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워서 성공한 예능 《윤식당2》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30 09:00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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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휴식 제공…‘나영석 월드’ 진가 확인하며 역대 최고 시청률 경신

 

tvN ‘윤식당2’가 성공적으로 식당 영업을 마무리했다. 이 프로그램은 시작할 때부터 시청자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첫 회 시청률 14.1%, 순간 최고 시청률 17.3%라는 믿기 어려운 수치가 나온 것이다. 방송 2회 만에 비드라마 부문 TV 화제성 1위를 차지하고, 5회에 16%로 tvN 예능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작년 봄에 방영된 《윤식당1》은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섬에 식당을 냈는데, 《윤식당2》는 스페인 남부 테네리페 섬의 가라치코 마을에 2호점을 냈다. 《윤식당1》에선 불고기와 라면·만두·닭튀김이 주 메뉴였는데, 《윤식당2》에선 김치전과 닭강정·잡채·비빔밥·갈비 등을 선보였다.

 

‘워라밸 열풍’을 타고 출발한 《윤식당2》는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며 큰 인기를 모았다. © tvN 제공


 

시청자가 기다린 예능이라 첫 회부터 주목

 

이렇게 소소한 몇 가지 점에서 차별성이 있었지만 큰 틀에선 기본적인 정체성이 이어졌다. 1편과 마찬가지로 해외에 한식을 파는 식당을 내 윤여정 등이 요리하고, 이서진 등이 접객 종업원으로 일한다는 설정이다.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정신없이 일하는 게 아니라, 느지막이 일어나 마을을 산책한 후 천천히 준비해 낮시간대 영업을 하고 일찍 문 닫는 설정도 그대로였다. 가게에서 식사하는 외국인 손님들의 대화를 번역해 자막으로 세세히 알려주는 방식도 1편과 2편이 똑같았다.

 

1편 자체가 그리 특이할 것 없었는데, 그 구성을 그대로 반복해 2편을 내놓는다고 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청자들이 식상해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나영석 월드’의 《윤식당2》를 폭발적으로 환영했다. 1편보다 호응이 적을 거란 일반적인 예측을 벗어난 반응이었다. 첫 회 방송부터 시청률이 치솟았다는 것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많이 기다렸다는 뜻이다.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을 안겨줬고, 그래서 첫 회 이후에 시청률이 더 오르며 tvN 자체 예능 시청률 기록까지 세웠다. 대중이 이 프로그램을 기다린 것도 의외고,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을 안겨준 것도 의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윤식당1》은 그렇게 특이하거나, 사람들을 자극하는 재미 포인트가 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연예인들이 식당에서 천천히 일하고, 외국인 손님들은 느긋하게 대화하며 식사를 하고, 영업 이외의 시간엔 마을을 산책하는 내용이 프로그램의 전부였다. 그런 내용을 반복하는 시즌 2가 나오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릴 것이라곤 기대하기 힘들었다.

 

막상 시작된 《윤식당2》는 《윤식당1》보다 더 단조로운 내용이었다. 《윤식당1》은 발리라는 국제적인 관광지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식당 손님의 국적 구성이 매우 다양했다. 각 식탁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드러내는 국가별·민족별 특색이 재미 포인트를 구성했다. 반면에 《윤식당2》가 촬영된 가라치코 마을은 관광지이긴 하지만 발리보단 훨씬 덜 알려진 곳이다. 국제적 관광지라기보다 작은 시골 마을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그렇다 보니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 마을 주민이었다. 다채로운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1편보다 더 적었고, 프로그램이 더 밋밋해졌다. 그래서 대중에게 만족을 안겨준 것이 의외라는 것이다. 하지만 1편보다 더 큰 호응을 받았다.

 

대중이 바로 그 단조로움을 환영했다는 뜻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휴양·휴식·위로가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됐다. 《윤식당2》에 손님으로 등장한 마을 주민들의 느긋한 모습이 시청자에게 휴식의 느낌을 전해 줬다.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에겐 ‘빨리빨리’의 정서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마실 나가듯’ 식당에 들러 이웃들과 인사하며 음식을 음미했다. 주말엔 마을 광장에 모여 작은 축제를 즐겼다. 거기에 스페인 남부 섬마을의 이국적인 풍광이 더해져 시청자가 잠시나마 복잡한 세파를 잊게 해 줬다.

 

한 마을 주민이 ‘한국이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인가’라고 묻자 그 딸이 ‘그렇다. 한국이 1등이다’고 답한 장면이 국내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보통 TV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이 한국을 안 좋게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데, 여기선 ‘끔찍하다’고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공감이 간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 딸은 또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들어간다. 거기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한다. 대기업을 위해 그렇게 일을 한다니… 나는 조금만 일하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에도 호응이 컸다.

 

2017년 봄에 방영된 《윤식당1》 © tvN 제공


 

‘한국 끔찍하다’는 외국인 소녀 말에 공감

 

잠자는 시간만 빼곤 오로지 일에 몰두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한국인의 DNA가 최근 바뀌고 있다. 월급을 조금 적게 받더라도 자기 시간을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워라밸’이라는 신조어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의 준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겠다는 의미다.

 

여유, 휴식, 삶의 질 고양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이국적인 곳에 가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 말이다. 《윤식당》 시리즈가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줬다. 요즘 정치권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인데, 가라치코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비록 현실에서 그런 삶을 살진 못하지만 시청자들은 《윤식당2》를 통해 그런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윤식당》 시리즈의 성공엔 외국인 예능의 인기도 작용했다. 원래 우리 시청자들이 외국인의 시각에 예민했었는데 요즘 들어 그 경향이 더 강해졌다. 그래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 외국인 리얼리티 예능의 전성기가 도래했는데, 《윤식당1》이 이런 흐름의 직접적인 출발점이었다. 외국인 손님들이 한국 음식, 한국 연예인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시청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윤식당1》에서 외국인이 라면 국물을 들이켜거나, 한국식 닭튀김이 KFC 프라이드치킨보다 낫다는 반응을 보일 때 시청자 반응이 폭발했다. 《윤식당2》에서도 외국인들이 김치전·닭강정에 찬사를 보낼 때 시청자들이 뿌듯해하며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한식에 자부심을 느꼈고,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시즌 3’를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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