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글이 길을 벗어나는 건 덩실덩실 춤출 일”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0 09:59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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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딴생각》 펴낸 카피라이터 정철씨

 

“직업적으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딴생각을 하게 되어 있는데, 직업이 아닌 사람이 딴생각을 하기에는 힘들다. 시간적으로 여유도 없고, 딴생각이라는 단어가 가진 불순함 때문에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성과 발상 전환은 또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딴생각이 결국 창의성과 발상 전환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이었던 ‘사람이 먼저다’와 ‘나라를 나라답게’를 쓰면서 ‘대통령을 만들어낸 카피라이터’라는 수식어가 추가된 정철씨. 유명 브랜드의 광고부터 각종 선거 캠페인 카피에 이르기까지 30년째 수천 개의 카피를 써온 대한민국 대표 카피라이터면서 지은 책도 많은 그가 최근 아이디어가 궁한 이들을 위해 《틈만 나면 딴생각》을 펴냈다.

 

“딴생각은 ‘아니요’라고 말하는 거다. 정답에 대해 자꾸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게 딴생각을 불러낸다. 창의성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정답에게 자꾸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의심하고 부정하고 오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창의성과 발상전환은 개념어라 어렵지만, 딴생각은 쉽다. 누구나 다 딴생각을 하니까, 조금 쉽게 실천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좋은 생각, 맞는 생각만 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일도 답을 내는 일도 지치고, 계속 딴생각만 하는 자신이 싫어질 때, 《틈만 나면 딴생각》은 오히려 딴생각에 푹 빠져보기를 권한다. 딴생각도 틈나는 대로 계속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의 연필, 비 내리는 소리, 말도 안 되는 농담 같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 생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가야 남다른 말, 신선한 글, 기발한 생각이 나온다. 진지하고 감상적이며 엉뚱한 온갖 딴생각이야말로 평범한 발상의 경계를 단번에 뛰어넘는다. 생각의 한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정철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336쪽 1만3800원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되게 만드는 ‘딴생각’

 

정씨는, 평소에도 쉼 없이 떠들고 연필로 그림 그리듯 글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끝없이 딴생각에 빠진다. 그게 바로 30년을 쓰고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나는 지금 글을 써야 하는데 잡념이 자꾸 나를 방해해. 점심 뭐 먹지? 짬뽕? 대구탕? 그냥 백반? 아니면 굶어? 점심 메뉴 기웃거리느라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 한 대 콩 쥐어박고 연필과 종이에 더 집중해야 할까. 아니, 잡념에 더 집중해야지. 짬뽕 국물 속으로 풍덩 뛰어 들어가야지. 홍합과 오징어와 양파와 미역을 해녀처럼 훑으며 거기서 불쑥 솟는 생각을 건져 올려야지. 글이 길을 벗어나는 것은 땅을 칠 일이 아니라 박수를 칠 일. 덩실덩실 춤을 출 일.”

 

《틈만 나면 딴생각》에서는 정씨가 시선 옮기기, 파고들기, 잘라 보기, 가까이에서 찾기 등 12가지 발상법으로 어떻게 생각을 찾는지 보여준다. 좋은 생각, 맞는 생각만 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글이 길을 벗어나는 것은 땅을 칠 일이 아니라 박수를 칠 일.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이란다. 30년 넘게 아이디어를 파낸 사람의 결론이다.

 

“연필 쥔 손에서 힘을 빼는 거야. 손이 연필을 움직이게 하는 게 아니라 연필 움직임을 손이 따라가는 거야. 그러다 연필이 오탈자를 만들면 그때 잠깐 손이 일을 하는 거지. 작정하지 않고 쓰는 잡문. 때론 이런 글이 꽤 괜찮은 결과를 낳기도 해. 우리가 내세우는 거창한 작정이라는 게 실은 보잘것없을 때가 적지 않거든. 우연의 힘이 작정의 힘보다 강할 때도 있거든. 글이 그렇다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아이디어는 샘솟는 게 아니다”

 

이렇듯 《틈만 나면 딴생각》은 정씨의 말과 글과 생각을 머릿속에서 줄줄이 꺼내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관찰하고, 발견하고, 확장하고, 연결하면서 생각을 가지고 꼬리를 물며 논다. 그는 떨어지는 낙엽 한 장, 달팽이 한 마리를 가지고도 수십 가지를 연상하고 글을 써내려간다.

 

“칼이라는 무기를 발견한 사람은 대장장이도 장군도 아니었을 거야. 작가였을 거야. 술 좋아하는 작가. 그가 자판 앞에 앉아 ‘말’을 치려다 실수로 ‘칼’을 쳤을 거야. 손이 흔들렸을 테니까. 자판 미음 바로 아래에 키읔이 있으니까. 나중에 오타임을 발견했지만 그대로 뒀을 거야. 둘은 같은 뜻이니까. 말이 칼이니까.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

 

정씨는 책을 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책, 다른 글을 내고 싶었고, 다음 책은 또 어떤 다른 색을 입힐지 늘 고민했다고 한다. 《틈만 나면 딴생각》에서는 생각이란 떠오르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까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그걸로 광고 카피와 책을 만드는 걸 반복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생각은 떠오르는 게 아니고 계속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꼬리’가 책의 콘셉트였다. 책 한 권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에세이,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면서도 그게 또 다음 글로 절묘하게 연결되게 써보고 싶었다. 계속 가다 보니 지루해져서 아예 생각의 그릇을 여러 개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내가 생각을 어떻게 찾는지 들여다보니까 열두 개 정도의 그릇이 마련됐다.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도 글감이나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던진 것이다.”

 

정씨는 ‘말과 글은 수많은 생각들을 30cm만 이동시켜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연아의 충고’라면서 들려주는 대목이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잊어. 다 잊어. 네가 너에게 칭찬 한 번 해 주고 기억에서 지워. 집중이 끝나면 헝클어질 필요가 있어. 나태해질 필요가 있어. 그래야 인생에 리듬이 생기거든. 그래야 다음 집중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거든. 집중을 방해하는 건 너무 많은 집중이야. 쉬지 않는 집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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