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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영릉이 대명당인 이유는…풍수학 배운 최초의 임금

[박재락의 풍수미학] 5월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

박재락 국풍환경설계연구소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5(Tue) 14: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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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15일은 세종대왕의 621주년 탄신일이며 세종즉위 600주년이 되는 해다. 조선은 건국 시조인 태조 이성계에서 마지막 27대 순종까지 계보가 이어졌는데, 왕의 호칭을 공과 덕을 기준으로 종(宗), 조(祖)의 칭호를 붙였다. 이런 호칭은 왕들의 이름이 아니라 사후에 신주를 모시는 종묘의 사당에 붙인 묘호(廟號)다. 오늘날 조선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정치를 잘했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왕은 대왕으로 호칭하는데 세종(世宗;1397~1450)과 정조(正祖;1752~1800))를 꼽는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조에는 세종 15년에 일어난, 경복궁 터에 대한 주산논쟁이 있다. 태종(太宗;1367~1422))때부터 풍수지리를 십학(十學;국가운영에 필요한 전문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10개의 학술 및 교육 분야)에 포함시켰고, 시험을 통해 관리들을 등용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에서 풍수도참설을 직접 관리하고 중국의 풍수지리경서를 연구해 도성의 건설과 궁궐의 조영, 그리고 왕릉의 입지선정 등에 적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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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직접 북악산에 올라 풍수지리 살펴


조선 건국 초 태조가 궁궐을 지을 때 당시 한양의 주산에 대한 논의는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가 인왕산을 주산으로, 궁궐을 동향으로 한 유좌묘향(酉坐卯向)의 입지를 주장했다. 그리고 정도전은 성리학 논리를 따라 ‘군주는 반드시 남면’을 주장했다. 이에 백악현무·인왕백호·낙산청룡·남산주작의 사신사가 갖춘 중심공간에 풍수지리적 논리에 따라 터잡이를 하였다. 이후 세종 15년에 와서 다시 최양선(崔揚善)이 경복궁의 주산 문제를 거론한 상소를 올리자 세종은 직접 풍수지리를 적용해 결론을 내렸다.

최양선이 “경복궁의 북쪽산은 주산이 아닙니다. 목멱산에 올라서 살펴보면 향교동에 용맥이 내려오니 곧 지금 승문원의 터가 실로 주산입니다.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어째서 이곳에 궁궐을 짓지 않고 백악산 아래에 지었습니까? 지리서에 이르기를, 인가(人家)가 주산의 혈 자리에 있으면, 자손이 쇠미해진다고 했습니다. 만약 창덕궁을 승문원 터로 옮기면 만세의 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세종은 대신들에게 백악일대를 실지 조사하게 했다.

 

당시 이양달·고중안·정앙 등의 풍수학인은 백악주산론을 주장하였지만 최양선·신효창 등은 응봉을 주산으로 봤다. 세종은 직접 북악산에 올라가 터를 살폈고, “보현봉의 산맥이 곧바로 백악산으로 내려와 지금의 경복궁에서 멈추어 명당이 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종은 이 일을 계기로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풍수학을 강론하게 하여 풍수학을 배운 최초의 임금이 됐다.

세종대왕의 왕릉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영릉(英陵)이다. 소헌왕후와 합장해 모셔져 있다. 묘역공간은 울창한 송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마치 어머님 품에 안겨 있듯이 안온한 입지를 나타난다. 터의 내룡맥을 살펴보면 백두대간맥의 속리산(1058m) 천왕봉에서 한남정맥을 이룬 뒤 다시 서북방으로 독조지맥을 형성하면서 행룡하다가 주산인 북성산(255m)을 기봉했다. 그리고 주산에서 뻗어 내린 중심룡맥은 다시 크게 좌로 선회하다가 남한강을 만나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산진처를 이룬 뒤 행도를 멈추었다.

 

여기서 영릉 터는 좌선하는 가지맥이 다시 90도 꺾어 입수하면서 강(岡)을 이뤘다. 이처럼 대간맥-정맥-지맥-주산으로 이어져 온 용맥이 입수하면서 속기(束氣)되어 봉긋 솟아오른 언덕은 강력한 지기가 응집된 형태를 말한다. 이처럼 응축된 지기를 받는 혈장에 혈을 정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좋은 기를 받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명당 터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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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은 지기가 응축된 친환경적 생태 공간 

 

지금의 영릉은 현무봉에서 뻗어 내린 중심룡맥이 입수하여 혈장을 이루고 있으며, 좌우 사격이 포근히 감싸고 있어 지기가 흩어지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혈장의 중심공간에 터를 잡아 정혈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왕릉의 좌향은 백두대간의 속리산을 바라보는 회룡고조(回龍顧祖)를 이루고 있어 좋은 기를 지속적으로 조응하고 있다. 득수는 외수인 남한강을 얻고 있는데, 좌선하는 가지맥에 의해 서입동출(西入東出)하는 물길을 역수(逆水)형태로 걷어주는 득수형국이다.

 

이것은 보국내의 지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항상 친환경생태공간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영릉의 터는 조선조 탁월한 업적을 남기신 성군의 공덕에 따라 역량이 큰 길지에 모셔진 발복 터이며, 600여년이 흐른 사후세계에서도 지속적으로 나라를 위해 좋은 기를 분출하고 있는 대명당이다.

영릉을 비롯한 조선왕릉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이 증명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또한 우리선현들의 정신문화가 적용되어 조성된 공간임을 알아야 한다. 왕릉 터는 지금까지도 나라를 위한 생기를 지속적으로 분출시키고 있는 명당공간이다.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줘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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