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조사4국 전격 축소에 뒷말 무성
  • 유재철 시사저널e. 기자 (yjc@sisajournal-e.com)
  • 승인 2018.07.20 15:17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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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행정 투명화 일환 vs 정치 세무조사 논란 탈피용?

 

국세청이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사4국을 축소하며 이른바 ‘정치 세무조사’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삽을 떴다. 세무 당국에 따르면, 국세청은 7월 중순 인사이동에서 서울청 조사4국의 3개 팀 인력 총 15명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명가량 되는 조사4국 전체 인원의 약 8% 수준으로 이들은 대기업의 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1국에 재배치됐다.

 

조사4국 축소 배경에는 국세 행정을 투명화하겠다는 이번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승희 국세청장은 2017년 국세청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조사4국 축소에 대한 복선을 어느 정도 깔아 놨다. 당시 후보자였던 한 청장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비서실장, 민정수석, 경제수석 등으로부터 특별 세무조사 지시가 내려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 세무조사가 국세 행정 운용 목적 외에 이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세청이 최근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사4국의 인원을 축소하면서 다양한 얘기들이 관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연합뉴스


 

조사4국 축소 결정 이례적

 

이번 조사4국 축소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과거 정치 세무조사를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국세청이 그간 정치 세무조사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이를 부인하면서도 조사4국을 더욱 견고히 유지했기 때문이다. 조사4국 축소 결정은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다.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조사4국 축소가) 결정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간 조사4국이 ‘정치적 세무조사’에 나서고 있다는 설(說)은 많았지만 확인된 적도, 이를 인정한 적도 없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정치적 세무조사 지시를 내린 당사자와 받은 자가 양심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실체가 드러나긴 힘들다”고 말했다. 그나마 국세청 내부 ‘사무분장(分掌)’을 통해 조사4국이 정치적 세무조사에 동원될 수 있다는 정도만 확인됐다. 국세청 내부 매뉴얼인 ‘지방청 사무분장’을 보면 서울청 조사1~4국 중 4국만 유일하게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이 특히 중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별도 계획에 따라 실시하는 제세 조사계획 및 종합분석’이라고 표시돼 있다. 국세청 출신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매뉴얼이 말하는 ‘별도의 계획’은 윗선에서 내려오는 ‘지시’일 가능성이 높다. 

 

조사4국이 정치적 세무조사 논란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조사4국장 자리가 고위직으로 가기 위한 필수 엘리트 코스라는 점이다. 현 한승희 청장과 전임 임환수 청장 모두 조사4국장 출신이며, 역대 수많은 청장들이 서울청 조사4국을 거쳤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 조사4국장이 정부 성향에 맞는 코드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8년 이후 역대 4국장 7명 중 5명이 특정(영남) 지역 출신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세청 입장에서 보면 조사4국 조직을 축소한다는 것은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차, 포 떼고 전쟁터에 나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사4국 조직을 축소한다고 해서 정치적 세무조사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세청이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소폭의 인사이동으로, 일종의 제스처만 취하고 정치적 세무조사는 그대로 수행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세무업계 관계자는 “4국이 그대로 존재하는 이상 정치적 세무조사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4국장, 국세청 엘리트 코스

 

정치권에서는 제도적 보완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추경호 의원은 지난 2월, 세무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세무공무원이 특정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의 실시 또는 중지를 지시받거나 요청받은 경우 지체 없이 신고하도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세무공무원의 대통령비서실 파견을 금지하고, 세무공무원 퇴직 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대통령비서실의 직위에 임용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도 타 부처 고위 공무원이 국세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는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시 국세청 현판 ⓒ연합뉴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린 서울청 조사4국   

 

서울청 조사4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선 앞으로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전개될 것을 예고하는 것과 같다. 만약 오너 일가의 조세포탈과 관련된 일이면 해당 기업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기업 비서실은 총수가 서울지검으로 출두하는 장면을 미리 그려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법의 심판대에 서기 전에 조사4국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CJ그룹은 2013년 이재현 회장 구속 직후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면서 당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손경식 회장이 복귀해 위기 상황을 이끌었다.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이후 경영권을 아들인 조현준 회장에게 넘겼다. 

 

탈세 제보 등을 토대로 세무조사를 기획하는 조사4국은 대기업들에는 말 그대로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다. 이 때문에 국세청이 대기업 세무조사에 착수했을 때 ‘1국이냐 4국이냐’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 된다. 실제 조사4국이 착수해도 대기업들이 “조사1국이 진행하는 정기조사”라고 해명하는 것도 4국 세무조사가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4국 조사라고 일단 인정하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우리 회사가 탈세를 저질렀다는 추측성 보도가 줄을 잇기 때문에 기업 이미지에도 상당히 좋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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