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커피 시장의 새로운 중심, 상하이를 가다
  • 구대회 커피테이너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3 17:44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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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회의 커피유감] 中, 10년 내 세계 최대 커피 소비국 부상

 

“중국인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 세계 커피 시장에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커피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필자 역시 커피에 관한 글을 쓰고 카페를 경영하고 있지만 중국 상하이(上海)에 다녀오기 전까진 지금 중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중국 커피 시장에 대해 무지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고 정확하겠다.

 

지난해 12월5일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커피계의 디즈니랜드’라 불리는 상하이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SSRR) 개점 자축차 중국 상하이를 찾았다. SSRR은 미국을 제외하고 해외에서 처음 선을 보인 스타벅스 로스터리 매장으로, 일반 스타벅스 매장의 300배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규모뿐 아니라 최고급 베이커리와 차 그리고 이곳만의 각종 시그니처 메뉴 또한 선보였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첫인상은 “스타벅스가 도대체 이곳에 무슨 짓을 한 건가”라는 감탄이었다. 하워드 슐츠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2020년이면 중국의 커피 시장은 3조 위안(5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번 상하이 커피 여행은 필자의 애독자이자 커피 애호가인 김영빈씨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통역으로는 상하이에서 한의학을 공부 중인 김희진, 강명재씨가 도움을 줬다. ‘과연 중국에 변변한 카페가 있을까’라는 선입견은 초반부터 보기 좋게 산산조각이 났다. 작지만 강한 커피회사 밍치엔은 2009년 상하이에 문을 연 이래 현재 직원 40명에 연 매출 34억원을 올리고 있다. 직접 커피농장을 운영하며 질 좋은 생두와 원두를 카페에 납품하는 것을 주업으로 한다. 그 외에 몇 개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반인을 상대로 바리스타 교육과 카페 창업 관련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원두에 대해 설명하는 밍치엔 커피의 왕레이 파트너 © 사진=구대회 제공


 

스타벅스, 세계 최대 커피매장 상하이에 문 열어

 

외면상으론 여느 커피회사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력은 더 좋은 커피를 생산하겠다는 끊임없는 노력에 있다. 밍치엔의 네 명의 파트너 중 하나인 왕레이는 생두 전문가다. 그의 아이폰은 현지 농장의 습도와 온도 등 기후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세팅돼 있었다. 수시로 현지 기후를 확인한 후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농부에게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문자로 보냈다. 지난 2월 윈난성(雲南省)의 합작 농장에서 수확한 뉴크롭을 비롯해 가공방법이 다른 몇 가지 원두를 시음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특히 워시디(Washed·생두를 물로 세척한 후 건조한 원두)에선 마치 중국 보이차와 같은 맛과 향이 났다.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맛이어서 매력적이었다.

 

스몰 암스 빅 하트(Small Arms Big Heart), 이름만큼이나 넓은 마음으로 여러 나라의 원두를 소개하는 카페가 있다고 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보통 여러 나라의 원두라 하면 커피 산지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여러 나라의 유명한 카페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하는 베리에이션 메뉴는 자사의 블렌딩한 원두를 사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의 카페 몇 곳에서도 원두를 들여와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두 보드판에서 익숙한 카페 이름을 만나니 외국에서 한국음식점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필자는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그리고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매니저를 포함한 세 명의 여자 바리스타가 커피를 추출하고 서비스하는 점 또한 이채로웠다. 4평 남짓한 작은 매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옆 사람의 체온까지 느껴질 정도로 좁았지만 커피 맛과 직원들의 세련된 서비스 덕에 불편함은 없었다. 세 잔 모두 마치 커피 교과서를 옮겨 놓은 듯 기본기에 충실해서인지 각 메뉴마다의 특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커피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탄탄했다. 대만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타이베이(臺北)보다 상하이의 커피가 한두 수 위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매장을 나서기 전 알게 된 사실은 이곳의 주인이 다름 아닌 밍치엔의 파트너인 왕레이라는 것이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지 않은가.

 

상하이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만 전문적으로 하는 카페 중 신흥 강자로 부상하는 카페가 있다. 예를 갖춰 손님을 대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 같은 이름, 매너 커피(Manner Coffee)다. 상하이에 총 일곱 개의 매장을 둔 이곳은 싸고 맛있는 커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실제 상하이에서 15위안(약 2550원)에 이 정도 수준의 커피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특이한 점은 사이즈가 같다면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의 가격이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장쑤성(江蘇省)에 로스팅 공장을 갖추고 직접 볶은 원두를 각 지점에 공급하고 있었다.

 

중국판 스타벅스를 꿈꾸는 시소 커피 © 사진=구대회 제공

 

상하이 어디든 커피 수준 중상급 이상

 

통역을 맡은 강명재씨는 “상하이에서 가장 대중적인 커피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매너 커피를 꼽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맛을 보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거부감이 없고 부드러운 커피, 고소하고 크리미한 우유 거품은 왜 매너 커피가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중국의 스타벅스를 꿈꾸는 카페가 있다. 시소 커피(See Saw Coffee)라는 커피 프랜차이즈인데, 이름이 가진 의미는 스타벅스만큼이나 엉뚱하다. 이곳에 들어가는 순간 “여기가 과연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중국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했다. 현재 중국 커피 산업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이곳은 세련된 실내 디자인과 사이펀을 비롯해 핸드드립 그리고 에스프레소 머신 추출을 할 수 있는 초현대식 바를 갖췄다. 특히 사이펀 추출과 핸드드립 추출이 인상적이었는데, 바리스타들은 추출한 원두를 전자저울로 정확히 계량한 후 추출 역시 손님이 원하는 양만큼 서비스했다.

 

코스타리카 타라주 원두를 선택한 후 사이펀과 아메리카노로 주문했다. 신기한 것은 둘 다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중간볶음의 원두는 기분 좋은 청량감을 주는 산미와 구수하고 부드러운 쓴맛의 조화 속에 혀와 코를 호강시켰다.

 

위에 언급한 카페 외에도 이디엠 카페(EDM Cafe)와 더 프레스(The Press) 그리고 파인라인 커피(FINELINE COFFEE) 등 여러 곳을 다녀왔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카페의 커피 만족도가 중상급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무심코 들른 카페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은 상하이 커피의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앞으로 상하이는 세계 커피 시장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향후 10년 내에 세계 최대의 커피 소비국이라는 위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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