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궤멸’ 논리 내세운 MB, ‘보수 외면’에 자멸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3 15:52
  • 호수 148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의도 정가 “MB, 정권 아닌 개인 이권 잡은 정치인” 비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결국 구속 수감됐다. 헌정(憲政) 사상 전두환·노태우·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다. 아울러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23년 만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초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수사에 ‘보수 궤멸’이라는 논리로 맞선다는 계획이었다. 1월17일 서울 삼성동 청계재단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한 게 단적인 예다. 하지만 여론은 이 전 대통령의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3월14일 검찰 출두 때 이미 감지됐다. 당시 경찰은 경호 인력 3개 중대 240명을 이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 주변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지만 지지, 반대 세력 간 충돌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모로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때와 대조적이었다.

 

친정이었던 자유한국당조차 선뜻 이 전 대통령 편을 들지 못하는 것은 싸늘한 여론의 시선 때문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3월14일 이 전 대통령의 사법처벌에 대해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10명 중 8명(79.5%)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정치성향을 ‘보수’라고 밝힌 응답층에서도 56.8%가 ‘엄정 처벌’이라고 답한 것은 보수층조차 이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고 볼 수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3월2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논현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국민 10명 중 8명 “MB 엄벌해야”

 

왜 보수는 이 전 대통령을 버렸을까. 그걸 알기 위해선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전 대통령들처럼 뚜렷한 정치성향이 없었던 터라 이 전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여의도 정치’와 분명한 선을 그어왔다. 대신 대선 당시 이 전 대통령이 국민 여론에 호소한 것은 ‘이념보다는 실용’ ‘정쟁보다는 경제’라는 프레임이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실용적 마인드로 ‘경제 재건’에 나서겠다는 이 전 대통령의 청사진은 생활고에 지친 표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치인에게 이념은 정치적 자산이다. 강력한 지지자를 이끌 수 있는 힘의 원동력 역시 이념이다. 문제는 이 전 대통령에겐 그게 없었다는 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정치철학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는 오르게 했지만, 정작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은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데 MB나 옛 친이계가 일조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우군인 자유한국당의 당내 역학관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18대 총선에서의 흥행몰이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내 최대 계파를 이뤘던 친이계(친이명박계)는 19대 총선에선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친박근혜계)가 공천권을 행사하면서 다수가 공천에서 탈락됐다. 이후 치러진 20대 총선에서도 재기에 실패하면서 정치권에서 친이계는 존재감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다. 남아 있다고 해도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과거 친이계로 활동한 한 관계자는 “퇴임 이후 해외순방에 나서면서 측근들 경비를 대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면서 “대부분이 MB 정부 이후 뚜렷한 직업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었는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인색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이 구치소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측근들 © 시사저널 임준선


 

‘샐러리맨의 신화’ 검찰 칼날에 무너져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주변에 측근이라고 불린 인사들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이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보여준 한계다. 한 측근 인사는 “1월17일 서울 삼성동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 MB 정부 당시 활동한 공직자 수백 명에게 ‘삼성동으로 급히 와 달라’ 연락했는데 모인 게 고작 몇 명뿐이었다.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아직 할 일이 있어 MB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절대 MB 주변에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향인 대구·경북(TK)지역 여론조차 냉랭하다. 한 지역신문 기자는 “선거 때는 포항 출신이라며 표를 호소하던 사람이 퇴임 후에는 일절 발길을 끊는 것을 보고 지역민들이 많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지역 정가엔 지금도 지난해 말 포항 지진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성금으로 500만원을 낸 것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이번에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14가지다. 검찰이 판단한 혐의를 토대로 볼 때 뇌물수수액은 110억원, 비자금 조성액은 350억원. 여기에 수십억원의 조세포탈까지 포함되면 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혐의가 이 전 대통령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쓰였다는 데 있다. 이러다 보니 ‘MB는 정권이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에 맞지 않게 수준 낮은 방식으로 개인이익을 취한 것이 국민적 공분을 산 이유”라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진보는 분열해 망하고, 보수는 부패해 망한다’는 말을 현실 속에서 이 전 대통령 스스로가 그대로 재현해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이후 단일화된 보수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여권과 검찰로선 이 전 대통령 사법 처리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07년 대선 당시 MB의 화려한 경제 공약에 묻혀 있던 도덕성이 다시 주목받은 데다 리먼 사태 이후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지도층 비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도 이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이어진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한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라 불렸던 이 전 대통령이 정작 퇴임 후에는 측근 몇 사람을 데리고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 곳에서 테니스를 치는 등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모습을 보여 국민적 실망감이 크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이 전 대통령의 행보가 언론에 비춰지는 사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랑하던 이 전 대통령의 말은 이번 검찰 조사로 완전히 거짓말이 됐다.

 

반대로 이번 수사가 여권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물론 적잖은 반사이익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정치보복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지만 구체적인 정책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적폐청산 활동은 되레 여권의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검찰의 적폐청산은 유통기한이 있는 식품과 같다. 결론적으로 이 전 대통령 수사를 계기로 보수정권을 상대로 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는 일단락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