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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끊이지 않는 ‘검은머리 미국인’ 기업의 사기 행각

자동차부품업체 넘어 물류업계까지 ‘검은 손길’…국내 중소기업 생태계 교란

송응철 기자 ㅣ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5(Thu) 14:04:38 | 1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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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검은머리 미국인’의 사기행각이 다시 발생했다. 시사저널은 앞서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미국 디트로이트 소재 자동차부품업체 O사가 국내 중소기업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온 사실을 보도했다(시사저널 제1421호 ‘[단독] 국내 중소기업 울리는 검은머리 미국인 기업 주의보’ 참조). 해외 자동차업체에 납품시켜준다는 빌미로 부품을 받은 후 그 대금을 편취하는 식이었다. 당시 피해업체는 본지가 확인한 것만 4곳, 직·간접 피해금액은 40억원에 달했다. 중소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국내 수사기관의 영향력이 미국까지 미치지 않는 데다, 그렇다고 미국 내에서 법적 분쟁을 벌일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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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업체에 운송대금 일부만 준 뒤 ‘나 몰라라’

 

피해기업들이 코트라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진상조사가 진행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코트라에 수사권이 없는 만큼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어서다. 조사 결과를 회원사에 공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자동차부품업계에서는 또 다른 피해기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는 단순한 우려에 그치지 않았다. 본지 보도 이후 최근까지도 피해를 입은 부품업체들의 제보가 들어왔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일탈 정도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업계 전반에 수많은 피해를 양산해 왔으며, 피해기업을 경영난에 빠지게 하는 것을 넘어 사업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등 국내 중소기업의 생태를 심각하게 교란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O사가 부품업체뿐만 아니라 물류업체들을 상대로도 비슷한 편취 행각을 벌여온 사실이 확인됐다. 업종은 달랐지만 피해 유형은 판에 박은 듯했다. 대표적인 피해업체는 A사다. O사는 올해 1월 A사에 자동차부품 등을 자신들의 거래처인 미국 및 캐나다 소재 기업에 운송해 달라고 의뢰했다. 운송대금은 배송이 완료되면 지급하기로 했다. 배송을 완료한 A사는 항공화물 운송대금 5600만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O사는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A사가 거듭 운송대금을 요구하자 O사 대표이사인 권아무개씨는 ‘남편과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등 거래와 전혀 무관한 이유를 들며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다만 O사는 5월 중순 돌연 A사 법인 통장에 미화 1000달러를 입금했다. 외환이 입금된 것을 이상하게 여긴 주거래은행으로부터 확인 전화가 오기 전까지 A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A사는 법적 분쟁 발생 시 O사가 변론의 여지를 만들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금 일체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사기 혐의가 적용될 소지가 크다. 애초에 대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해석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대금 중 일부를 지불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영상·절차상 등의 이유를 들어 반론을 펼 수 있다. 앞선 사례를 보면 O사는 피해 부품업체들에 최소한의 대금을 빠짐없이 지불했다. 

 

또 다른 피해 물류업체 B사도 첫 운송대금만 받았다. O사는 지난해 11월 B사에 접근해 해외 운송을 의뢰했다. 1000만원대 소규모 거래였다. 대금은 역시 배송이 완료된 후 정산하기로 했다. 운송 완료 후 O사는 B사에 정상적으로 물류대금을 치렀다. 신뢰가 쌓이자 O사는 더욱 큰 규모의 운송을 의뢰했고, 양사는 11월부터 1월까지 거래를 이어왔다. 그러나 B사는 첫 거래대금을 제외한 나머지 대금을 지금까지도 받지 못한 상태다. 같은 시기 피해를 입은 C사도 비슷한 수법에 당했다. 거래 초반 운송대금을 지급해 신뢰를 확보한 뒤 나머지 거래대금을 편취하는 식이었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물류업체들의 피해 규모는 알려진 것만 현재 수억원대로 파악된다. 물론 다른 피해기업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한 번에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거래가 이뤄지는 부품업체들에 비해 피해 규모는 작은 편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피해를 입은 물류업체들은 경영에 막대한 차질을 입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피해기업 관계자는 “유동성이 넉넉지 않은 중소 물류업체들은 운송에 필요한 자금을 금융권에서 빌려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가운데 O사가 운송대금을 체불하면서 당장 현금 흐름이 막혀버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O사의 행태는 선량한 기업인들의 사업 의지를 꺾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피해기업 대응책 마땅치 않아…추가 피해 우려

 

O사는 최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온 물류업체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가 된 상황이다. 미국 내 한 물류업체가 나머지 물류업체들에 메일을 보내 O사의 결제 및 신용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다. 이로 인해 비교적 최근까지 O사와 거래해 온 물류업체들은 일제히 O사에 거래불가 입장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추가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O사가 지금도 새로운 물류업체를 접촉해 자동차부품 등을 해외로 운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O사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법인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지만 피해기업들의 대응책은 여전히 마땅치 않다. 업체들이 피해를 보전받기 위한 방법으로는 일단 민사소송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법적 분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 중소기업들의 경우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할 인적·물적 자원은 물론 경험도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실상 미국 내 소송을 벌일 엄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피해 부품업체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이 해외 소송에 취약하다는 점을 O사가 간파하고 계속 사기행각을 벌여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납품대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 O사와 미국 내에서 민사소송을 벌인 자동차부품업체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이 업체는 O사를 상대로 미국에서 벌인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결국 수억원에 달하는 납품대금을 받지 못했다. O사가 버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납품대금을 받아내기 위해선 추가적인 법률 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이 업체는 납품대금을 포기했다. 법조비용을 비롯한 유·무형의 부담이 받아야 할 대금보다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례 때문에 피해기업들은 미국 내 민사소송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업체들은 대신 형사고소를 선택했다. 이들 업체는 현재 경찰에 고소장과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마저도 실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권씨의 주소지가 미국으로 돼 있어 수사권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배를 하더라도 권씨가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한 신병을 확보할 수 없다. 인터폴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문제는 범죄금액이 10억원이 넘어야 수사 의뢰 요건이 갖춰진다는 데 있다. 공교롭게도 O사에 피해를 입은 부품·물류업체들의 피해액은 모두 10억원 미만이다. O사가 비교적 적은 액수만을 편취한 뒤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나서는 방식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피해업체들은 이를 인터폴 수사를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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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충족시킨 뒤 인터폴 수사 의뢰할 것”

 

피해업체들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단순히 피해 보전만이 목적이 아니다. 업계에 추가적인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단 O사 피해기업들을 모아 요건을 충족시킨 뒤 인터폴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피해업체 관계자는 “피해업체들을 수소문해 이들의 합산 피해금액이 10억원을 넘기게 되면 인터폴에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청와대에도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피해업체 관계자는 “O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자동차부품업체와 물류업체들의 생태를 교란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 

 

 

국내 중소기업 생태 위협하는 O사는 어떤 곳?

자동차부품업체 미국법인 꿀꺽…태생부터 문제

 

O사는 2000년대 초반 국내 자동차부품업체 D사의 미국법인으로 설립됐다. D사가 해외시장 개척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당시 코트라 통역지원으로 만난 권아무개씨(現 O사 대표이사)가 현지법인 설립을 돕겠다고 나섰다. D사는 법인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지원했다. 미국지사는 2006년부터 실적을 내기 시작했다. 이 무렵 권씨는 O사의 수익을 법인 계좌에 넣지 않고 별도로 관리했으며 재고자산도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D사는 권씨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권씨는 O사가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했다. 경영 편의를 위해 미국법인을 권씨 명의로 설립한 것이 문제였다. 권씨는 이후 미국법인에 파견된 D사 직원을 모두 내보내는 등 갈등을 벌였다. 결국 D사와 권씨는 O사의 소유권을 놓고 2년여 동안 법적 분쟁도 벌였다. 결국 사태는 양측의 합의를 통해 O사를 권씨에게 넘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D사는 법률 비용과 미국지사 설립 무산 등 막대한 유·무형의 피해를 입게 됐다.

 

소유권 분쟁이 종결된 직후 O사는 국내 부품업체인 E사에 접근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첫 번째 피해기업이다. O사는 E사에 미국 자동차업체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며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던 2012년 E사는 O사가 거래처에 입금계좌 변경을 신청해 14억5000만원 정도를 횡령한 정황을 파악했다.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한 결과, O사가 E사에 이자를 포함해 1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O사는 여기에 불복하고 2014년 7월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하면서법적 분쟁을 계속했다. 그 피해가 점차 확산되면서 도미노처럼 국내 중소기업을 덮치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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