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정부 지원? 돈냄새 맡은 하이에나떼가 다 뜯어먹어”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3 17: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대우 창업 기념식서 만난 이국종 아주대 교수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자웅 겨뤄야”

 

정부와 국회가 모두 한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 불과 지난해 말이다. 여야는 2017년 12월 중증외상진료센터 예산을 212억원 늘리는 데 합의했다. 보건복지부도 이에 따른 예산집행 계획과 관련 사업 내용을 밝혔다. 일사천리였다. 모두 이국종 아주대 교수(중증외상센터장)가 북한 귀순 병사를 살려낸 이후의 일이다. 

 

올 3월22일 정부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회의에서 ‘외상센터 진료체계 개선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이 총리는 “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란 표현까지 쓰며 대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저녁 시사저널은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이국종 교수를 만났다.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식 참석을 앞두고 가진 짧은 만남이었다. 그동안 외상센터 현장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아직까진 변화가 없습니다.”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예산안이 확정됐다고 해서 바로 집행되기도 힘들거니와, 심의절차를 또 거쳐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꺼낼 틈도 없이 이 교수가 곧 말을 이었다. 그 속엔 서릿발이 서려 있었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때 중증외상센터 지원이 크게 이뤄질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2012년 첫 번째 외상센터 선정 과정에서 아주대가 떨어졌죠. 다섯 개 센터 뽑았는데…. (아주대는 2013년 추가 선정됨) 외상센터 지정 과정부터 잘못됐어요. 센터 시설도 그렇고, 직원들 수도 센터 규모와 맞지 않습니다. 지금 인건비나 물자 지원한다는 계획도 마찬가지고요.”

 

 

3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213 엘타워에서 인터뷰한 아주대학교병원 이국종 교수(중증외상센터장). © 시사저널 최준필

 

혹시 아침에 정부가 ‘외상센터 개선대책’을 발표한 걸 몰랐던 게 아닐까. 이 교수는 하지만 “그건 여기 오는 길에 다 전해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 정부가 외상센터 전문의 인건비를 1인당 1억2000만원에서 1억4400만원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는데.

 

“그건 연봉 총액이 아니다. 교육비나 부대비용 빼면 남는 건 얼마 없다. 그리고 돈에 대해 말한 적도 없다. 인력 부분에 있어서 젊은 의사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게 더 필요하다. 여러 의료 학회에서 대학병원이 전공의를 로테이션(순환근무) 시키는 걸 권장한다고 들었다. 권장한다는 건 안 하겠다는 뜻이다. 선언(宣言)적인 정책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 그래도 오늘 정부가 헬기 우선배치도 약속했다. 

 

“배치가 되긴 뭘 되나. 헬기는 외상센터가 있는 목포 한국병원이랑 가천대 길병원에 지급됐다. 길병원은 헬기 도입 과정에서 뇌물공여 혐의로 압수수색도 받았다. 난 순진해서 몰랐다. 외상센터에 붙어 있는 하이에나 떼들은 돈 냄새만 풍기면 다 뜯어 처먹은 다음, 문제 생기면 로비로 때운다. 병원 운영 그따위로 하면 안 된다. 헬기고 나발이고….”

 

 

이 교수는 ‘처먹다’ 등 속된 표현을 거침없이 말했다. 어조는 차분했지만 쓰는 단어엔 날이 서 있었다. 

 

 

3월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213 엘타워에서 인터뷰한 아주대학교병원 이국종 교수(중증외상센터장). © 시사저널 최준필


 

- 그럼 해결방안이 뭘까.

 

“모두 목숨 걸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 판은 디자인부터 잘못됐다. 찔끔찔끔 투입해봐야 소용없다. 아주 냉정하게, 설계를 완전히 새로 해야 한다. 또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자웅을 겨뤄야 한다. 2012년 외상센터 설립 지원사업이 시작된 뒤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런데 해외연수를 진득하게 갔다 온 전문가 한명 못 뽑고 있다. 한국 안에서 올망졸망 모이기 바쁘다.”  

 

이 교수는 언론을 향한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복지부가 아주대를 외상센터 선정에서 떨어뜨렸을 때였다. “언론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이변이라느니, 어이가 없다느니. 근데 시간 지나니 복지부 쪽 입장만 실리더군요. 아주대가 빠진 게 뭐가 문제냐고….” 이 교수는 “정부가 일삼는 처참한 행위가 많은데 보도도 안 하더라”고 주장했다.

 

 

- 무엇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건가. 

 

“노골적으로 바이얼레이션(violation·위반)하는 것. 정치권과 의료계가 결탁돼 있다는 것. 드러나지 않은 행위가 많다. 날 폄하한 것도 있고. 석해균 선장이 중증외상환자가 아니란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 안타까운 건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의료계를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란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한국 사회가 전체가 얽혀 있는 문제다.” 

 

 

- 의료계뿐만 아니라 다 뜯어 고쳐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다 갈아엎어야 한다. 털어보면 개판일 거다. 복지부가 하는 수천가지 사업이 있는데, 이 중에서 정치가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외상센터 발전 방향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서울대 의대 김윤 교수님의 말을 빌리려 한다. ‘의료계의 컬처(culture․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3월22일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식에서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명예회원 위촉장을 받는 이국종 교수. ©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이 교수가 건넨 명함엔 대우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아직도 대우차 탄다”는 그는 본인이 ‘대우맨’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교수가 속한 아주대병원은 학교법인 대우학원이 운영하고 있다. 대우학원은 2011년 석해균 선장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고 손실로 털어버린 적도 있다. 이 교수가 말했다.

 

“대우는 몇십 년 전부터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쳤어요. 이게 바로 외상센터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대우는 당시 한국 사회에 안 맞아서 깨졌죠. 저도 마찬가지에요. 세계 기준에서 보면 지금 우리나라엔 사람이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해달라는 대우 관계자의 요청이 들려왔다. 기념식에서 이 교수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명예회원 위촉장을 받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엔 대우그룹 전직 임직원 약 300명이 참석했다.  

 

마지막으로 건강에 대해 물었다. 이 교수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왼쪽 눈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씁쓸한 듯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누가 관심이나 있나요”란 말 외엔 더 들을 수 없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