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원래 결단력 강해, 盧대통령도 늘 자문 구했다”
  • 부산 = 구민주·이민우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8 09:17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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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1주년] 이호철 前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文 대통령과 나는…”

 

“마침내 정권교체가 되고 존경하는 노변(노무현 전 대통령), 문변(문재인 대통령) 두 분이 대통령이 됐다. 살면서 이만한 명예가 어디 있겠나.”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당일,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인에게 이 글을 남기고 여행을 떠났다. 이후 그는 정계·언론과 접촉을 끊고 수개월간 해외에 체류했다. 대선 내내 정치권을 맴돌던 친(親)문재인계 핵심 ‘3철(이호철·양정철·전해철)’의 청와대 입성설도 조금씩 잠잠해졌다.

 

각 당이 지방선거에 시동을 걸던 지난해 말, 이 전 수석의 이름이 정치권에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의 부산시장 출마설이 제기되면서다. 지난 1월 귀국한 그는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당내 유력 부산시장 후보들이 하나로 뭉친 ‘One Team(원팀)’을 구성했다. 지난 2월부턴 본격적으로 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선거를 지원하고 있다. 귀국 후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시설 건립에만 집중하려 했지만, 부산 지역 내 지방선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 고민 끝에 선거전에 동참했다. 

4월24일 오후, 방문객들로 북적북적한 부산 서면 오 후보 캠프 사무소에서 이 전 수석을 어렵게 만났다. 대선 후 근황과 함께 문 대통령의 지난 1년 국정에 대한 생각 등을 물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40여 분 동안 캠프 사무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그를 찾았다.

 

© 시사저널 이종현


 

선거 준비로 굉장히 바쁜 것 같다. 그래도 여론조사 결과가 잘 나와 다소 여유롭지 않은가.

 

“지난 24년 동안 부산은 시장은 물론, 구청장·시의원도 민주당이 된 일이 없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1995년 노무현 부산시장 후보 당시 15%까지 이기다가 역전패한 트라우마가 있어 다들 자신감보단 조심조심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부산은 언제든지 디비질(뒤집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부산은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반드시 탈환해야 할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취임 후 1년간 줄곧 높게 유지돼 온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민주당 첫 부산시장 탄생의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이 전 수석은 “대통령 되면 정말 잘할 거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지난 1년, 생각보다 훨씬 더 잘했다”며 문 대통령의 지난 1년에 대해 평가했다.

 

문 대통령과 이 전 수석은 경남고등학교 선후배이자 1980년대 재야 운동을 함께한 30년 지기다. 1981년 이 전 수석이 부산 최대 공안 사건인 부림사건 피의자로 구속됐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이 전 수석과 문 대통령 인연의 고리도 연결됐다. 그 후 함께 참여정부에 몸담으며 이 전 수석은 느리지만 꼼꼼한 문 대통령의 ‘진가’를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지난 1년을 어떻게 봤나. 예상만큼 잘했다고 생각하나.

 

“참여정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문 대통령이 민정비서관, 비서실장 하시면서 서로 매일같이 만났다. 모든 회의마다 읽어야 할 보고서가 정말 많았는데 그걸 늘 전부 꿰뚫고 계셨다. 노 전 대통령과 원칙적이라는 점은 같지만, 노 전 대통령은 말씀을 많이 하는 데 비해 문 대통령은 많이 듣는 편이었다. 그 후 2012년 대선 도전하고 국회의원, 당 대표까지 하면서 남들 10년 당 생활하며 겪을 것 이상의 일들을 겪었다. 짧은 시간 정치적 경험과 정책적 학습을 쌓은 거다. 이것들이 바탕이 돼 대통령 되시면 아주 잘하시리라 믿었다.”

 

 

문 대통령의 많은 지인들은 대통령이 된 직후 국정운영에서 그가 보인 과감한 결단력에 대해 놀라워했다. 그러나 이 전 수석은 “원래 그랬던 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하신 적이 있지 않았나. 노 전 대통령은 판단이 잘 안 설 때마다 문 대통령에게 자문을 구했다. 나한테 가서 (문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오라고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인 2009년 5월27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 시절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호철 민정수석이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드 배치 문제 잘 풀어내 놀랐다”

 

이 전 수석에게 지난 1년,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가장 잘한 일과 가장 아쉬운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사드 배치’ 문제를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사드 1기만 배치할까 4기를 배치할까 했는데 4기까지 놔서 깜짝 놀랐다. 걱정이 상당히 많이 됐다. 그런데 이후 중국을 잘 설득해 내고, 미국과의 문제도 트럼프 대통령과 잘 풀어내는 걸 보면서 참 대단하다 느꼈다. 다른 사안들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면, 사드 문제는 나도 ‘저걸 앞으로 어떻게 풀려고 하시나’ 몹시 우려스러웠다.”

 

반면 ‘생각 이상으로 잘 해낸 1년’이었을지라도 다소 아쉬웠던 부분은 다름 아닌 ‘국회의 뒷받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할 순 없다. 우선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데, 그 점이 잘 뒷받침되지 못하다 보니 부분적으로밖에 정책을 집행 못하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최근까지 국회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퇴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 겹치면서 일정이 마비되고 여야 간 극심한 충돌이 이어졌다. 특히 드루킹 사건의 경우 남북 정상회담 이슈에 다소 잠잠해진 듯하지만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 전 수석 역시 평소 가까웠던 김경수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가 관련돼 있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건을 바라봤다.

 

 

최근 굵직한 이슈가 많았다. 드루킹 사건은 어떻게 보나. 선거 활동하면서 영향은 없나.

 

“전혀 없다고 볼 순 없지만, 큰 영향은 안 미친다. 여기 내가 앉아 있으니 사람들이 찾아와 인사하잖나. 나한테 인사도 하고 사진 찍자고 한다. 다 찍어준다. 오거돈 후보를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니까. 하지만 다 누군지 모른다. 나는 기억을 못하지만 그들은 다 나를 알거든. 나와 사진 찍은 누군가가 바깥에서 일을 치면 꼼짝없이 나도 당하게 된다. 김경수 후보도 그런 처지다. 악수도 하고 명함을 주는데 하루 10명 이상 만나면 잘 기억 못한다. 특히 김 후보는 대선 때 공보를 맡았으니까, 여러 명에게 기사를 다 보냈고 그중 드루킹은 인식도 못했다고 하더라. 경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믿고 이해한다.”

 

 

이 전 수석과 만난 날은 마침 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때였다.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그의 감회는 더욱 남달랐다. “2007년과 비교하면 정상회담 논의 수준이 굉장히 다른 것 같다. 종전선언이나 종전협정 이런 얘기 그때도 물밑에선 검토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김정은·트럼프 구도에서 위기가 올 것 같았는데 이렇게 해낸 걸 보면 대단하다. 21세기 아시아태평양 대전환기 아닌가, 상상력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싶다.”

 

4월24일 그를 만난 후 일주일여가 지난 5월2일, 막을 내린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이 전 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참 잘된 일이고 이만큼까지 진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대선 때만 해도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았고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외교 아닐까 했는데 끈기로 잘 풀어내신 것 같다”며 “그런 모습이야말로 남들이 잘 모르는 문 대통령이 가진 오랜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한 달 남짓 남은 지방선거가 끝나면 그는 또 어디로 향할까. 여러 차례 ‘정계 복귀’를 부인했던 그에게 다시 한번 중앙정치 복귀 가능성을 물었다. 대답은 여전히 단호했다.

 

 

여전히 문재인 정부가 후반기에 접어들면 문 대통령이 청와대로 부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 한다. (문 대통령은) 날 안 부르실 거다. 그게 날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진짜 부산을 바꿔보고 싶어 원팀도 구성하고 비례대표 시민공모제도 제안하면서 뛰고 있다. 당으로부터 해운대 지역 국회의원 출마하라고 권유도 받았고, 부산시장도 주변에서 ‘제발 불출마 선언만 하지 말아 달라’ 했지만 애초에 출마는 안 하려 했다.”

 

 

정치와 멀어도 가까워도 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3철’ 프레임은 지난 대선 때도 그에겐 상당한 부담이었다. 대선을 마치고 ‘3철’은 모두 즉각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이후 전해철 민주당 의원은 경기지사 경선에 도전했고,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외국에 체류하며 책을 쓰며 각자의 길을 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잊을 만하면 세간에 거론되는 ‘3철’, 그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베이비부머 세대 이름엔 ‘철’이 많이 붙는다”며 “여기 캠프 사무소 와 있는 사람들 중 이름에 ‘철’이 들어가는 분 손 들라고 하면 꽤 많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에도 그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며 “전해철 의원 경기지사 후보 떨어진 날 밤에도 위로 전화를 했다”고 얘기했다.

 

 

지난 3월 전해철 민주당 의원의 북콘서트 자리에 세 분이 대선 후 처음 모여 이른바 ‘3철 해단식’을 선언했다.

 

“그 전에 양정철 북콘서트도 간다고 했었다가 자꾸 언론에 나와서 안 갔는데, 전해철 의원은 경기지사 나갔는데 지고 있어서…. 우린 어려울 때 의리를 지킨다. 잘나갔으면 안 갔을 텐데 많이 어렵더라고. 승패 상관없이 한 번 가서 도움이 된다면 하는 마음으로 갔고 거기서 3철 해단식이란 표현을 썼다.”

 

 

최근 대통령과도 연락한 적 있나.

 

“없다. 대통령님 잘하고 계시고, 우리 말고도 참모들도 충분히 있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된다. 잘한다 못한다 연락이 없으시니 나도 대충 잘하고 있는 것 같다(웃음).”

 

 

정계 복귀에 거듭 단호하게 답한 이 전 수석은 선거 후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여행을 좋아해 여행사도 운영하고 있다는 그는 외국에 나갈 거라고 말했다. 이 대답 역시 재빠르고 또 단호했다.

 

 

선거 후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여행을 좋아해 만든 여행사에 난 주식만 갖고 있다. 내 처는 교사 일 그만둔 후 거기서 직접 일하고 있다. 이미 여행 책도 두 권 냈다. 서너 권 정도 더 쓰는 게 목표다. 올해 내 나이가 환갑이다. 배낭 들고 여행 다닐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년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모퉁이에서, 물가 싼 동네에서 길게 머물면서…. 정치하면서 사회를 바꾸는 것도 좋겠지만 여행 다니고 책을 써서 주변 사람들 행복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지금까지 40년 했으면 많이 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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