭행’을 해야 완성됩니다. 기억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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