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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적여?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편견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6(Wed) 17:23:59 |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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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종영된 EBS의 《까칠남녀》에서 “여적여”란 말을 주제로 다룬 일이 있다. 말을 줄여서 신어로 만드는 현상을 좋게 보지 않지만, 신어가 등장한다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현상임을 뜻하기도 하므로 관심 깊게 들여다볼 이유가 된다. ‘여적여’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라고 한다. 아연하게도 이런 말이 아직도 이 대명천지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니. 심지어 신어가 되어 있다니.

 

어릴 적에 툭하면 들었던 말이 저 말이었다. “여자가 여자 잘되는 꼴을 못 본다.” 나는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전 초등학생 때도 4학년부터는 남녀분반이었기 때문에, 늘 여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당연히 싸움이 나도 여자하고 나고 흉을 봐도 사고를 쳐도 여자들끼리 쳤다.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무슨 문제가 생겨서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크게 일면 꼭 저런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여자들뿐인데 무슨! 그나마 좀 공정해 보이는 말이 “머리 검은 짐승은 보살펴주면 안 된다” 정도의 말이었다. 이때 머리 검은 짐승은 성별이 꼭 여성은 아니었으니까.

 

《까칠남녀》에서는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이 같은 여성들로 인해 겪게 되는 다양한 고통과 고난을 열거해 보여줬다. 공감이 갔다. 나 또한 질투심 많은 사람이고, 같은 여자들끼리의 다툼은 속내가 빤히 보여서 더 화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남자들이 더 많은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해 온 나는, 남자들의 사회 역시 얼마나 서로 헐뜯고 질투하며 서로가 잘되는 꼴을 못 보는지, 얼마나 심한 폭력이 난무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까칠남녀》에서 말한 대로 여자의 적은 여자이고 남자의 적은 남자이며, 여자의 적은 남자이고 남자의 적은 여자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사람은 사람과 적대하지 나무나 돌이나 동물과 적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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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약자로 보는 신어(新語)

 

그런데 왜 자꾸만 이런 말이 등장할까. 이때 우리가 감안해야 하는 것이 ‘말하는 권력’이다. 규정하고 해석하는 힘을 지니면, 약자집단에 일정한 딱지를 붙여 그들의 행위와 삶을 일정한 방향으로 강제할 수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지닌 진정한 뜻은 ‘여자는 여자하고만 경쟁하라’는 뜻이다. 여자들에게 허용된 범주를 벗어나 약진하는 여자는 다른 여자들을 초라하게 만드니 ‘여자들이 응징하라’는 뜻이다. ‘하여간 여자가 문제’라는 뜻이다. 이때 말해지지 않는 것은, 말하는 권력에 속한 남성을 향해서는 비판이나 분석의 칼날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메라 뒤편의 횡포는 잊히고 카메라가 찍은 화면 안의 다툼만이 보이는 TV 드라마와 같다. ‘적이 될 수 있는 여자’라는 적을 발명해 남자와 그 남자에게 종속하는 여자들이 담합하는 지배구도가 수립된다.

 

‘여자’라는 범주로 인류의 상당수를 묶어둔 상태가 나머지 인류에게도, 인류 전체에도 건강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차츰 인식했다. 성차별이 문자 그대로 생존에도 위협이 되는 시대를 바로잡고자 사회는 노력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방법이 아마 정치권에서의 여성할당제일 것이다. 그랬는데, ‘여적여’라니, 오랜 세월 가부장제가 작동해 온 방식인 이 구도가, 다시 신어가 되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반동이 오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자치단체 선거 후보 공천 결과는 미래에는 반동의 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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