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미투’ “가해자 편드는 학교, 외부에 폭로할 수밖에”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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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미투’는 사실 새롭지 않다…지난 5년간 대학 내 성폭력 320건

 

상아탑이 개강 초부터 들썩이고 있다. 대학가에 ‘미투’ 폭로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일부 대학이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가운데,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교수들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와중에 “학내 성폭력 문제는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란 주장이 제기됐다.

 

3·8 대학생 공동행동이 3월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직장·대학 내 성폭력 근절과 낙태죄 폐지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이수빈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부회장은 3월22일 시사저널에 “서지현 검사가 촉발한 미투 운동 이후 학내 성폭력 사건 신고가 늘고 있지만, 미투만을 위한 별도의 창구를 운영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총여학생회가 학우들의 성폭력 신고를 계속 받아왔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은 “총여(총여학생회) 업무 중 대부분이 성폭력 사건 대처였다”면서 “대학가 성폭력은 미투 이전에도 만연했다”고 꼬집었다.

 

이 부회장의 말은 통계로 뒷받침된다. 최근 5년간 국내 대학에서 적발된 성폭력 사건은 320건으로 조사됐다. 장정숙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5건이었던 성폭력 사건은 이후 매년 증가했다. 지난해엔 107건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성폭력은 214건, 교수가 가해자인 경우는 72건이었다. 이어 교직원(24건), 강사(9건), 조교(1건) 순이었다.

 

자료 출처 : 바른미래당 장정숙 의원실


 

앞서 7년 전에는 대학 내 성폭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교육기관에서 발생한 성적 괴롭힘 사건 중 대학교에서 일어난 경우가 40.5%를 차지했다. 

 

‘성희롱’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도 대학가였다. 1993년 서울대에서 발생한 이른바 ‘우 조교 사건’이다. 화학과 실험실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우아무개 조교는 당시 담당이었던 신아무개 교수로부터 상습적으로 추행을 당한 것에 거부 의사를 보였다. 그러다 해고당했다. 우 조교는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대자보를 붙였고, 신 교수는 우 조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5년여 간 싸움 끝에 대법원은 처음으로 ‘성희롱’을 불법행위로 인정해 가해자 신 교수가 우 조교에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학내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피해구제 시스템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신상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부소장은 2015년 학술포럼에서 “대학 내 상담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해 피해자들이 오히려 2차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포럼에선 ‘전국 398개 대학 중 독립된 성희롱·성폭력 상담소를 갖춘 대학은 26%’란 통계 결과가 발표됐다. 2015년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가 공개한 자료에서도 대학 내 성폭력 업무 전담인력 배치율은 13.7%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담인력의 절반 이상(53.7%)이 기간제 계약직이었다. 

 

이수빈 부회장은 “연대 성평등 센터에도 성폭력 사건을 상담하는 전담 인력은 2명뿐이다. 그마저도 한 명은 비정규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보니 사건을 처리하는 시간이 지체된다”며 “그 사이 피해자는 고통 받는데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를 활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교내 인권센터 못 믿어 ‘대나무숲’에 기대는 피해자들

 

인권센터에서 피해자에게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중앙대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다 성폭력을 당한 A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인권센터에서 상담을 받던 중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고 털어놨다. “‘고의가 아니라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며 가해자의 편을 들었고, 싫다고 하는데도 용서할 의향이 없는지 계속 물어봤다. 인권센터는 누구의 인권을 위한 곳인가”라고 했다.

 

A씨는 지난 1월 피해 사실을 중앙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먼저 올려 고발했다. 이후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진행 중이다. A씨는 “2개월 동안 혼자 싸우고 있는데도 인권센터에서 돌아온 답변은 ‘가해자도 생각해달라’였다. 이러니 언론에 먼저 폭로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 학생 중 대다수가 학교 측에 피해를 알리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조현각 미시건주립대 교수가 3월12일 발표한 ‘대학교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 중 92%가 ‘피해 때문에 대학 내 프로그램·기관·사람과 접촉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중 42%가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서울 소재 6개 대학의 남녀 학부․대학원생 1944명 중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는 학생 459명을 상대로 이뤄진 설문이다.

 

이에 대해 중앙대학교 이나영 교수는 “인권센터가 없는 학교도 많을뿐더러, 있더라도 열악하게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성폭력 상담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학교에 기댈 곳이 없으니 학생들이 ‘대나무숲’이나 언론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라며 “학내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고 인권센터 수준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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