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와 맞대결에서 茶로 웃은 펩시콜라
  •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3 09:53
  • 호수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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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세계 2위였던 펩시, 하이엔드 차로 포문 개방

 

미국 뉴욕주 퍼체이스에 본사가 있는 펩시는 코카콜라 앞에만 서면 늘 작아지던 만년 세계 2위의 청량음료 회사였다. ‘펩시’는 그리스어로 ‘소화’라는 뜻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뉴번의 약사인 칼렙 브래드햄(Caleb Bradham)이 개발해 1893년부터 판매하던 소화를 돕는 음료를 1898년 ‘펩시콜라’로 작명하고 1903년 정식 브랜드로 론칭했다. 1886년부터 상품화된 코카콜라보다 12년 늦게 출발한 펩시는 120년에 걸쳐 치열한 라이벌 브랜드 경쟁을 코카콜라와 벌였다. 1923년과 1931년 파산 위기에 몰려 코카콜라에 두 번이나 인수 제의를 했지만 거절당했을 정도로 수모를 당했던 펩시였지만, 2015년에는 코카콜라의 하이엔드 차(茶)음료를 향해 포문을 먼저 열었다.

 

펩시를 세계 음료시장 정상에 올려놓은 CEO 인드라 누이 © AP 연합


 

1903년 펩시콜라 론칭 이후 만년 2위

 

탄산음료 시장에서 늘 수세에 몰리던 펩시의 홍보팀은 “펩시는 다른 회사처럼 가루를 휘젓는 방식을 배제하고 찻잎을 직접 우려서 만든다”며 코카콜라의 프리미엄 RTD(Ready To Drink·개봉해 바로 마시는 음료) 차인 골드 피크(Gold Peak)를 정조준했다. 차음료 시장에서 5.5%에 불과한 코카콜라의 시장점유율을 7배나 앞질러 40%를 상회하는 펩시의 자신감이 차음료 전선에서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했다. 펩시는 자사 제품인 ‘퓨어 리프 티(Pure Leaf Tea)’가 갓 짜낸 생주스라면 코카콜라의 차음료는 농축액을 희석한 주스라고 폄하했지만 코카콜라는 반격에 나설 차 브랜드가 없었다.

 

10년 동안 15배 이상 몸집이 커진 RTD 차 시장에서 펩시는 고급화된 이미지와 전문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 브랜드 립톤(Lipton)을 생산·판매하는 유니레버(Unilever)와 합작회사를 세워 일찌감치 연합전선을 구축해 왔다. 반면 골드 피크를 선봉으로 내세운 코카콜라는 2011년에 인수한 어니스트 티의 레몬음료 매출 신장에 고무돼 찻잎으로 우려낸 정통 공법의 차음료를 더 이상 주목하지 않았다. 펩시의 공세에 코카콜라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난공불락인 코카콜라의 탄산음료와 맞대결을 피하고 차음료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펩시의 최고 사령탑, 인드라 누이(Indra K. Nooyi)의 사업 다각화 전략이 주효한 결과였다.

 

2006년 8월14일 펩시의 5대 최고경영자(CEO)이자 첫 여성 CEO로 부임한 인드라 누이는 2001년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겸한 대표이사에 오르자마자 코카콜라를 꺾고 음료업계에서 시가총액 1위로 등극한 승리의 추억이 있었다.

 

펩시 역사상 처음으로 이룬 쾌거의 중심에 있는 인도 국적의 외국인 여성 경영자 인드라 누이는 담배 다음으로 해로운 음식으로 치부되고 있는 탄산음료 비중을 펩시의 전체 매출 중 20%로 줄였다. 코카콜라는 아직도 70% 이상을 탄산음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펩시는 건강음료 비중을 높였다.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 타이틀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연속 차지한 인드라 누이는 마드라스 크리스천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인도경영대(IIM)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1978년 예일대 경영대학원에서 다시 MBA를 딴 인드라 누이는 보스턴컨설팅그룹, 모토로라 등 회사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했다. 1994년 펩시 CEO 웨인 칼로웨이(Wayne Calloway)에게 스카우트될 때부터 인드라 누이는 미국 음료시장에서 브랜드 가치와 매출액 1위를 지키는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했다. 1998년 코카콜라 대주주,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주춤하는 사이에 과일주스 전문회사인 트로피카나를 전격 인수하며 탄산음료 생산에 몰두하던 펩시를 변화시켰다. 2001년 CFO에 오른 인드라 누이는 ‘펩시콜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결정’이었다고 평가받는 퀘이커 오츠를 인수했다.

 

140억 달러에 사들인 퀘이커 오츠의 우선인수 선택권이 코카콜라에 있었지만, 인드라 누이는 펩시를 설득해 게토레이를 생산하는 퀘이커 오츠 인수를 관철시켰다. 펩시의 게토레이는 79%의 시장점유율로 19%에 불과한 코카콜라 파워에이드의 시장점유율을 크게 앞지르며 음료부문에서 코카콜라를 처음 이겼다. 탄산음료 대신 주스·이온음료·차·스낵 등의 제품 개발에 주력한 펩시는 2004년 코카콜라 매출액보다 73억 달러를 앞섰다. 2005년도에는 시가총액 987억 달러를 기록하며 코카콜라 시가총액 965억 달러를 넘어섰다.

 

펩시를 진두지휘한 인드라 누이의 탁월한 경영능력은 2014년 환리스크라는 악재와 탄산음료 시장의 침체 속에 더욱 빛났다. 코카콜라의 매출은 2% 감소했지만 펩시는 4%나 증가했다. 펩시의 첫 여성 회장인 인드라 누이의 2014년 연봉도 2013년에 비해 45%나 오른 1910만 달러였다. 2012년 3040만 달러를 받은 무타 켄트(Muhtar Kent·코카콜라 CEO)는 2014년에 2520만 달러를 받는 데 그쳤다. 2000년부터 포천 선정 여성 리더 명단에 열여덟번 이름을 올린 인드라 누이는 2017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2위에 올랐다.

 

인드라 누이는 펩시의 기존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해 세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펩시콜라와 같은 기존 탄산음료를 ‘즐거움(fun for you)’으로, 트로피카나 주스와 퀘이커 오트밀 등을 ‘좋음(good for you)’으로 구분했다. 미래성장 사업으로 심혈을 기울이는 ‘더 좋음 (better for you)’에는 다이어트 음료와 차를 직접 우려낸 퓨어 리프를 핵심 배치했다. 차에 대한 펩시의 로망은 이머징마켓인 중국으로 향했다. 2008년 코카콜라 매출을 전 세계 최초로 누르고 1위에 오른 중국의 량차(凉茶) 왕라오지(王老吉)를 인수 대상으로 삼아 여러 해 동안 협상을 진행했지만, 왕라오지의 복잡한 내부 사정과 법정 소송 사태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했다.

 

찻잎을 직접 우려낸 펩시의 퓨어 리프 © 서영수 제공


 

세계 茶 시장 선점 위한 경쟁 후끈

 

펩시에 체면을 구긴 무타 켄트가 지난해 4월30일 물러나고 ‘코카콜라’의 새로운 CEO로 임명된 제임스 퀸시는 “132년의 역사를 가진 코카콜라가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여야 한다는 데 집착하다 보니, 경영진들은 변화가 필요할 때마다 지나치게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고 연이은 실적 부진을 진단했다. 그는 이어 “탄산음료 매출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고, 차와 생수를 비롯해 다양한 음료를 생산하는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새로운 브랜드를 인수·합병해 사업 다각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히며 인드라 누이 따라잡기에 나섰다. 1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세계 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음료회사들의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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