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⑤] 트럼프, 美 비난 여론 뚫을 수 있을까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8 09:27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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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언론 “‘세기의 도박판’에서 낭패 당했다” 지적

 

“역사상 전례 없는 정상회담이었지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문의 여지도 없이 이번 싱가포르 회담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승리였다.”

 

미국 유력 일간지를 대표하는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가 6월12일(현지 시각) 내놓은 기사 제목과 내용이다. ‘세기의 담판’으로 일컬어졌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첫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한 얘기다. 대부분의 미국 주류 언론들은 북·미 정상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자마자 독설에 가까운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이유는 이번 북·미 정상의 공동성명에서 이른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빠졌다는 점이다. 약 70년간 적대관계를 이어온 두 정상의 역사상 첫 만남 자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한마디로 “트럼프가 당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기대치를 잔뜩 올려놓고 예상을 빗나가는 원론적인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책임 공방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북·미 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됐다면, 역설적으로 미국 내에선 대북 정책을 놓고 본격적인 논쟁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 위치한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65분 동안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EPA 연합


 

정상회담을 불과 하루 앞두고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싱가포르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유일한 결과는 CVID가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이는 화근이 되고 말았다. 공동성명 발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CVID)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을 강력하게 믿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불과 하루 사이에 미국 입장이 거의 180도 바뀐 것을 두고도 ‘미국이 참패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트럼프, 미국 내 반발 예상했다

 

사실 싱가포르 현지에서도 정상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둔 당일 새벽까지도 북·미가 실무협상을 계속할 만큼 북한이 고자세로 나오고 있다는 말들이 파다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 추측이 다 맞아떨어진 셈이 되고 말았다. “실제로 받아낸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미국이 너무 많은 양보를 하고 말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뒤늦게 이번 공동성명을 포장하기에 바쁘다는 비난도 가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 대해 “시간이 없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이는 이번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날 경우 후폭풍을 두려워한 그가 뒤늦게 만남이라는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꼬리 내리기’에 나섰다는 불만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대북 강경 매파의 선봉장 노릇을 하는 존 볼턴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 또 “북한은 잠시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나왔을 뿐”이라며 대북 불신에 가득 찼던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모든 전권을 부여하며 백악관의 ‘이너 서클(inner circle)’ 중심에 오게 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이에 관해 “만일 이들이 이번 협상의 주역이 아니라 ‘아웃사이더’에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볼턴이 국가안보보좌관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원론적인 공동성명에 그가 제일 먼저 ‘반대’의 선봉장 노릇을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물론 존 켈리 비서실장, 폼페이오, 볼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기존 대북 강경파 인사들을 모두 무대 위로 불러들이는 고단수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은 이른바 ‘톱다운(Top-Down)’ 방식이라고 말한다. 즉, 최고 결정권자가 위에서 결정하고 밑으로 내려보냈다는 것이다. 북한이야 체제의 특성상 그렇다 치고 미국은 시스템상 이러한 시도가 전무했던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을 아예 전권을 주면서 협상의 전면에 내세워 적어도 행정부 내부에선 이번 북·미 합의에 대한 ‘군소리’를 잠재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 추진 과정에서부터 딴지를 걸었던 대북 매파 세력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이번 북·미 정상 공동성명이 발표되자마자 미 주류 언론들이 강력하게 트럼프 비판에 나선 것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는 북·미 관계의 역동적인 변화와 흐름 속에는 북·미 정부 간에 치열한 다툼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시스템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강경 매파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첫 리트머스 시험지 된 한·미 연합군사훈련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등 내부 스캔들에 휘말린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그의 뜻대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미 의회 중간선거를 넘어 그의 재선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가장 현실적으론 북한 문제라면 공화·민주당을 불문하고 초강경파 의원들이 의회 내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6월13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싱가포르 현지에서 주최한 포럼에서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의에 “미국 내에서 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트럼프는 오히려 밀리면 밀릴수록 더욱 강력하게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또 “트럼프가 공동성명 발표 직후 ‘모든 에너지를 퍼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는 서로 ‘신뢰’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이고, ‘검증’은 그다음 문제”라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야 할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아가 북·미 공동성명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 “지금은 논의에서 빠졌지만 미래 협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데려오고 싶다”고 철수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또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관해서는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당장 한·미 군사훈련 중단에 관해서도 미국 보수진영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어쩌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문제가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도 자신의 철학과 방침대로 대북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의 첫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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