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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사적 복수’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

[김종일의 국회 사용설명서] 4회 - ‘정치’ 빼면 우리 삶은 ‘정글’이 된다

김종일 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7(Tue)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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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 보셨나요? 10대 남성들이 고등학교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잘 묘사한 영화입니다. 사실 남고에서 서열은 ‘성적’이 아닌 ‘주먹’으로 매겨집니다. 마치 ‘정글’과도 같습니다. 정글과도 같은 학교 안에서 싸움을 잘 하고 힘이 세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립니다. 요새 학교를 그린 영화들을 보면 ‘주먹’은 ‘금수저’로 대체된 것으로 보입니다. ‘주먹’보다는 ‘돈’이 권력이 된 최근 세태를 반영한 것이겠죠. 

 

사람의 본성은 본디 어떨까요? 선할까요 악할까요?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 중 무엇이 정답일지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요새 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일 것입니다. 성선설을 뒷받침 하는 사례만큼 성악설을 보여주는 예가 있을 테니깐요. 《말죽거리 잔혹사》 영화 속에서도 이기심과 이타심은 부딪칩니다. 싸움을 잘 하는 일진이 내 친구를 괴롭히고 있을 때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같이 맞아주기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은 영화 내내 주인공을 괴롭힙니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끝내기 위해 탄생한 ‘정치’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가 정치라는 것을 만들어 낸 이유, 국가공동체라는 발명을 해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선할 때도, 악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인간이 악하더라도, 그 악함을 정글에서처럼 뽐낼 수 없는 ‘법과 제도’를 만든 거죠. 바로 ‘국가의 탄생’입니다.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합니다. 경찰과 군대가 있는 이유죠.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사적 복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기 때문이죠. 아무리 억울한 일이라도 처벌은 국가가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정글’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백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역사는 ‘분쟁과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이 《말죽거리 잔혹사》였던 것입니다. 혹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토머스 홉스라는 영국의 철학자가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힘이 지배하는 세상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는 본래 이기적인 인간은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 즉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으면 ‘정글’에서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고 봤습니다. 타인이 나를 해칠지, 아닐지 알 수가 없으니 인간은 점점 호전적으로 변하고 모든 타인과 싸울 수밖에 없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개된다는 겁니다. 즉 홉스는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 셈입니다. 

 

홉스는 ‘정글’ 같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수단으로 국가가 내부 평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적 폭력을 금지하고 국가가 모든 폭력을 독점하게 한 것이죠. 이렇게 해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국가공동체’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 국가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정치’를 필요로 합니다. 

 

너무 간단히 요약해 설명 드리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우리가 채택하고 유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말죽거리 잔혹사》를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대책 없는 깡패국가가 되지 않기 위해 인류가 고안해 낸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국가에 족쇄를 채운 겁니다. 국가가 왕처럼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법과 제도에 따라 움직이는 체제를 만든 것이지요. 사실 민주주의라는 인류의 위대한 성취를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채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아직 그러지 않지요. 학교에서 잘 알려주지 않고 시키긴 하지만, 우리가 국민의례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이유는 그게 국민 된 도리여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사적 폭력을 포기하는 대가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을 공유하는 것이죠. 

 

기왕 철학자가 등장한 김에 정치와 아주 연관 깊은 인물을 한 명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만들어 낸 장본인입니다. 흔히 이 말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치적이며, 정치를 떠날 수 없다고 해석하지만 그리 정확한 해석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오래 공부한 학자들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이라고 이 말을 해석합니다.

 

 

인간에게 ‘정치’를 빼면 남는 건 ‘동물’

 

앞서 살펴봤듯 인간은 악하고, 약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정치공동체인 국가를 만듭니다. 하지만 모여서 산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될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생존을 위해 국가라는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많은 갈등과 분쟁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다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을 살펴볼까요? ‘정치’를 빼고 나면 ‘동물’만 남습니다. 인간이 정치를 잃어버리면, 동물만 남은 정글로 다시 돌아간다는 말로 귀결됩니다. 정글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그랬듯 힘센 놈이 약한 놈을 괴롭힙니다. 사실 괴롭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죽이죠. 자연법칙이기도 합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듯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정치를 통해 다툼을 멈추고 타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인간은 악한 본능을 극복할 이성을 갖추고 있고, 이런 이성들을 맞대고 정치라는 타협의 체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라는 체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이 동물이 갖지 못한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가 바로 그런 이성을 실천하는 영역이라 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는 일진의 횡포에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올라와”라고 소리칩니다. 다행히 현수는 싸움에서 이기지만 본인도 크게 다칩니다. 학교에서도 쫓겨납니다. 큰 희생을 치른 거죠. 정치는 이런 ‘일상의 잔혹사’를 끝내자는 외침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한 데 어울려 살 수 있게 하자는 외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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