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의 LG 4.0’ 체제 전환, 3대 관전 포인트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8 09:13
  • 호수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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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능력 인정받고 경영권 확보까지 산적한 과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영면에 들면서 그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경영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 그는 명실상부한 LG그룹의 후계자다. 그의 친부는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지만 2004년 큰아버지인 구본무 회장의 호적에 입적했다. LG가(家)의 전통인 ‘장자승계 원칙’을 지켜 나가기 위한 결정이었다. 구 상무는 구본무 회장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한 5월17일 열린 이사회에서 그룹 지주사인 ㈜LG 등기이사로 추대됐다. ‘구광모 체제’로의 전환을 알리는 일종의 ‘대관식’이었다. 이제 구 상무는 70개 계열사를 거느린 연매출 160조원의 글로벌 그룹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최근 별세하면서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상무(사진)가 경영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 © 사진공동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


 

구광모 신사업…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

 

그렇다면 구 상무는 향후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일단 재계에서는 구 상무가 당장 회장이나 부회장으로 승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LG 오너 일가는 다른 재벌가에 비해 승진이 더딘 편이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도 20여 년의 실무경험을 거쳐 회장에 취임했다. 올해 41살인 구 상무는 실무경력이 12년에 불과하다. 다만 구 상무가 ㈜LG 등기이사에 선임된 이후 사장 내지는 부사장을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사실상 총수’ 역할에 걸맞은 직급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구 상무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시장의 불신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구 상무는 그동안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아 면면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연히 경영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다행히 LG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이 호실적을 내는 등 순항 중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연매출 60조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2조4685억원)도 2009년(2조6807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LG화학과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사드 악재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음에도 최대 경영실적을 냈다.

 

그러나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LG전자에서 스마트폰 등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했다. 백색가전·디스플레이·배터리 등은 모두 성장 정체기에 진입했다. 게다가 이 분야를 둘러싼 글로벌 경영 환경도 좋지 않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로 LG전자의 수출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도 최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올해 1분기 6년 만에 영업적자를 냈다. LG화학의 배터리 분야는 경쟁 심화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광모 체제’가 정착되면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 작업이 우선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기존 주력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바이오·에너지·전장부품 등 신수종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구조가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과정에서 구 상무는 신수종 사업 발굴 및 육성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4년 임원으로 승진한 이후 신사업 발굴 작업에 주력해 왔다. 기존 주력사업들은 부회장단 6인방이 책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등이 그들이다.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된 5월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경영권 이양 위한 ㈜LG 지분 확보 방법은?

 

이번 체제 전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구 상무의 ㈜LG 지분 확보다. 경영권 이양을 위한 필수 작업이기 때문이다. ㈜LG는 LG화학(33.3%)·LG전자(33.7%)·LG생활건강(34.0%)·LG유플러스(36.0%)·LG상사(27.6%) 등 주력 계열사를 자회사로 둔 그룹의 지주사다. 구 상무가 ㈜LG 지분만 충분히 확보하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갖출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구 상무의 현재 ㈜LG 지분율은 6.24%다. 구본무 회장(11.28%)과 구본준 ㈜LG 부회장(7.72%)에 이은 3대 주주다. 구 상무의 ㈜LG 지분율은 2003년까지만 해도 0.14%에 불과했다. 2000년대 중반 계속 주식을 매입하면서 4.58%까지 끌어올렸고 이후 친부인 구본능 회장과 고모부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의 증여로 현재의 지분율을 갖췄다.

 

구 상무는 당장 구본무 회장의 ㈜LG 지분을 상속받아야 한다. 구 회장 지분을 전량 넘겨받을 경우 구 상무의 ㈜LG 지분율은 17.52%까지 상승한다. 2대 주주인 구본준 부회장과의 격차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져 공고한 지배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막대한 상속세다. 과세표준 30억원 이상인 경우 최고상속세율(50%)이 적용된다. 5월21일 주가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구 회장의 지분 가치는 1조5000억원대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7000억원대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여기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의 경우 20%의 할증이 적용된다. 이를 감안하면 상속세는 9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구 상무는 어떻게 거액의 상속세를 마련할까. 전문가들은 구 상무의 현재 지분과 향후 상속받을 지분을 이용할 가능성에 우선 주목한다. 현행법상 상장 주식은 물납(物納)이 불가능하다. 대신 지분을 매각한 자금으로 상속세를 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구 상무의 ㈜LG 지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구 상무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LG 지분율 확보를 통한 경영권 승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다만 주식담보대출은 고려해 볼 만하다는 견해가 많다. 구 상무가 보유한 지분과 상속받을 지분 가치는 2조원을 상회한다.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상속세를 낸다는 것이다.

 

공익법인을 통한 절세 방안도 거론된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법인은 기업 주식 5% 내에서 보유할 경우 상속·증여세가 면제된다. LG그룹이 운영 중인 LG연암문화재단과 LG연암학원의 ㈜LG 지분율은 각각 0.33%와 2.13%다. 비과세로 7.54%의 ㈜LG 지분을 이들 공익법인에 넘길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구 상무가 상속받게 될 ㈜LG 지분은 3.74%로 전체의 3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든다. 상속세도 3000억원대로 감소한다. 이후 구 상무가 LG연암문화재단과 LG연암학원의 대표를 맡게 될 경우 절세와 지배력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된다.

 

물류 계열사인 판토스(옛 범한판토스)가 상속세 마련 창구로 지목되기도 한다. 구 상무는 판토스의 2대 주주(7.5%)다. 2015년 LG상사가 방계 물류회사인 판토스 지분을 인수할 당시 구 상무도 지분을 매입했다. 매입가는 400억원대로 전해졌다. 판토스는 그룹 차원의 지원사격을 받아왔다. 인수 첫해인 2015년에도 전체 매출(1조2084억원)의 절반 이상이 그룹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나왔다. 판토스는 이렇게 올린 매출을 바탕으로 LG전자 물류를 담당하던 하이로지스틱스를 인수하는 등 외형도 확장했다.

 

그 결과, 구 상무의 판토스 지분가치는 현재 150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지분을 매입한 지 불과 3여 년 만에 4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이대로 계속 사세를 확장하면서 상장에 성공할 경우 구 상무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판토스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현행법상 비상장사의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기업을 규제 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판토스의 오너 일가 지분율(19.9%)은 0.1% 차이로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현재 상장 계획은 전혀 없고 지분 매입에 투입한 자금이 큰 편은 아니기 때문에 판토스를 경영권 승계와 연관 짓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구본준 LG 부회장이 향후 계열분리 수순을 밟을지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연합뉴스


 

구본준 부회장 일가 계열분리 여부에도 눈길

 

더불어 향후 계열분리가 이뤄질지 여부에도 눈길이 간다. 그동안 LG가에선 그룹의 적통을 이을 후계자가 정해지면 다른 오너 일가는 계열분리 수순을 밟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었다. 그렇게 LG그룹은 많은 그룹들로 나뉘어 왔다. 구본무 회장이 구자경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 명예회장의 아들 사형제 가운데 둘째와 넷째인 구본능·구본식 형제는 희성그룹을 가지고 계열분리했고, 구 명예회장의 동생들(구자승·구자학·구자두)도 차례로 분가했다. 현재 LG그룹에 남아 있는 오너 일가는 구본준 부회장과 장남인 구형모 LG전자 과장이 유일하다.

 

재계에서는 구본준 부회장이 구 상무를 당분간 측면지원하다 머지않은 시점에 계열분리해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 부회장이 어떤 사업부문을 들고 나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ZKW가 꼽힌다. LG그룹은 올해 4월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업체인 ZKW를 인수하기로 했다. 매입가는 1조4440억원으로 구본무 회장이 취임한 이후 최대 규모였다. ZKW 인수는 구본준 부회장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그는 자동차 부품사업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다.

 

구본준 부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과장도 자동차 부품사업을 시도한 바 있다. 그가 지분을 100% 소유한 지흥을 통해서였다. 지흥은 2014년 세종공업과 합작해 자동차·가전센서·시스템 개발업체 센티온을 설립하고, 2016년에는 자동차 엔진부품업체 지엔에스쏠리텍의 센서사업 부문을 매입하며 자동차 부품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지흥은 지난해 12월 센티온 지분 전량(45%)을 매각한 상태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구본준·구형모 부자가 향후 ZKW를 중심으로 계열분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본준 부회장(7.72%)과 구형모 과장(0.6%)이 보유한 ㈜LG 지분 가치도 1조1000억원대에 달해 ZKW와 교환하기에는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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