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선거, '정당 vs 인물'? '인물 vs 인물'!
  • 동성혜 정치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2 09:39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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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제주지사 선거 여론조사 추이 정밀 분석

 

제주도 역시 ‘파란 물결’을 비켜 가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 제주도의원 지역구 31곳 가운데 25곳(80.6%), 정당 득표율 54.3%로 비례대표 도의원 7석 가운데 최대치인 4석을 차지했다. 제주도교육감도 전교조 출신인 진보 성향의 이석문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제주지사만큼은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무소속인 원희룡 후보가 당선됐다. 득표율 ‘51.7% 대 40%’로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격차는 11.7%포인트다. 원 후보가 출마선언을 한 4월17일 이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넘지 못한 50%대 과반 득표다. 무엇이 원 후보의 재선을 가능케 했을까.  

 

원 후보의 무소속 선택은 ‘신의 한 수’다. 정당보다는 무소속으로 ‘인물론’을 부각시킨 전략이 적절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50%대 고공 행진을 했던 더불어민주당, 6·13 선거 전날의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정국은 민주당 후보에게 절대 유리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지지기반 자체가 붕괴된 보수정당은 풍비박산 직전이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체제는 보수를 대표하는 게 아닌 보수의 품격조차 갉아먹었다고 평가받았다. 바른미래당은 ‘개혁보수’라는 공허한 외침 속에 선거기간 내내 불협화음을 일으킨 안철수-유승민 체제로 불안만 보탰다. 이 때문에 원 후보의 무소속 전략은 ‘정당 대 인물’로 링 자체를 옮겼다는 점에서, 사라진 운동장을 그나마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든 셈이다.

 

제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원희룡 무소속 후보가 6월13일 제주시 선거사무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무소속 선택 ‘신의 한 수’

 

선거 기간 여론조사 내용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원희룡 후보는 단순히 무소속이어서 승리한 게 아니라 ‘인물 대 인물’이라는 프레임에서 우위를 점했다. 후보의 공약을 통한 비전 제시,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점을 적극 활용한 여야 정당을 뛰어넘는 제주 인재 등용론 등은 기존의 지지층은 물론이고 일부 이완된 민주당 지지층마저 흡수했다.  

 

‘인물 대 인물’의 프레임은 상대 후보에 대한 도덕성 검증이 거셌음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확정된 직후 발표된 4월17일 제주MBC 등의 의뢰로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만 해도 문 후보(42.4%)는 원 후보(29.4%)를 13%포인트 앞섰다. 경선에 따른 컨벤션 효과와 2주 전인 4·3 70년 추념식을 맞이해 제주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효과를 충분히 만끽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치열했던 당내 경선만큼 깊어진 후유증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했다. 또한 경선 과정 동안 제기된 ‘유리의 성’ 주식 보유 논란, 송악산 땅 투기 의혹 등과 더불어, 야인 시절이던 2012년 부동산개발회사의 부회장직을 맡았던 사실, 도의원 시절 T골프장 명예골프회원으로 위촉돼 청와대 비서관 때도 골프장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도덕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원 후보 역시 도덕성 검증을 피할 수 없었다. 모친의 부동산 거래 의혹, B리조트 특별회원 의혹 등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 대응 태도는 달랐다. 의혹 제기 직후에는 사실관계를 확인해 조목조목 해명에 나섰다. 특히 B리조트 특별회원 의혹에 대해서는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사실무근임을 적극 알렸다. 이러한 과정은 도덕성을 중요시하는 민주당 지지층까지 끌어안는 기회를 만든 셈이다. 4월17일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63.2%의 지지(원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19.7% 지지)를 받았다. 이와 달리 부동산개발회사 부회장직이 밝혀진 이후인 5월14일 뉴스1제주본부 의뢰로 엠알씨케이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지지층에서 55.6%의 지지(원 후보 31.7%), 명예골프회원 위촉 사실이 밝혀진 직후인 5월21일 제주MBC 등의 의뢰로 코리아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지지층에서 49.5%의 지지(원 후보 31.1%)로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이 뚜렷했다. 반면 원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을 30%대에서 꾸준하게 유지했다.  

 

‘인물 대 인물’ 구도는 공약을 통한 미래비전 제시에서도 차이를 드러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제주지사 후보 3대 핵심공약을 평가한 내용에 따르면, 문 후보의 동북아 평화수도 제주, 제주형 자치모델 도입, 제주 4·3 해결 등 제주가 갖는 상징성을 강조했지만 지나치게 선언적이고 제주 도민들에게 시급한 사안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원 후보의 제주 난개발 방지 대책에 대해선 지나친 규제 강화는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청년 일자리 1만 개 공약 등에 대해서는 지역 현안에 맞췄다고 평했다. 원 후보의 청년 일자리 공약은 19~29세의 지지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 후보의 적극 지지층이기도 한 20대(19~29세)에서는 청년 일자리 공약을 발표한 이후에도 5월17일 제주MBC 등의 의뢰로 코리아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원 후보(30.7%)가 문 후보(50.4%)보다 19.7%포인트 한참 뒤처졌다. 하지만 점차 청년 일자리 정책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알려지면서 6월6일 제주MBC 등의 의뢰로 코리아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원 후보(28.9%)가 문 후보(32.5%)와 오차 범위 내 3.6%포인트 격차로 폭을 확 좁혀 청년층을 겨냥한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다. 

 

원 후보의 당선을 놓고 제2공항 폭력사태가 결정적이었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원 후보가 예비후보이던 5월14일 ‘제2공항’과 관련해 예비후보 5명의 토론회가 끝날 무렵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와 다르다는 이유로 폭행과 자해라는 극단적 방식이 등장해 파문이 일었다. 원 후보는 증오를 부추기지 않고 화해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범하다는 세간의 평을 받았다. 

 

 

제2공항 건설 해법도 이슈 

 

그런데 실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원 후보는 폭력사태가 일어나기 전 이미 ‘골든크로스’가 진행됐다. 사태가 일어난 당일인 5월14일 여론조사에서 이미 원 후보(42.1%)와 문 후보(37.1%)의 격차는 오차 범위 안이기는 해도 5%포인트 차이가 났다. 원 후보가 출마를 선언한 4월17일 이후 처음으로 문 후보를 앞서기 시작했다. 이틀 후인 5월16일 제주일보 등의 의뢰로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원 후보(41.0%)가 문 후보(36.8%)를 4.2%포인트 앞섰지만 14일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문 후보의 명예골프회원 위촉 사실로 도덕성 검증에 불을 붙인 5월21일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벌어졌다. 제2공항 폭력사태는 원 후보의 상승가도에 모멘텀을 마련했을 뿐이다. 

 

제2공항 건설에 대한 해법은 문 후보의 오락가락한 모습이 스스로 표를 갉아먹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제2공항 조기 완공에 대해 문 후보는 조기 완공하겠다던 입장을 중간에 ‘원점 재검토’라고 밝혀 ‘명확한 입장이 무엇인가’라는 공격을 받았다. 또한 본격 선거 기간에는 유세를 다니는 지역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논란을 빚었다. 결과적으로 제2공항 건설사업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에선 원 후보가 34%의 지지를 얻은 반면, 문 후보는 21%를 얻어 13%포인트 격차를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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