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군국주의 회귀’로 70년 만에 되살아 난 ‘교육칙어’
  •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2 14: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5화 - 교육칙어와 일제의 ‘머릿속 침략’

 

요즘 일본이 시끌벅적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투타겸업 오타니 선수가 연일 홈런을 쳐대고 승리를 따내는가 하면, 언론에선 권력형 비리·조작·특혜란 말이 하루가 멀게 터져 나온다. ‘자위대 문서’ 사건과 ‘사학 스캔들’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사태는 아베 총리의 극우 정책이 ‘제 발등을 찍은’ 것으로 여겨진다.

 

자위대 건만 해도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드는데 불리한 문건을 숨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학 스캔들 역시 아베의 극우 성향 때문에 불거진 사건이다. 아베 부부와 관련 있는 유치원에서 원생들에게 군국주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외우도록 시킨 게 화근이 됐다.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은 국유지 헐값 특혜와 공문서 조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태의 본질은 아베의 우경화 교육정책에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 위기는 ‘군국주의 회귀’ 극우정책이 빚은 결과”

 

교육칙어(育勅語)는 1890년 메이지 일왕이 국민들을 충성스러운 신민(臣民)으로 가르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칙어는 일왕을 신으로 모시며, “국가에 위급한 상황이 오면 일왕을 위해 한 목숨 바친다”는 내용을 담은 일제 교육의 최고 이념이었다.

 

그런데 1895년 대만을 손에 넣은 일제는 이 칙어를 식민지에도 보급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과연 이민족들이 일본인처럼 칙어에 ‘감화되어 저절로 눈물이 날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곧 이런 의문조차 ‘불경(不敬)’한 것으로 몰려, 칙어는 식민지 대만에 그대로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대만총독부는 원주민들을 정신적으로 교화(敎化)시킬 또 다른 대안을 찾았다. 마침 대만에서 전해 내려오던 어느 원주민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200여 년 전 우펑이란 사람이 자기 종족의 ‘목 자르기’ 풍습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자기희생 정신은 일왕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라는 교육칙어의 가르침과 비슷했다. 더욱이 원주민의 문명화를 일깨운 점은 식민지 근대화라는 자신들의 침략 명분에도 딱 들어맞았다.

 

마침내 총독부는 대대적으로 ‘우펑 띄우기’에 나섰다. 대지진 때 무너진 그의 묘를 옮겨 성역화 했다. 또 이 이야기를 수많은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고 모든 교과서에 의무적으로 싣도록 조치했다. 일왕의 칙어에는 시큰둥했던 원주민들도 자기들 조상인 우펑 이야기에는 환호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우펑이 공자 보다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펴낸 《식민지제국 일본의 문화통합》이란 책에 따르면, 1915년 조사에서 대만 공립학교 6학년 학생 41명 중 40명이 우펑을 좋아했다고 한다. 반면에 공자를 좋아한다고 답한 학생은 31명에 그쳤다. 

 

그런데 일본의 패망 후 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총독부가 꾸며낸 것으로 밝혀졌다. 원래 원한과 복수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이를 희생으로 조작한 것이었다. 어찌됐든 ‘우펑 신화’는 교육칙어와 함께 일제의 대만 통치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 한 축을 이루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대만보다 한술 더 떠 교육칙어 자체가 신격화됐다. 1911년 일왕에게서 칙어를 하사받은 조선 총독은 관공서와 학교에 봉안전(奉安殿)을 만들었다. 그 안에 일왕의 사진과 칙어 등사본을 모셔놓고 아침마다 참배시켰다. 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부동자세로 서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큰 절을 올려야 했고,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4월14일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이 '아베 내각 총사직'이란 팻말을 들고 가케학원 스캔들 의혹으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아베 일본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1937년 대륙침략에 시동을 건 일제는 조선인을 ‘영혼 없는 일본인’으로 만드는 황국신민화 교육에 더욱 열을 올렸다. 조선교육령을 개정해 한국어 사용을 사실상 금지시키고 학생들에게 날마다 교육칙어를 암송하도록 강요했다. 하물며 깨어있을 때면 항상 칙어를 보고, 느끼고, 감격하도록 거울·족자, 심지어 졸업앨범에도 이를 새겨 넣어 보급하기도 했다. 

 

이런 세뇌 교육이 먹힌 탓일까? 1938년 지원병 제도가 생긴 이후 조선 청년 1만7000여 명이 일본군에 자발적으로 입대했다. 물론 일제의 회유나 주변의 강요가 따랐겠지만, 지원병 모집에는 1943년 한 해만 해도 6300명을 뽑는데 30만 명이 몰릴 정도였다. 당연히 선발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일왕을 위해 한 목숨 바치는’ 교육칙어 정신이 얼마나 투철한가였다. 

 

이처럼 대만과 조선에서 이민족을 황국신민으로 교화시키는 경험을 쌓은 일본은 그 ‘노하우’를 태평양전쟁이란 무대에서 유감없이 펼치고자 했다

 

학교나 관공서에 세워진 봉안전과 교육칙어가 새겨진 거울 (사진 제공 = 이원혁)

 

아시아 전체로 확산된 황국신민화 교육과 일제의 ‘머릿속 침략’

 

1942년 1월 미군을 내쫓고 마닐라를 점령한 일본군은 자기들 눈에는 ‘양키 문화에 푹 빠진’ 필리피노들을 마땅찮게 여겼다. 그래서 이들의 머릿속부터 바꾸려고 작정했다. 한데 문제는 천황제 교육이었다. 사실 일왕이 신이란 건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히 ‘엽기적인’ 일이었다. 300년이 넘는 가톨릭국가 스페인의 지배와 40년 간 미국 군정을 거친 이들에게 신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본군은 마치 군사작전 하듯 ‘세뇌 전쟁’을 벌였다. 본국 학자들을 데려와 주민들이 천황제에 복종하도록 정신개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종교계도 총동원했다. 당시 일본 기독교단은 교육칙어와 유사한 교리강령을 만들어 ‘침략 신학’을 전파했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전몰자들의 피를 그리스도의 피에 비유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 군부는 이런 목사와 신부들을 앞세워 필리핀 성직자들에게 ‘천황 신앙’을 퍼뜨리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이미 식량 수탈과 강제 노역으로 당할 만큼 당한 주민들은 이제 머릿속까지 뒤집어놓는 일본군을 증오했다. 일본군이 ‘황색 미국인’으로 무시한 이들은 오히려 미군의 손과 발이 되어 침략자에게 강력하게 저항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일본군은 26만 명, 필리핀 사람들은 110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황국신민화 교육에 반기를 든 무슬림들이 대량 학살된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은 일본군이 점령한 자바섬 서쪽에 있는 수카마나라는 이슬람 기숙학교에서 일어났다. 1944년 2월 이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은 매일 아침 도쿄에 있는 일왕을 향해 허리 굽혀 절을 올리는 ‘궁성요배’ 의식을 거부했다. 이들은 학교 설립자인 자이날 무스타파의 주도 아래 이슬람 교리를 무시하고 황국신민 예법을 강요한 일본 병사들을 처단했다. 곧바로 현장에 나타난 일본군은 ‘피의 보복전’을 벌여 무슬림 120명을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궁성요배하는 모습과 수카마나 사건으로 처형된 자이날 무스타파. 가운데는 이 사건의 추모비 (사진 제공 = 이원혁)

궁성요배하는 모습과 수카마나 사건으로 처형된 자이날 무스타파. 가운데는 이 사건의 추모비 (사진 제공 = 이원혁)

이와 같이 대만·조선 같은 유교 문화권과 달리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뿌리 깊은 나라에서 황국신민화 정책과 천황제를 앞세운 일제의 ‘머릿속 침략’은 처음부터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흔히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풀고 다시 채우는 것이 상책인데 일본군은 도리어 총칼로 이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주민들을 황국식민으로 교화시키기는커녕 반감만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패전 후 일왕은 ‘인간선언’을 통해 신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1948년 일본 국회는 “일왕을 신격화한 교육칙어는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면서 칙어의 무효를 결의했다. 이로써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 놓고 벌인 소동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70년 만에 교육칙어는 되살아났다. 지난해 3월 아베 정권은 이 칙어를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침략전쟁을 부추기는 도구로 쓰였던 칙어를 이제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드는데 앞세운 것이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초·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영토’란 점을 명시하도록 한데 이어 지난 3월에는 이를 고교 교과서에도 적용시켰다. 이 같은 조치는 교육칙어를 부활시킨 아베의 우경화 교육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훗날 머릿속이 바뀌어 진 아이들이 자위대를 앞세워 “독도는 우리 땅이니 나가달라”고 위협해도 그들에겐 전혀 지나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때, 일본은 또 어떤 ‘괴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궁금하고 두렵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