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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로에서] 구본무 현상이 뜻하는 것

박영철 편집국장 ㅣ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8(Mon) 14:00:00 | 1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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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0일 들려온 구본무 LG 회장의 타계 소식은 여러모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첫 느낌은 “좀 일찍 돌아가셨구나”였다. 위독하단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1945년생이니 요즘 평균수명을 감안하면 장수했다고 하긴 어렵다.

 

그다음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찬사에 놀랐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고인과의 인연을 들먹이며 고인의 인품을 칭송했다. 심지어 좌파 성향의 일부 고관대작들까지 ‘구본무 추모 행렬’에 동참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걸 보고 좀 많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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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4위의 재벌 LG그룹의 회장이라는 자리는 좌파들 입장에선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고인을 욕하지 못하고 ‘나도 구본무 회장하고 좀 안다’는 식으로 시류에 영합했다. 왜 그랬을까. 답은 ‘민심’에 있다. 민심이 구본무라는 사람을 좋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 부음기사를 읽어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의 비극은 이 대목에 있다. 세칭 한국의 10대 그룹 중 다른 그룹의 오너가 사망하면 이런 정도의 추모를 받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추모는커녕 악담이 난무할 공산이 크다. 우선 ‘원수도 죽으면 용서한다’는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이 사라진 탓에 사람이 죽어도 잘 죽었다는 식의 악플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들 재벌 오너는 편법적인 경영승계,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 부적절한 사생활, 시대역행적인 갑질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전력이 있다. 고 구본무 회장은 이런 결함이 없어서 애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구본무 예외 현상’은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자본주의체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그 주역인 기업이 오너 리스크 때문에 국민의 사랑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질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이 더 분발해야겠지만 훌륭한 기업인을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 조성도 절실하다.

 

나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서 고 구본무 회장과 일면식도 없다. 국내 4위의 재벌가 오너는 굴지의 언론사 오너 정도가 아니면 월급쟁이 언론인은 알고 지낼 수가 없다. 그러나 기사만 놓고 보면 고인은 훌륭한 사람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부자면서 그렇게 소탈했다는 것만 해도 범인(凡人)은 이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체제에서든 기업은 있게 마련이고 기업이 성장의 주역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제2의 구본무’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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