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깰 뻔한 최선희를 김정은이 못 내치는 이유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8 14:54
  • 호수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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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고의 대미 전문가로 강석주-김계관 계보 잇는 '차세대 에이스'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에 근거,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24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 취소의 이유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발언을 콕 집었다. 

 

이날 앞서 최 부상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며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고 비난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선 고삐가 풀려버렸다. '횡설수설' '무지몽매한 소리'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등 거친 말은 북·미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타가 됐다. 천신만고 끝에 북·미 정상회담 불씨가 다시 살아나면서 최 부상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렸다. 당분간 대미 외교 무대에서 물러나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렸다. 

 

뚜껑을 열어 보니 아니었다. 최 부상은 팽당하긴커녕 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협의 대표자로 변함없이 재등장했다. 일각에선 해당 미국 비난 담화가 당연히 개인 차원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므로 최 부상이 책임질 필요도 없다고 지적한다. 북한 체제,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 의중을 최 부상 개인 명의를 빌려 드러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일면 타당하지만, 평소 최 부상 스타일과 북한 대미 외교 라인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면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국 부국장이었던 2016년 6월23일 중국 베이징의 주중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북한 내에 최선희 만한 대미 전문가 없어"

 

북한 조선중앙 TV는 5월27일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삼대에 걸친 대미 외교 정책을 조명한 기록 영화를 방영했다. 특히 고(故) 강석주 전 내각 부총리의 업적을 한껏 띄웠다. 북한 내에서 강 전 부총리는 북핵 협상과 대미 외교의 전설이다. 1994년에는 북측 협상 대표로서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만나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외무성 제1부상을 거쳐 2010년 9월 내각 부총리로 승진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2016년 5월 사망하기까지 강 전 부총리의 위세는 여전했다. 조선중앙 TV는 강 전 부총리의 대미 협상에 대해 "총 포성 없는 대결전, 적들과의 첨예한 정치외교전에서 주도권을 틀어쥐고 뱃심 있게 외교 활동을 벌였다"고 치켜세웠다. 

 

강 전 부총리의 두둑한 배포와 자신감은 북한에 위기 상황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실토하라는 미국에 "HEU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게 돼 있다"고 쏘아붙임으로써 미국 내 엄청난 논쟁과, 그로 인한 제네바 합의 폐기 등 북핵 위기를 초래했다. 그래도 북한은 입단속을 못한 강 전 부총리를 전혀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총리 자리에 세웠고, 사후에도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 이런 강 전 부총리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5월24일 대화 판을 깨자 김 제1부상을 내세워 회유에 나섰다. 김 제1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외무성 최선희 부상의 담화 내용에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감'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귀중한 만남을 가지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며 "조선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 위임에 따른다'는 전제를 달았다. 

 

북·미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던(5월16일) 인물은 다름 아닌 김 제1부상이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김 제1부상이나 최 부상에게 북·미 관계 악화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미 관계를 다룬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북한 내에 많지 않다"며 "특히 북핵 25년 동안 북한 외무성에서 가장 중요한 대미 협상을 맡아온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강 전 부총리를 1세대라고 하면 2세대는 김 제1부상, 3세대는 최 부상과 최강일 북아메리카국(미국국) 부국장"이라고 덧붙였다.

 

 

최영림 전 내각총리의 수양딸…김정은 시대 대표 엘리트 

 

강석주 전 부총리(1939년생)와 김계관 제1부상(1943년생)의 나이 차이는 4살밖에 나지 않는다. 북한 입장에서는 1964년생인 '차세대 에이스' 최선희 부상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최 부상은 2010년 말부터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 이듬해 11월 6자회담 북측 차석대표를 맡았고, 북아메리카국장 겸 미국연구소 소장을 거쳐 지난 3월부터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1990년대 말부터 북·미 회담과 6자 회담 등 주요 협상에서 통역을 전담해왔다. 2009년 8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도 통역을 맡았다. 최영림 전 북한 내각 총리의 수양딸로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통역사 이상의 실세 역할을 해왔다. 핵 문제뿐 아니라 군축, 인권, 생화학무기, 미사일 등 대미 외교 전반에서 미국의 이해 관계와 북측의 입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다. 

 

단순 통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 중간에 끼어들거나 상대편에 비판의 말을 쏘아붙이는 등의 행동으로도 주목받았다. 또 북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 제1부상의 발언을 제멋대로 의역(意譯)했다거나, 상급자가 이코노미석에 탔는데 본인은 비즈니스석에 탑승했다는 등 다양한 뒷말을 냈다. 5월24일 과도하다 못해 과격하다 싶었던 대미 담화문에 이런 최 부상의 성향이 십분 반영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최 부상의 아버지 최 전 내각총리는 1956년 노동당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1967년 갑산파 숙청과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확립 과정에서 공을 세웠다. 이후 초고속으로 권력의 핵심에 진출했다. 친자가 아닌 입양아란 이유로 최 부상의 출신 성분에 의문을 표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고위층들은 입양딸을 친딸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 부상이 좋은 가문 출신에 교육을 잘 받은 김정은 시대 대표적인 젊은 엘리트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를 조율하기 위한 실무협상은 팽팽한 기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5월27일부터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실무회담에 최선희 부상이 북한 대표로 나섰다. 미국에서는 북핵 문제에 정통한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를 비롯해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과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 '한반도통 3인방'이 투입됐다. 협상 멤버들이 워낙 쟁쟁해 사실상 정상회담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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