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코드 맞추기에 은행권 탄식 커진다
  • 이용우 시사저널e. 기자 (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8.07.20 16:03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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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 “희망퇴직 늘려서라도 신규채용 활성화”…시중은행, 신입행원 채용하며 명퇴 저울질

 

국내 은행권의 주요 화두는 ‘몸집 줄이기’다. 디지털 기술이 은행에 접목되면서 비대면 거래가 늘어 지점을 이용하는 고객 수가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은 지점 통폐합과 직원 감축 등을 통해 조직 슬림화와 경영 효율성 강화에 나서 왔다. 

 

이런 은행들이 이례적으로 올해 하반기에 대규모 신규채용에 나선다. 인력 감축이라는 금융권 변화와 상관없이 은행 경영 방침을 ‘정부 코드’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은행들이 밉보이지 않기 위해 신입행원을 많게는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은행들은 대규모 신입채용을 진행하면서도 반대급부로 발생할 조직 비대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희망퇴직 규모를 더 늘려야 할지 고심 중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은행 측에 퇴직금을 높여 희망퇴직을 늘려서라도 신규채용에 나서라고 주문하고 있다. 중간에 낀 은행들은 대규모 희망퇴직에 따른 퇴직금 마련이 만만치 않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신규채용 앞에서 은행들은 진퇴양난에 처한 모양새다.  

 

시중은행들이 올해 신입행원 채용 규모를 대거 늘리면서 문재인 정부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시중은행 하반기 채용 규모 최대 2100명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이 계획하고 있는 하반기 신규채용 규모는 최대 2100명에 이른다. KB국민은행은 하반기에 은행 직원 총 600명을 채용한다. 하반기 정기공채 규모는 400명이다. 이와 별도로 IT 분야 등의 전문인력을 200명 뽑을 예정이다. 지난해 500여 명을 뽑은 것보다 100여 명 더 늘었다. 올해 상반기 300여 명을 채용한 신한은행도 하반기 450여 명을 더 채용할 예정이다. 특히 서울시금고 1금고를 따낸 신한은행은 차후 인력 충원이 필요할 경우 채용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상반기(200명) 채용을 끝냈고 하반기에 550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지난해 600여 명을 뽑았던 우리은행은 150명 늘려 올해 750여 명을 채용한다. KEB하나은행은 하반기에 약 400~500명 수준의 신입행원 공채를 실시한다. 지난해 하반기(250명)보다 최대 두 배 이상 신규채용을 늘릴 계획이다. 

 

이번 4대 시중은행의 대규모 신규채용 실시는 상반기 은행권의 채용비리 검사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금융 당국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확대 정책과 관련해 은행권에 채용을 독려하면서 나온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고용확대를 통해 소득주도 성장과 사람 중심의 지속성장을 이뤄내려 한다”며 “금융회사로서 이런 정책에 부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올해 하반기 공채를 작년보다 더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의 일자리 확대는 은행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은행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도 이 비용을 어떻게 줄일지에 있다. 은행이 지출하는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단연 인건비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이 지출한 인건비는 1조4930억원이다. 이 기간 4대 은행이 달성한 당기순이익은 2조5193억원이다. 전체 당기순이익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9.3%에 달했다. 그만큼 비대면 거래를 늘리고 불필요한 인력을 줄여 비용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은행들은 올해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하반기 채용 규모를 확대해 비용이 증가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런 은행의 부담을 금융 당국이라고 모를 리 없다. 금융 당국이 내놓은 방침도 희망퇴직 확대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5월28일 시중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청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최 위원장은 앞선 5월9일에도 출입기자간담회에서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퇴직금을 많이 주면 10명이 퇴직할 때 젊은 사람 7명을 채용할 수 있다”며 “은행들에 퇴직금을 올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희망퇴직자에게 최대 36개월 치 급여를 지급해 왔다. 인력을 내보낼 때도 그만큼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무작정 희망퇴직을 늘리는 것은 은행에 부담이 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은 결국 36개월에서 40개월 치 급여를 줘서라도 내보내라는 의미”라며 “당국은 어떻게든 신규채용을 늘리길 원하지만 이 모든 건 자율경영에 따라 은행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4월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노동시간 단축 관련 은행업종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위적으로 퇴직자 늘릴 경우 업무 지장”

 

현재 시중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요청에 따라 희망퇴직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KEB하나은행은 하반기 중 준정년 특별퇴직을 실시할 예정이다. KEB하나은행은 노사와 협의해 준정년 특별퇴직에 해당하는 직원 연령과 퇴직금 기준을 정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희망퇴직 범위를 근속연수 15년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총 1020여 명의 희망퇴직자를 받았다. 우리은행은 민영화 이후 예금보험공사와의 경영정상화 이행 약정(MOU)이 해지되면서 퇴직금을 최대 30개월 치 급여로 늘릴 수 있었다. 다만 우리은행은 올해 퇴직금 규모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전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를 1978년생으로 확대하면서 700여 명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올해 다시 희망퇴직을 실시할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KB국민은행도 희망퇴직 계획이 현재까지 없다며 시기나 퇴직금 규모를 확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은행들은 희망퇴직을 매년 실시하며 고액 연봉을 받는 직원이 줄고 신입 행원이 늘어 경상이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도 전망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36개월 치 퇴직금을 주며 희망퇴직을 받고 있지만 1억원의 고액 연봉자가 나가고 신입행원이 들어오면서 장기적으로 비용이 절감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희망퇴직은 경영 방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인위적으로 퇴직자를 늘릴 경우 은행의 주요 인력이 나가 업무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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