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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윤이상 63년 만에 고향 통영과 ‘화해’

사후 23년 만에 유해 통영으로 돌아와…안장 놓고 여전히 좌우 대립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3(Fri) 09:00:00 | 1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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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국,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갈 것입니다.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곳이 나의 고향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고(故) 윤이상이 생전에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유튜브에서 ‘윤이상의 육성’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켜봤다.

 

“나는 몇 십 년을 통해 우리 고향이 있는 남쪽, 충무(통영의 옛 지명)를 못 밟고, 시모노세키(일본) 가서 배를 타고 쭈욱 한반도 근처까지 갔다가 지척에 있는 고향을 보고 그냥 돌아오고, 빙빙 돌았어요. 그러니까 내 고향 땅을 중간에 놔두고 빙빙 돌았어요. 몇 십 년 동안을…. 가까이 갈 적마다 그 감회가 어땠는지 상상하실 거예요.”

 

그에게 고향이란 어떤 의미일까. 왜 그는 그토록 고향땅을 밟고자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를 허락지 않았던 것일까. 윤이상이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3월30일 경남 통영에 위치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윤이상 선생 묘소 이장 및 추모식’ 취재차 차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라곤 ‘윤이상의 삶은 슬픈 우리의 현대사’라는 점뿐이었다. 이념을 뺀 채 ‘인간 윤이상’만을 바라보는 건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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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항거 민주인사’냐 ‘용공인사’냐

 

작곡가 윤이상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예술인이다. 재독(在獨) 철학자 송두율의 표현을 빌리자면, 윤이상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우선 그에 대한 평가부터가 극과 극이다. 보수 정부의 눈에 비친 윤이상은 ‘간첩’이다. 김일성을 흠모해 스스로 방북한 전형적인 친북인사라는 것이다.

 

우리 정보 당국이 윤이상을 포착한 것은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 사건에서였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이응로, 학계의 황성모·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1958년 9월부터 동베를린 소재 북한 대사관을 오가면서 이적(利敵) 활동을 했고 일부는 북한에 다녀오거나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간첩활동을 벌였다. 사건과 관련해 203명이 조사를 받은 가운데, 검찰이 간첩죄나 간첩미수죄를 적용한 것은 23명에 불과했다. 실제 최종심에서 죄가 인정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훗날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동백림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사건을 확대 과장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윤이상은 독일에서 납치, 국내로 송환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독일을 비롯한 해외 예술인들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2년 만인 1969년 국외로 추방됐다. 그것이 윤이상과 조국 대한민국의 이별이었다. 국내 입국이 불가능해진 윤이상은 북한을 10여 차례 오가며 통일운동을 벌여 1990년 남북 범민족 평화음악제를 제안하고 평양공연을 이끌어냈다. 그럴수록 그에겐 ‘용공(容共)인사’라는 색깔만 덧칠해졌다.

 

군부독재 이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1994년 윤이상의 귀국을 추진한다. 그때 단 한 가지 조건이 붙었는데, “대한민국 국민께 용서를 구한다”는 성명서 낭독이었다. 일종의 전향서였던 것이다.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 여사는 “당시 이홍구 통일원 장관(부총리)의 ‘선생님, 그건 꼭 말씀해 주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윤이상)은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그건 남편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윤이상은 망향의 정을 달래며 독일에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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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윤이상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있던 통영 출신의 신숙자씨가 1985년 남편 오길남씨와 북한으로 넘어갔는데 이후 남편 오씨가 자수해 “윤이상이 가족의 월북을 권유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윤이상에게 덧칠해진 ‘용공 이미지’는 사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고향을 떠난 지 63년, 사후 23년 만에 유해를 고향으로 가져오는 것에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유해를 송환해 오는 과정에서 국내 보수층의 반발이 뒤따른 것도 그 때문이다. 추모식이 있었던 3월30일 경남지역 보수단체들은 행사장인 통영국제음악당 주변을 돌며 “빨갱이 윤이상은 통영 땅에 발 디딜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또 다른 일부 관계자는 “납북자 생사에 대해선 관심 없는 정부가 간첩 윤이상만 환대해 주고 있다”며 성토했다.

 

보수진영의 반발을 우려해서일까. 고인의 가족들은 윤이상의 유골을 당초 계획일보다 앞당겨 안장했다. 한 통영시 문화단체 관계자는 “유족들이 불교식에 맞춰 길일(吉日)에 비공개로 안치하길 희망해 이장을 서둘렀다”고 설명했다. 행사를 주관한 통영국제음악재단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가족과 재단 임직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현성 스님의 주재로 안장 및 평토제를 지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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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언론 “윤이상, 20세기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사적 공로에 대해선 해외에서 더 인정해 준다. 세계 클래식계는 윤이상을 가리켜 ‘동양과 서양의 음악적 기법을 완벽하게 결합시킨 천재 작곡가’라고 평가한다. 피아노 중심의 클래식을 현악과 타악기 중심으로 바꾼 데는 윤이상의 공이 컸다. 동양의 음악적 감수성을 서양음악에 절묘하게 이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유럽의 음악매체들은 살아생전 윤이상을 ‘20세기 위대한 작곡가’라고 칭송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마음에 시작한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 탄생 101주년이자 통영 안장을 기념해 올해 주제를 ‘귀향’으로 정했다. 축제가 열린 통영국제음악당 1층 로비에선 ‘윤이상의 눈으로 본 통영 기억’이라는 주제의 사진전이 열렸다. 청년 윤이상이 살던 1940~60년대 통영의 풍경을 흑백 사진으로 재현했다.

 

이번 2018 통영국제음악제에선 행사 곳곳마다 윤이상을 기리는 음악들이 선을 보였다. 3월30일 개막식 공연엔 윤이상의 1981년작 《광주여 영원히》가 독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진행됐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며 만든 이 작품은 기존 교향시곡을 한 단계 뛰어넘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뒤편 합창석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지켜봤는데 시작부터 파격의 연속이었다. 마치 총성처럼 여러 음이 파격을 연출했다. 그런가 하면 군홧발에 짓밟힌 시민들의 울분을 토해 내듯 타악기가 ‘쿵쿵쿵쿵’ 소리를 이어갔다. 그 뒤를 화려한 현악기 소리가 고음을 내며 마치 영화 사운드트랙과 같은 소리를 냈다. 클래식 악기가 기계음 같은 소리를 낸 것이다. 윤이상의 천재적 음악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스티브 슬론의 손놀림에서 힘겨움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광주라는 참혹한 역사적 현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악보만 보고 곡을 해석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수 있다. 20여 분간 진행된 연주에서 스티브 슬론은 대가의 음악을 소화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이상은 《광주여 영원히》를 통해 광주의 원혼을 그렇게 달랬다.

 

윤이상은 가로 1m, 세로 70㎝, 높이 50㎝ 크기의 너럭바위 밑에 묻혀 있다. 그 옆에 한 그루씩 서 있는 해송과 향나무는 윤이상과 함께해 줄 친구다. 그리고 그 너럭바위 위엔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쓴 처염상정(處染常淨·진흙탕 속에서도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살아생전 그가 고향 통영을 그리워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부인 이수자씨는 추모식 직후 가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와 바닷가에서 한가로이 낚시하며 여생을 보내는 걸 꿈꾸며 살아왔다. 김영삼 정부의 전향서 권유를 거부해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산되자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의 육성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은 몇 개 더 있다. 다음은 그중 하나다.

 

“여러분, 나는 윤이상입니다. 나는 충무(옛 통영)에서 자랐고, 충무에서 그 귀중한 정신적인 정서적인 모든 요소를 내 몸에 지니고, 그것을 내 정신과 예술적 기량에 표현해서 나의 평생 작품을 써 왔습니다. 내가 구라파(유럽)에 체재하는 38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충무를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파도 소리는 나에게 음악으로 들렸고, 그 잔잔한 볼을 스쳐가는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나에게는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부인 이수자씨의 표현대로 윤이상은 그렇게 63년 만에 고향과 ‘화해’했다. 살아생전 윤이상은 가족들에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에 묻어 달라”고 말했다. 사후 그가 영면한 자리에서 왼쪽으론 통영항과 여객선터미널, 정면으론 한산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은 윤이상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푸른 물색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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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통영 바다 보이는 언덕에 잠들다

 

통영은 크고 작은 섬들이 모인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진주와 같은 곳이다. 컴컴한 밤에 파도 소리만 빼면 크고 작은 봉우리가 줄지어 있는 게 마치 어느 산골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그게 통영의 매력이다. 아마 윤이상도 그게 보고 싶었을 것이다. 개막식 공연이 끝나고 윤이상을 다시 찾아갔다. 휘영청 대보름달이 너럭바위 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가운데 파도 소리가 고요와 환호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다.

 

“나의 음악은 악을 배척하고 삶의 승리를 구가하고 슬픈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인류사회에 희망을 주고자 하는 의욕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의 고국의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나의 음악을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얻으시고 내가 절실히 염원하는 민족의 평화적 사회와 민족끼리의 화해가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바라고 또 다 같이 노력합시다. 안녕히~”

 

윤이상에 대한 평가는 쉽게 결론 내리기 힘들다. 경계인의 삶은 좌우 어디에도 오롯하게 서 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를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까. 벚꽃과 동백이 만개한 통영의 봄은 지난 겨울이 언제 그토록 매서웠느냐는 듯 환하게 우리에게 다가와 있었다. 어쩌면 윤이상도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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