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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콩·채소 먹지 말라’는 주장, 논란 가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통념 깬 미국 현역 의사의 주장에 식품학자들 반박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2(Thu) 18: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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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콩·채소를 먹지 말라는 주장에 대한 논란이 식을 줄을 모른다. 이 주장은 미국 현역 의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어서 영양학자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이 주장을 담은 책이 국내에도 소개돼 일반인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현미나 채소가 건강에 좋다는 통념을 깬 이 의사는 스티븐 건드리 박사다. 미국 예일대와 미시건대에서 흉부외과를 공부한 뒤 로마린다 의과대학에서 외과·소아 흉부외과 과장으로 16년간 재직한 심장 전문의다. 그는 수술을 받지 못할 정도로 악화된 심장병 환자들이 현미·콩·채소가 없는 식이요법으로 증상이 호전됐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핵심에는 렉틴이라는 성분이 있다. 렉틴은 주로 식물이 자신을 먹는 포식자(동물, 곤충, 세균)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독소다. 렉틴은 종류가 많은데, 밀·보리·호밀·귀리 등에 있는 글루텐도 렉틴 중 하나다. 

 

건드리 박사는 렉틴이 몸속에서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방해하므로 음식 과민증, 탐식증, 소화장애, 두통, 에너지 부족, 관절 통증 등 갖가지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렉틴은 모든 식물에 있는데, 특히 곡물·콩·토마토·감자·가지·후추·과일 등에 많다. 

 

건드리 박사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곡물의 껍질을 벗겨 먹어온 것은 렉틴을 줄이려는 행동이었다고 역설한다. 그는 현지 언론을 통해 "아시아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40억명의 사람이 오래전부터 현미의 외피를 벗겨 백미로 만들어 먹은 일이 어리석기 때문인가. 서구에서도 특권층은 곡물의 껍질을 벗겨 흰 빵을 만들어 먹었고, 현미와 통곡물로 만든 갈색 빵은 소작농의 몫이었다"고 주장했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곡물·콩·채소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을 깨는 결과를 경험한 건드리 박사는 이를 '식물의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관련 책도 냈다. 그는 "환자의 식단에서 과일을 배제할수록 건강 상태가 좋아졌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신장 기능이 호전됐다. 오이나 호박처럼 씨앗이 많은 채소를 먹지 않을수록 환자들은 빠르게 회복했고, 체중이 더 많이 빠졌으며, 콜레스테롤 수치가 많이 개선됐다. 더구나 환자들이 조개류와 갑각류, 달걀 노른자를 많이 먹을수록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아졌다"고 말했다. 

 

렉틴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전문가는 건드리 박사뿐만이 아니다. 환경운동가 리어 키스는 책 《채식의 배신》에서 "분해되지 않는 식물성 단백질인 렉틴은 혈액으로 흘러 들어가 크론병, 류머티즘성 관절염, 당뇨병, 다발성 경화증 등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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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성분으로 식품을 평가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와 같은 건드리 박사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40년 이상 영양학을 연구한 콜린 캠벨 코넬대학교 영양생화학과 명예교수는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렉틴 섭취를 피한 후 환자의 병(자가면역질환·암·심장병 등)이 호전된 사례에 대해 그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세상을 뒤흔들 소리"라고 비꼬았다. 환자에게 렉틴이 없는 식단을 처방한 후 병의 증세가 호전됐다면 이는 연구 결과가 아닌 단순한 경험이고 주장일뿐이라는 얘기다. 

 

또 캠벨 박사는 렉틴이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방해한다는 주장에 대해 "건드리 박사가 참고한 연구 논문에는 렉틴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캠벨 명예교수는 현지 언론을 통해 "요즘 가짜 뉴스 때문에 TV를 보기가 무섭다. 가공된 내용이 확산돼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며 “모든 종류의 암, 심혈관질환, 그 밖의 퇴행성 질환의 대부분이 채식 위주 식단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모리얼 허만 메모리얼시립병원과 데이비스 클리닉에서 비만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외과 의사 가스 데이비스 박사도 "건드리 박사의 주장은 엉터리다.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그렇게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품 속 렉틴 양으로 건강에 문제 된 바 없어"

 

오히려 렉틴은 심근경색, 일부 암, 당뇨의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여러 편의 연구가 국제학술지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에 보고된 바 있다. 1982년 국내 한 대학의 연구를 통해 렉틴은 유독성을 보이지만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기능도 확인됐다. 실제로 렉틴 성분이 있는 항암제도 개발됐다. 

 

그러나 렉틴은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성분이다. 실험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해하거나 유익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몸에서 렉틴의 흡수 과정이나 영향력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아직 식품으로 섭취하는 렉틴의 양으로 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보고는 없다. 곡물에는 여러 화학물질이 많은데, 렉틴이라는 한 성분으로 나타나는 특정 현상을 근거로 곡물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주장은 일반 식품·영양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건드리 박사는 특히 렉틴이 많은 콩을 섭취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이기원 교수는 "렉틴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확인된 바 없지만, 설사 나쁘다고 해도 곡물·콩·채소를 조리하는 과정에서 그 함유량은 10분의 1 이하로 감소한다. 인간은 대체로 현미나 콩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조리해서 섭취하므로 렉틴을 과하게 먹을 일도 없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권에서는 예전부터 콩을 발효시켜 먹는 식습관을 유지해왔다. 청국장과 일본의 낫또가 대표적인 콩 발효식품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콩으로 간장·된장·고추장을 만들어 먹는 식습관이 있다. 나름대로 인간은 건강을 위해 식품을 섭취하는 방법을 터득해온 것이다. 식품전문가 최낙언 편한식품정보 대표는 "한 성분만으로 특정 음식이 건강에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게 아니다. 개인이 먹어보고 만약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음식을 먹는다고 수명이 짧아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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