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시사저널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딸이 독립했다

여성이 혼자 산다는 것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9(Sat) 10:00:00 | 1495호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link

 

딸이 ‘독립’을 했다. 성년에 이른 자녀가 부모 집을 떠나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일에 독립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결혼이나 전근, 유학 같은 외적 이유가 아니라 순전히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니, 달리 부를 말도 마땅치는 않다. 이로써 우리 가족도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일컫던 말)이 아닌 뭐라 불러야 할지 마땅찮은 분산가족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딸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고 어느 나이가 되면 부모를 떠나고, 아들들은 결혼할 때까진 부모 품에서 사는 것을 보는 일이 잦다. 내가 젊었을 때는 그 반대가 일반적이었던 듯하니, 풍속이 많이 바뀌었다. 이미 여성이 혼자 사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다.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왜 딸들은 독립을 할까. 결혼제도 밖에서 혼자 사는 일에 우리 사회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헤어져 따로 살게 된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어떤 권리와 의무를 지닐 수 있을까. 

 

변화하고 있는 풍속과 잘 변하지 않는 통념 사이에서 다양한 갈등과 고통이 발생한다. 홀로 사는 여성이 맞닥뜨리는 세상은 반드시 둘러엎어야 할 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지 않겠나. 나는 페미니스트니까, 이런 일을 탐구해 좀 더 사랑 넘치게 살아갈 수 있는 인식과 태도와 정책들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바꾸어 말하면, 낯설고 간단치 않은 사람살이의 틈새에서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일을 나는 페미니즘이라 부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uD398%uBBF8%uB2C8%uC2A4%uD2B8%20%uC11C%uC6B8%uC2DC%uC7A5%20%uD6C4%uBCF4%uC758%20%uB4F1%uC7A5%20%uC5ED%uC2DC%20%uBCC0%uD654%uC758%20%uC2DC%uC791%uC77C%20%uC218%20%uC788%uB2E4.%20%uC2E0%uC9C0%uC608%20%uB179%uC0C9%uB2F9%20%uC11C%uC6B8%uC2DC%uC7A5%20%uD6C4%uBCF4%uC758%20%uC120%uAC70%20%uD604%uC218%uB9C9%20%u24D2%uC2DC%uC0AC%uC800%uB110%20%uBC15%uC815%uD6C8


 

서울부터 성폭력 성차별 OUT

 

그런데 막상, 이삿짐을 따라 서너 평 남짓한 딸의 방에 짐을 풀면서 내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있다. 굶고 살 것도 별로 걱정 안 되고 외로울 것도 걱정이 안 되는데, 방문 잠금장치 확인했냐? 더 달아도 되냐? 혼자 있을 땐 문 꼭 닫아라 등등, 보안에 대한 염려를 몇 번씩 되풀이하고 있다. 무의식 깊숙이 들어앉아 잘 사라지지 않는 성폭력사회에의 공포다.

 

이런 공포를 남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이 들어가면서 나 자신에 대해선 공포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어느 날 깨달았을 때 정말 생경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이는 젊은 사람들이 착각하듯 나이 든 여성은 성적 대상화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벼슬인 사회에 살기 때문이다. 성적 폭력이 충족시켜주는 것이 ‘수컷 됨’이 아니라 ‘권력 지님’이라는 것의 방증 아니겠는가. 권력을 어떤 식으로든 부림질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남성들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는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취약한가를 너무 잘 알다보니 나도 모르게 거듭, 문 잘 잠그고….

 

딸은 태권도 유단자고 복싱을 오래 해서 도장에서는 스파링 상대를 하려는 남자가 없을 정도로 주먹이 세다. 그러니 내 두려움은 실제로 물리적 폭력에 취약할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쌓여온 이런 두려움 또한 마음을 부패하게 하는 적폐다. 돌아오는 길 육교에 매달린 서울시장 후보의 현수막 글귀가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서울부터 성폭력 성차별 OUT’.

 

이따위 두려움이 아니라, 이 ‘독립’ 덕분에 명실상부하게 수많은 1인 독거인간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우리 가족의 생각이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이사를 돕는다. ​ 

전체댓글0

0 /150
  • 최신글
  • 공감 순
  • 비공감 순
더보기

TOP STORIES

Culture > 연재 > LIFE >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2018.06.19 Tue
6·13 선거서 탄생한 8만3000명의 ‘신지예’들
Health > LIFE 2018.06.19 Tue
조게껍데기 열려도 5분 더 끓여야 식중독 예방
국제 2018.06.19 Tue
미국 겨냥한 중국·쿠바의 '사자후' 공격?
사회 2018.06.19 Tue
정권과 거래한 사법부, 신뢰의 기로에 서다
OPINION 2018.06.19 Tue
‘CVIP’로 가는 시간…섣부른 열망도, 실망도 금물
OPINION 2018.06.19 Tue
[시끌시끌 SNS] “낙서가 무슨 예술이냐”
경제 2018.06.19 Tue
[단독] ‘갑질’ 건설사들 편에 선 ‘하도급 공화국’
지역 > 호남 2018.06.19 Tue
‘석연찮은’ 광주시·현대차 투자협약 돌연 연기
국제 2018.06.19 Tue
디지털 갈등, 136년 전통의 LA타임스 무너뜨려
갤러리 > 만평 2018.06.19 화
[시사TOON] 미투·드루킹보다 더 국민분노 산 건?
경제 2018.06.19 화
골드만삭스 공매도 사태에 뿔난 투자자들
한반도 > 연재 > 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2018.06.19 화
남한엔 방탄소년단, 북한엔 철통 경호단
한반도 2018.06.18 월
[북한경제①] 시장 많아지고 주유소도 늘었다
한반도 2018.06.18 월
[북한경제②] 中 무역 확대 통한 외화 획득도 순조
한반도 2018.06.18 월
[북미관계⑥] 북·미 정상회담 또 다른 승자, 중국
국제 2018.06.18 월
[북미관계⑦] “G7은 적처럼 대하고 북한은 띄워주다니…”
사회 2018.06.18 월
사회적 책임에 충실한 ‘중산층’이 필요하다
OPINION 2018.06.18 월
우리는 트럼프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한반도 2018.06.18 월
[북미관계④] “북한 열리면, 한국 新동북아 경제권 중심국”
국제 2018.06.18 월
[북미관계⑤] 트럼프, 美 비난 여론 뚫을 수 있을까
한반도 2018.06.18 월
[북미관계③] 美 언론 “6·12 회담, 트럼프 패배”
리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