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이 경험한 남한 병원…의료계도 통일 연습 중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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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위아래로 닦는 것을 남한 치과에 가서야 알았다"

 

'치아를 위아래로 닦는 것을 치과에 가서야 알았다.' '상처를 먼저 소독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약만 발랐다.' '아들이 감기로 병원에 갔는데 피를 너무 많이 뽑는 것 같아서 간호사와 다퉜다."

 

탈북민들이 남한 병원에서 겪은 해프닝이다. 이처럼 탈북민은 의료에 대한 이해가 우리와 다르다. 결국 남북한의 의료 문화에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통일을 대비해 남북 의료계의 차이를 극복할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신곤 고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탈북민 진료는 통일 후를 대비한 실질적인 연습"이라며 "탈북민 진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파악하면 미래 통일 후 우리가 겪게 될 의료 문화의 혼란을 예상할 수 있고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 출신 민하주 연대의료복지연구소 박사가 탈북민의 병원 이용 경험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한 병원을 이용한 탈북민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북한의 의료체계를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에 대한 신뢰도는 낮은 편이다. '의사가 환자를 보면 진맥을 짚든가 해야 하는데, 컴퓨터만 보고 환자는 쳐다보지도 않으니 의사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거나 '의사가 이렇다, 저렇다가 아니라 '이럴 것 같다'는 식의 두루뭉술하게 말하니 믿음직하지 않다'는 게 탈북자 눈에 비친 남한 의사의 모습이다. 

 

환자가 병원 앞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무관함. (최준필 시사저널 기자)​

 

병원에서 탈북민과 의료인은 서로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통증이 심하거나 욱신거리는 증상을 북한말로는 '통세난다'고 하고, 발목이 삐었다는 말은 '풀쳤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남한과 북한에서 사용하는 말이 다른 점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와 외래어가 더 큰 걸림돌이다. 한 탈북민은 남한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말의 70%를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한 탈북민은 "내가 하는 말을 의사가 못 알아듣고, 나도 의사 말을 이해하기 힘드니 내가 원하는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비과학적인 입소문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얼음(마약)으로 죽는 사람을 살린다'거나 '소 눈알을 달여 먹으면 간 열(간의 각종 열증)이 낫는다'는 식이다. 아직도 '피부 상처에 된장을 바르면 낫는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또 신체적 증상을 강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아프면 약을 찾을 뿐, 아픈 원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약을 먹으면 즉각 효과가 있기를 바라고, 약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으면 약을 과하게 먹거나 다른 약으로 바꾼다. 

 

전우택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게 된 시기가 놀랍다. 남북한은 공동운명체이므로 보건의료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며 "탈북민 환자를 통해 북한 의료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남북한 의료 문화의 간격을 좁히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의 일환으로, 통일 후의 보건의료를 연구하는 전문의들이 모여 탈북민과 남한 의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아래 참조)을 각각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200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은 올해 3월까지 3만1500여 명이다. 2005년 이후 증가세가 두드러졌고 2009년 2900명까지 늘었다. 2012년부터 연간 1500명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여성이 전체의 71%다. 

 

# 남한 병원을 이용하는 탈북민을 위한 10대 가이드라인

1.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라. 증상이 없다고 질병이 없는 것이 아니다. 

2. 올바른 건강습관을 유지하라. 균형 있는 식사,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3. 몸이 아픈 것은 삶의 여건이나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마음과 환경에 대해 의사에게 말하라. 

4. 마음이 아프면 몸에 병이 없어도 몸이 아플 수 있다. 마음을 치료하면 신체 증상도 좋아진다. 

5. 정확한 정보가 빠르고 확실한 치료를 끌어낸다. 의사에게 증상에 대해 가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만 말한다. 

6. 신뢰할 수 있는, 같은 의사에게 꾸준히 치료받은 것이 좋은 치료 결과를 이끈다.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는 것은 병을 악화시킨다. 

7. 증상이 바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치료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다. 치료 효과는 꾸준히 치료받은 후에 나타난다. 

8. 약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대로 약용량을 늘리거나 약을 바꾸면 병이 더 나빠질 수 있다. 

9. 보약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된다. 약은 의사가 지시한 그대로만 먹는다. 

10. 의료 이용 정보에 대해 확인하라. 하나센터와 종합복지관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탈북민을 진료하는 의료인을 위한 10대 가이드라인

1. 탈북민은 증상의 정도로 질환의 경중을 판단하곤 한다. 

2. 신체의 증상이 심리적 어려움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라. 

3. 삶의 이야기를 들어라. 

4. 증상 호소 표현을 잘 이해하라. 

5. 꼼꼼한 문진과 신체검사를 하라. 환자의 말에 경청한다. 

6. 의사·환자 신뢰 관계가 치료 과정에 큰 영향을 준다. 

7.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제시하라. 

8. 약의 효능과 효과 발현 시점 등을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9. 약물 오남용 및 과용의 위험성을 설명하라. 

10.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하라. 

(자료=통일보건의료학회·남북하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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