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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츠》, 장동건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다

‘그렇고 그런’ 미드 리메이크에서 탈피 ‘맞춤형 캐릭터’로 장동건 위상 재발견

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 승인 2018.06.09(Sat) 16:00:00 | 1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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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수목드라마 《슈츠(Suits)》가 동시간대 1위로 순항하고 있다. 이 작품이 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작(作)이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다. 미국 드라마 리메이크작의 성적이 그동안 좋지 않았다. tvN 《크리미널 마인드》는 원작이 시즌 14까지 제작됐을 정도로 인기가 컸던 작품이지만 국내 반응이 미미했다. tvN 《안투라지》는 조진웅·서강준·이광수를 내세운 캐스팅으로 주목받았지만 방영 후 악평이 쏟아졌다. 한가인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은 OCN 《미스트리스》는 원작이 김윤진 출연작으로 국내에서 유명한데도 시청자에게 외면당했다. 그나마 칸의 여왕 전도연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tvN 《굿 와이프》 정도가 어느 정도 인정받았을 뿐이다.  

 

미국 드라마 특유의 멋과 분위기가 있는데, 한국 사람이 그것을 구현할 경우 뭔가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캐릭터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겉돌거나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현실적인 제작 환경상 영화를 방불케 하는 미국 드라마의 완성도를 한국 드라마가 따라가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래서 미국 드라마를 한국에서 만들 경우 시청자들은 작품이 밋밋해졌다는 인상을 받기가 쉽다. 원작의 팬이 리메이크작의 안티가 돼 악평을 양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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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입지가 위태로웠던 장동건

 

《슈츠》도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미국의 ‘멋진’ 변호사들을 그린 작품인데, 한국 현실하고 안 맞을 것 같았다. 제목부터가 양복 정장을 뜻하는 ‘슈츠’다. 한국인이 아무리 양복 정장을 잘 맞춰 입어도 미국 사람의 느낌을 재현할 수 있을까? 보통 이런 경우엔 미국 스타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히 현지화, 토착화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버터 맛을 지우고 순대국 맛이 제대로 우러나게 해야 우리 시청자들이 작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공개된 《슈츠》는 미국식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실망했다’ ‘실패작’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시청률 동시간대 1위를 굳건히 지키더니, 극이 진행되며 찬사까지 나오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성공이다.

 

처음엔 주연인 장동건도 작품의 약점으로 여겨졌다. 장동건·원빈 같은 일부 슈퍼스타급 배우들이 작품 활동보다 광고 활동으로 더 유명하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신뢰감이 많이 약화됐다. 실망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장동건의 경우엔 그동안 영화 실패작이 누적된 것이 문제였다.

 

2005년 《태풍》이 대작으로 크게 주목받았지만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5년 《무극》은 해외 진출작으로 화제였지만 참패했다. 2010년 《워리어스 웨이》는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011년 《마이웨이》는 강제규 감독의 야심작이며 초대작이었지만 역시 부진했다. 그 후 《우는 남자》(2013), 《브이아이피》(2016) 등도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장동건의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약화됐다. 그나마 TV에서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성공하면서 장동건의 이름값을 했는데, 2012년 작이기 때문에 먼 과거의 일이었다. 현재의 장동건에겐 악플 반응이 주류였다. 그랬던 것이 《슈츠》로 완전히 바뀌었다.

 

《슈츠》는 국내 최고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인 최강석(장동건)과 신참내기 변호사 고연우(박형식)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다. 최강석은 경찰에 쫓기던 고연우를 우연히 만나 구해 주고 로펌에 자신의 보조 변호사로 취직시킨다. 고연우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갖춘 인재였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보잘것없이 자랐다. 최강석은 그런 고연우의 재능을 알아보고 신분을 세탁해 가짜 변호사로 만들어준다. 두 사람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형성하는 관계, 고연우의 성장담, 가짜 변호사라는 고연우의 약점에서 오는 긴장감 등이 이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지점이다. 

 

여기서 최강석은 고연우를 지도하는 멘토 역할이다. 멘토는 멘토인데 ‘츤데레’ 멘토다. 츤데레는 겉으론 까칠하고 냉담한 것 같지만 은근히 따뜻하게 대해 주는 성격을 일컫는 말로, 보통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성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다. 《슈츠》에선 최강석이 고연우에게 냉정하게 대하면서도 따뜻하게 챙겨준다. 고연우의 성장에 살짝 미소까지 지을 정도로 인간미도 보여준다. 요즘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리더 캐릭터다.

 

고연우는 천재답게 매사에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최강석이 자기 신분을 세탁해 변호사까지 만들어준 은인이며, ‘절대 갑’임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진다. 그럴 때 최강석은 건방지다며 화를 내거나 힘으로 억누르지 않는다. 자신의 틀림을 지적했다고 앙심을 품는 일은 없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바라는 멘토이면서 한국적인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윗사람이다. 그야말로 미국식으로 ‘쿨’한 사람인 것이다. 여기에 시청자들이 크게 호응했다.

 

 

장동건에게 맞춤옷 같은 캐릭터 연기

 

장동건은 그 최강석을 마치 맞춤 ‘슈트’를 입은 것처럼 연기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왠지 한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어서 실패를 예감케 했는데, 장동건의 캐릭터가 한국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 요소 중 하나였다. 만약 장동건이 어설프게 보였으면 작품은 예상대로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동건은 최강석 그 자체인 것처럼 연기했고 작품 성공의 핵심 동력이 됐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최고급 양복이 잘 어울리는 멋진 신사라는 걸 전제하고 전개된다. 주인공이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면 작품에 재난이다. 장동건은 서양 사람보다 더 양복 정장이 멋있게 보이는 모습으로 주인공을 소화했다. 작품은 서울 도심 골목도 마치 뉴욕 골목처럼 보이게 찍고, 하다못해 토스트 트럭도 미국 푸드트럭처럼 보이게 연출했다. 여느 한국 배우라면 이 속에서 어색하게 겉돌다 ‘역시 미드 리메이크는 안 돼’라는 평가를 받으며 퇴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동건에겐 그 이국적인 공간이 제집인 것처럼 어울렸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건방짐, 오만의 선을 넘나드는 턱없는 자신감도 장동건이 연기하니까 설득력이 생겼다. 장동건이어서 최강석이 납득됐고, 《슈트》가 성공했다. 반대로 《슈츠》의 성공 덕분에 장동건이 배우로서 재평가된 것이다. 최강석 역할에 장동건이라는 절묘한 캐스팅이, 작품도 장동건도 모두 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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