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치료제, 그 위험한 유혹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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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2상만 통과하면 판매 허가되는 줄기세포 치료제…“승인돼도 안전 단정하기 힘들다”

 

전 세계에서 판매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총 7개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판매되는 4개는 모두 우리나라가 개발했다. 개수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의 선두주자처럼 보인다. 이젠 축배를 들어도 되는 걸까. 

 

미국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연구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로 꼽힌다. 1996년부터 10년 동안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등록된 관련 임상연구 314건 중 155건이 미국에서 이뤄졌다. 치료제 출시를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자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금까지 판매허가를 내준 줄기세포 치료제는 ‘0개’다. 

 

© 연합뉴스


 

“식약처의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 기준 허술하다”

 

이게 뭘 뜻하는 걸까. “FDA의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 기준은 우리나라나 유럽의 기준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식약처는 그 허가 기준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편이죠.” 한 의대 교수가 시사저널에 말을 꺼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6월27일 기자와 만나 “한국에서 만들어진 줄기세포 치료제에 과도한 기대를 하는 건 금물”이라고 주장했다.

 

보통 국내에서 신약이 시장에 나오려면 임상시험을 3상까지 거쳐야 한다. 3상은 ‘바늘구멍’이라 불릴 만큼 까다롭다. 1상에선 건강한 일반인 20~100명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확인하면 된다. 반면 3상에선 1000~5000명의 질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은 물론 유효성까지 입증해야 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신약이 3상을 거쳐 판매승인을 받기까지 대략 15년이 걸린다고 한다. 

 

단 예외가 있다. 희귀병 줄기세포 치료제다. 이를 만드는 제약사는 임상 3상 결과를 제출한다는 조건으로 2상까지 통과하면 판매승인을 받을 수 있다. 일명 ‘조건부 허가’다. 이와 같은 내용은 2016년 중순 박근혜 정부 때 바뀐 식약처 고시에 공식적으로 담겼다. 



‘희귀병 줄기세포 치료제’는 2상만 통과하면 허가돼

 

임상시험 조건도 일반 신약보다 덜 까다롭다. 식약처 바이오심사조정과 관계자는 7월3일 “희귀병 줄기세포 치료제는 임상시험 규모에 있어 공통된 기준이 없다”며 “그 특성에 따라 시험 대상의 수가 아주 적어도 판매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취재 중에 만난 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자는 “1상 시험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FDA는 지난해 11월 홈페이지를 통해 “만약 다른 나라에서 줄기세포 치료제를 맞는 걸 고려하고 있다면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FDA는 “몇몇 원칙 없는 제약업자들이 입증되거나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를 공급하고 있다”며 “우리는 해외에서 시행되는 줄기세포 치료까지 감독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네이처, “한국은 데이터 부족해도 치료제 허가해줘”

 

특히 영국의 저명 학술지 네이처는 한국을 콕 집어 비판했다. 2012년 6월 기사를 통해 “한국은 논문에 대한 동료평가(peer review) 데이터가 부족해도 줄기세포 치료제를 허가해준다”고 주장한 것. 동료평가는 논문 주제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 2~3명이 논문의 합리성·객관성 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논문 심사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처는 “한국에서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식약처의 보도자료를 통해 전파된 것”이라며 “동료평가 논문은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식약처는 줄기세포 치료제에 일단 판매허가를 내준 뒤 사후 검증과정에서 동료평가 논문을 검토한다. 

 

다만 “희귀병을 앓는 환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줄기세포 치료제를 조건부로 빨리 허가해주는 건 타당하다”(오일환 전 한국줄기세포학회장·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오 교수는 “희귀병이 워낙 환자수가 적다 보니 치료제의 유효성이 통계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도 스스로 “승인된 줄기세포 치료제라고 해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하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고 가이드라인에서 밝히고 있다.  

 

6월 초 경기도 광명시에서 만난 김일표(65)씨. 그는 2014년 말부터 운동신경세포가 서서히 파괴되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그는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춰준다는 줄기세포 치료제 '뉴로나타-알'을 2015년 중순에 맞았다. 3년이 지난 지금 병세는 결국 악화됐다고 한다. © 시사저널 공성윤

 


완치 기대하고 맞았다가 낭패 볼 수도

 

줄기세포 치료제가 병을 낫게 해줄 것이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2014년 7월 국내에서 판매 허가받은 ‘뉴로나타-알’은 루게릭병 치료제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4번째로 승인된 토종 줄기세포 치료제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루게릭병 환자 김일표(65·남)씨는 2015년 중순 한양대병원에서 뉴로나타-알을 맞았다. 가격은 6000만원이었다. 

 

6월 초 기자와 만난 김씨는 온몸의 근육이 마비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대신 부인을 통해 의사를 밝혔다. 부인은 “남편은 병이 낫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거금을 들여 주사를 맞은 것”이라며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은 병이 더 악화됐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뉴로나타-알의 효능을 탓할 순 없다. 식약처 판매허가서에 적혀 있는 이 치료제의 효능은 ‘루게릭병 진행속도 완화’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뉴로나타-알을 시술한 한양대병원 의료진은 “치료제의 효능에 대해 김씨에게 명확히 알렸다”고 강조했다. 현재 김씨는 “의료진이 뉴로나타-알을 제대로 시술하지 않았다”며 병원 측을 고소한 상태다.

 

최규진 인하대 의대 교수(의료윤리학)는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투자는 찬성한다”며 “하지만 상업적인 부분에 맞춰 개발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줄기세포 치료는 합리적인 의심이 필요한 분야다. 환자 입장에선 치료를 받기 전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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