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교육감에 발목 잡힌 창원국제학교 '설립 난항'
  • 경남 창원 =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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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유구역 외국인 정착 필수 인프라” vs “일반고 역량 강화와 동떨어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웅동지구에 들어설 영국 왕실 후원 국제학교인 로열러셀스쿨의 한국 캠퍼스 설립이 난항을 겪고 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순기능만 바라보고 국제학교 설립을 추진할 수 없다.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4월25일 경남도 등에 따르면,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은 경남도교육감, 창원시장 등과 협의해 로열러셀스쿨을 설립한다는 방침을 최근 결정했다. 하지만 박 교육감의 입장 때문에 지난해 연말 학교 설립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순항하던 창원국제학교 설립 일정도 상당 기간 미뤄질 전망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과 경남도, 창원시는 지난 2011년부터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정주 여건을 갖추기 위해 국제학교 유치를 추진해왔다. 이후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차질을 빚다 지난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웅동지구에 부지가 확보되면서 영국 로열러셀스쿨 유치에 성공했다.

 

400억원에 이르는 설립 비용 조달도 지난해 12월 영국 로얄러셀스쿨 분교(창원국제학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해결됐다. 5만6515㎡ 부지에 연면적 6만3000㎡ 규모의 학교 시설 건립에 로열러셀스쿨이 2000만달러를 투자하고, 나머지 사업비 200억원은 국비 등이 들어간다. 

 

2017년 12월 진행된 ‘영국 로얄러셀스쿨 분교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 ⓒ 창원시 제공

 

박종훈 경남교육감, 평준화 지역 확대와 배치 '반대 입장'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추진될 외국 교육기관인 창원국제학교 설립과 관련, 진보성향의 박 교육감은 고입 선발고사 폐지와 평준화 지역 확대로 일반고 교육 역량에 나선 경남교육청의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박 교육감은 4월23일 창원국제학교 설립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타 시·도에서 운영되는 학력 인정 국제학교는 입시에 유리한 귀족·특권 학교로 전락해 교육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우려와 지적이 나온다”며 “국제학교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폐지해 교육기회를 고르게 부여하겠다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교육기본권을 보장하며 모두가 행복한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경남교육청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박 교육감의 이같은 발언은 창원국제학교 설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제학교의 설립·폐쇄 승인 및 지도 감독권은 교육부에 있지만, 도교육청은 교육부로부터 지도·감독권을 위임받을 수 있는 데다 설립에 대한 교육환경영향평가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창원국제학교 설립은 박 교육감의 협조 없이는 추진이 어려운 셈이다.

 

박 교육감은 2015년 10월 안상수 창원시장이 내놓은 국제고등학교(특수목적고) 설립 추진 계획에도 제동을 건 적이 있다. 당시 안 시장은 학력 우수 학생의 유출 방지와 다른 시·도 학생들의 유치를 강조했지만, 박 교육감은 “창원시의 국제고 설립 계획은 큰 흐름으로 봤을 때 일반고 역량강화 사업의 힘을 빼버릴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 교육감의 창원국제학교 설립에 대한 부정적 입장은 자신의 창원국제학교 학력 불인정 발언으로 더욱 표면화됐다. 박 교육감은 4월11일 경남도의회 임시회에서 “창원국제학교는 국내법으로 설립되는 학교가 아니고 학력 인정도 안돼 내국인이 이 학교에 다니고 대학에 가려면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창원국제학교는 국어와 사회 등 2개 교과 이상을 이수하면 학력이 인정되는 교육기관으로 지정을 받을 수 있다. 박 교육감은 별도 승인 규정을 간과했다며 자신의 ‘학력 불인정’ 발언을 급히 진화하려 했지만, 창원국제학교 설립에 대한 부정적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는 여론이다. 

 

 

부산경제자유구역청 “학교 설립 등 정주 여건 시급”

 

지금으로선 박종훈 교육감의 입장 변화가 불투명해 학교 개교 시기도 당초 구상보다 상당 기간 늦어질 전망이다. 2020년 9월 개교 예정이었으나, 박 교육감이 주장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면 적어도 1년 이상 늦춰질 수 밖에 없다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은 보고 있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는 글로벌기업 등 유치가 이어지면서 상주 외국인 기업과 임직원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17년 9월 말 기준으로 126개 기업에 총 9301명의 외국인 임직원이 거주하고 있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창원국제학교는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정착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필수 인프라이고, 해외 조기 유학 수요를 흡수하는 효과도 있다”며 “국제학교 설립이 꼭 필요한 만큼 정부와 관계기관들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창원국제학교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정판용 경남도의원은 “최근 부산시도 명지에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운영할 국제학교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교육 환경 개선을 통해 경남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만큼 관계기관들이 창원국제학교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열러셀스쿨코리아 측도 “2020년 9월 개교와 이를 위한 교장과 교사 선정 등 준비를 위해서는 신속한 진행이 필요하다”며 관계기관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와 관련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은 “국제학교는 외국인투자 유치·지역경제 활성화·글로벌 인재 양성 등을 위해 필요하지만, 경남교육청이 우려하는 바도 있다”며 “실무적인 협의는 계속 진행하되, 도지사 권한대행·교육감·창원시장·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경남개발공사 사장 직무대행 등 5자가 모여 큰 틀에서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영국 로열러셀스쿨은 1853년 설립된 영국왕실이 후원하는 명문 학교다. 2016년 영국 ISI(교육기관 평가)의 9개 영역 전 부문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열러셀스쿨의 한국 캠퍼스인 창원국제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2280명 정원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정원의 30%까지 내국인 입학이 허용된다. 

 

한편 현재 학력 인정을 받는 국제학교는 대구국제학교와 채드윅 송도국제학교 등 전국에 6개교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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