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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의 무덤’에서 살아남은 문경은 감독

[이영미의 生生토크] 프로농구 SK 나이츠 우승의 원천은 ‘형님 리더십’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6(Sun) 16:00:00 | 1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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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8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버저가 울리는 순간 SK 나이츠 문경은 감독(47)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원주 DB를 상대로 2연패 후 4연승을 거둔 끝에 6차전에서 챔프전 우승을 확정 지은 문 감독은 그동안 가슴에 담아둔 회한을 눈물로 쏟아냈다.

 

현역 시절 ‘람보 슈터’로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문경은 감독. 2010년 은퇴 후 2011년 SK 감독대행을 거쳐 2012년부터 정식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2012~13시즌 팀을 정규시즌 1위에 올려놓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지만, 연세대 선배인 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한테 4연패를 당하며 좌절을 맛보게 된다. 이후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올 시즌 팀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끌었고, 마침내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4월24일 SK텔레콤 본사에서 문경은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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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챔프전 우승의 여운이 남아 있나요.

 

“5월 팀 우승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진 우승의 기쁨을 이어가고 싶어요. 오래 기다렸던 우승이라 여운이 더 깊은 것 같아요. 지금은 찾아주시는 분들도 많고 제가 인사 다녀야 할 곳이 줄을 서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챔프전을 치르며 체중이 빠진 것 같아요.

 

“은퇴하자마자 감독대행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팀을 이끌고 있는데 시즌 때는 이겨도 (술을) 먹고 져도 마셨어요. 지금은 그렇게 했다간 쓰러질 것 같더라고요. 술을 자제하고 거의 끊다시피 했더니 체중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매 시즌마다 우승을 목표로 했어요. 그러다 막상 우승을 차지하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기쁨 이면에는 약간의 공허함? 헛헛함도 존재할 듯한데요.

 

“제가 우승 축하연 때 건배사로 ‘즐겨라’라고 말했어요. 모든 선수들이 우승을 향해 달려왔고,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참고 인내했잖아요. 당분간은 충분히 즐겨도 될 것 같아요. 공허함 대신 아직까진 기쁨이 더 큽니다.”

 

 

언제부터 우승이 눈앞에 보였나요. 챔프전에서 만난 원주 DB는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킨 팀이라 상대하기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올 시즌을 앞두고 10개 구단의 전력을 평가했는데 우리보다 잘할 것 같은 팀이 보이지 않았어요. 플레이오프에만 진출하면 우승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죠. 정규리그 개막 이후 7연승을 했던 게 큰 힘을 줬다고 봐요. 개막 직후 주전 김선형의 부상으로 암울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연승 행진을 벌이게 된 거죠.”

 

 

5년 전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울산 모비스와의 챔프전에서 4전 전패를 당하며 우승을 놓쳤어요. 이번 챔프전에서도 1·2차전은 원주 DB에 연패를 당했었죠. 불안하지 않았나요.

 

“우승해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진짜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원주에서 2패를 떠안고 선수들과 버스를 타고 양지 숙소로 향하는데 1승만 하면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3차전에서 1승을 챙겼고 4차전까지 연승을 이어가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2승2패가 됐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거예요. 챔프전 마치고 지난 영상들을 봤는데 4차전 이기고 이상범 감독한테 악수하러 다가갈 때 제가 ‘휴’하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이제 됐구나’ 싶었던 겁니다.”

 

 

6차전에서 경기가 마무리될 줄 알았나요. 만약 6차전에서 패했더라면 원주로 돌아가 마지막 7차전을 치르게 됐을 텐데요.

 

“6차전은 무조건 이겨야 했어요. 만약 7차전으로 넘어갔다면 결과를 장담하긴 어려운 상태였어요. 2패 후 어렵게 만든 3연승 끝에 6차전을 내준다면 오히려 DB가 더 상승세를 타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우리보다 ‘화력’이 센 팀이라 무조건 6차전에서 마무리 지어야만 했습니다.”

 

 

올 시즌 SK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개막 직후 김선형의 부상과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외국인 선수 헤인즈의 부상이 뼈아팠죠.

 

“그래서 개막 후 7연승을 기록했을 때 승리의 기쁨보다 선형이 부상이 더 마음 아팠어요. 선형이의 부상으로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고요. 헤인즈의 부상도 선형이만큼 충격이 컸죠. 그래도 대체 선수로 뽑은 제임스 메이스가 정말 잘해 줬습니다. 원주 DB의 로드 벤슨만 잘 막아주길 바랐는데 그 이상의 역할을 해냈어요. 헤인즈에 가려 있던 테리코 화이트의 에이스 본능, 부상에서 복귀한 김선형의 활약 등이 더해지면서 내외곽의 짜임새가 탄탄해졌죠. 제가 우승 직후 소감으로 ‘선수들을 진짜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건 100% 제 진심이었어요. 7년 전 감독대행으로, 6년 전 정식 감독이 돼 직접 뽑은 선수들이 성장해 챔프전 우승에 큰 기여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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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농구팬들은 문 감독을 향해 ‘문애런’이라고 부르죠. 외국인 선수인 애런 헤인즈를 편애한다는 비아냥을 담은 표현이에요. 헤인즈한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지적도 포함돼 있고요.

 

“제가 헤인즈를 편애하는 게 아니라 빠르고 공격적인 농구를 추구하는 팀 전술에 헤인즈가 잘 녹아드는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김선형·최원혁과 관련해서도 ‘문선형’ ‘문원혁’ 등으로 불려야 되겠죠. ‘문애런’이란 말은 듣기에 따라 섭섭함을 안겨주기도 했어요. 2012~13시즌 정규리그에서 우승했는데 헤인즈가 다 했다고 폄하하는 기사가 나왔을 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KBL 규정에 의하면, 외국인 선수는 한 팀에서 3년 이상 뛸 수 없어요. 이 룰을 잘 모르는 분들은 제가 헤인즈를 내보냈다고 하는데 재계약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헤인즈는 오리온에서 2년을 뛰었고 다시 재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올 시즌을 앞두고 헤인즈와 사인을 했던 거죠.”

 

 

헤인즈와 재계약하기 전 고민이 많이 됐겠어요.

 

“당연하죠. 구단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헤인즈 데려왔다가 실패하면 비난이 클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추구하는 농구를 잘 이해하는 선수이고, 누구보다 SK 선수들과 좋은 호흡을 보이는 외국인 선수였으니까요.”

 

 

두 차례의 챔피언결정전을 경험하며 상대팀 감독이 모두 연세대 선배인 유재학·이상범 감독이었네요.

 

“유재학 감독님과 맞붙었을 때는 감독 초보일 때라 준비했던 걸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어요. 유 감독님이 언론을 통해 우리 팀의 약점을 지적하면 다음 경기에서 그 약점을 보완하기에 급급했었죠. 유 감독님이 기자들한테 ‘SK 드롭존은 10초면 깰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 전 그 기사를 보고 ‘10초면 깬다는데 우린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4연패를 당하는 동안 한 번도 이끌어간 적이 없었어요. 계속 뒤따라가기만 했었죠. 이번에는 그때보다 감독 경험이 쌓였고 다양한 플랜을 준비해 둔 다음 경기에 임했어요. 그래서인지 DB를 상대로 2연패해도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 챔프전에선 원주 DB의 가장 막강한 공격수인 디온테 버튼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게 신의 한 수였어요.

 

“간단하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공격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수비에서 허점을 보였거든요. 버튼한테 30점 이상을 내줬다는 건 버튼을 제대로 못 막은 거잖아요. 버튼의 득점을 줄이려면 그의 스피드와 역할을 줄여야만 했어요. 버튼을 막을 수 있는 선수가 누구일지 고민하다가 최원혁을 떠올렸죠. 원혁이한테 버튼 막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버튼을 막지는 못하지만 버튼을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있다’라고요. 3차전부터 최원혁이 버튼을 상대했는데 사실 그의 스피드를 따라잡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원혁이가 자신의 몫, 그 이상을 해내더라고요. 결국 계속 버튼의 득점을 줄이다가 6차전에선 14득점으로 끊었죠. 버튼의 역할을 축소시킨 게 승리 요인이었습니다.”

 

 

2012~13시즌 정식 감독이 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감독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나요.

 

“아니요, 전혀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외롭고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지만 제가 좋아하는 농구를 계속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전 목표가 분명했어요. 첫 번째는 우승이었고, 두 번째는 안 잘리는 거였어요. 성적으로 중도 하차하는 감독들을 많이 봐왔잖아요. 전 굵고 길게 하고 싶었습니다.”

 

 

문 감독의 지도 스타일을 두고 ‘형님 리더십’이라고 말하는데 공감하는 부분인가요.

 

“맞는 것 같아요. ‘형님’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니까요. 선수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농구뿐만 아니라 사적인 부분도 공유하면서 서로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시즌 앞두고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한테 ‘한 수’ 배우려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감독이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팀을 이끌기에 계속 우승을 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위 감독이랑은 연세대 1년 선후배 사이지만 71년생 동갑내기거든요. 직접 전화도 했어요. 식사하면서 얘기 좀 듣고 싶다고. 위 감독이 난색을 표했죠. 그냥 식사하는 거라면 언제든지 만날 의향이 있지만 뭘 배우려 한다면 부담스럽다고요. 그때는 창피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팀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만나 허리를 숙일 자세가 돼 있었습니다.”

 

 

고 김현준 선수와 깊은 인연을 맺었죠. 광신상고-연세대-삼성전자 선후배로 인연을 이어가다 김현준 선수가 세상을 떠났는데, 문 감독이 굉장히 좋아했던 선배라고 들었습니다.

 

“아마 하늘에서 제가 우승한 걸 지켜보셨다면 대견해하셨을 것 같아요. 광신중-광신상고에서 연세대로 진학했던 건 현준 형을 따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꿈이 현준 형이 삼성 감독 하면 그 밑에서 코치를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삼성전자로 갔던 것이고요. 이후 신세기(현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됐는데 아마 현준 형이 삼성에 계속 계셨더라면 팀을 옮기진 않았을 겁니다. 제가 삼성에서 14번을 달았거든요. 형은 10번 달고 뛰었고요. 신세기에서 형의 등번호인 10번을 달았어요.”

 

 

감독 문경은이 봤을 때 ‘람보슈터 문경은’은 어떤 선수였다고 생각하나요.

 

“즐기면서 재미있게 농구했던 선수였죠. 별다른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했고요. 농구대잔치 시절의 인기와 감동을 직접 경험하고 성장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충희-김현준-문경은-방성윤은 한국 농구의 슈터 계보죠. 전문 슈터 문경은이 꼽는 최고의 슈터는 누구일까요.

 

“제가 신동파 감독님 경기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얘기만 들었을 때는 한국에서 나올까 말까한 슈터로 활약하셨더라고요. 당시 던지면 다 득점이 됐다고 해요. 한 경기당 50점씩 넣었다고 하니까. 직접 본 선배들 중에는 (이)충희 형을 꼽을 수 있어요. 폼은 이상한데 슛을 잘 쏘는 선수였어요. 아주 멋진 선배였죠.”

 

 

현재 SK에는 전희철·허남영·김기만 코치가 있는데요, 수석인 전희철 코치 나이가 마흔다섯이에요. 다른 팀에선 감독 할 나이인데, ‘분가’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다른 팀에선 감독을 해야 할 위치죠. 사실 여자 팀에선 몇 차례 오퍼가 오기도 했어요. 본인이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 옆에 남아줘서 고맙고 미안해요. 저랑 나이가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전 코치도 얼마나 감독을 해 보고 싶겠어요. 좋은 코치들 덕분에 흔들림 없이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감독은 매번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위치거든요. 그 결정이 다 옳은 건 아닐 텐데 실수를 최소화시키는 역할을 코치들이 해 주고 있습니다. 가끔은 제가 긴가민가하면 전 코치가 ‘감독님, 이 생각, 저 생각 하지 마시고 그냥 결정하세요’라고 말해요. 전 그의 결정을 따라가요. 물론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제가 져야 하는 것이고요. 그만큼 믿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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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감독 이전에 SK 나이츠는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불렸어요. 그런데 문 감독은 7시즌 동안 살아남았죠. 비결이 궁금합니다.

 

“처음 감독 맡았을 때 전 코치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희철아, 회사에서 너랑 내게 감독, 코치를 맡긴 이유가 뭘까? 우승을 바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너랑 나한테 팀을 맡겼을까? 그건 아니겠지?’라고요. 모래알 같다고 소문난 팀을 잘 만들어 달라는 의미였어요. 그래서 ‘형님 리더십’으로 밀고 간 것이고요. SK 나이츠가 더 이상 감독들의 무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직은 그렇게 돼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명장, 복장, 덕장, 지장 중에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요.

 

“덕장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복장+덕장이면 더 좋고요.”

 

 

우승도 했는데 명장이란 타이틀이 욕심나지 않나요.

 

“명장은 600승을 이룬 유재학 감독님 정도 돼야 듣는 찬사예요. 전 아직 멀었습니다.”

 

 

문경은 감독은 올 시즌을 끝으로 SK와의 계약이 만료된다. 우승을 차지한 만큼 역대급 대우를 받으며 재계약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직까진 구단도, 감독도 공식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스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을 멋지게 깨버린 문경은 감독의 지도자로서의 첫 우승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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