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차이나 패싱? 한반도 문제 우리가 주도한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9 15:29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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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해빙 무드가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행·쌍중단' 성과라고 주장

 

3월12일 오후 5시 중국 베이징(北京)의 인민대회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회견실로 들어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시 주석은 35분 동안의 회견에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시 주석은 “지성이면 금석도 쪼갠다(精誠所至金石爲開)”는 고사성어를 들면서 “각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라는 근본적인 목표에 초점을 둬서 한반도에 봄을 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사단의 중국 일정은 빼곡했다. 당일 오전 중국에 도착한 정 실장은 낮 12시15분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만났다. 저녁 6시20분에는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2시간 가까이 만찬을 가졌다. 중국 측에선 반나절 동안 최고지도자 및 외교책임자가 총출동한 것이다.

 

3월12일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中의 특사단 파격 대우, 왜?

 

이는 국가정상도 아닌 특사에게 펼친 파격적인 대접이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리는 양회(兩會) 기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양회는 명목상이긴 하나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다. 이번 전인대에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사상’을 삽입하고 ‘국가주석 2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이 걸려 있었다. 또한 향후 5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국가지도부를 새로 선출했다. 예년 회기(11일)보다 훨씬 긴 16일 동안 열렸다. 보통 중국 지도부는 양회 기간에 외교사절을 만나지 않는다. 따라서 시 주석이 정 실장을 접견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중국은 이날 만남을 다음 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1면 머리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이를 두고 베이징 외교가 일각에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세기의 담판을 앞두고 ‘차이나 패싱’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중국은 북핵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북·중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2013년 2월 북한은 중국의 만류에도 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12월 친중파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처형했다. 지난해 2월에는 중국이 보호해 왔던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다. 3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동참해 왔던 중국은 더욱 강경해졌다. 특히 지난해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과거와 같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제재에서 벗어났다.

 

무엇보다 12월 안보리 결의안 2397호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논란은 있었지만 중국은 비교적 충실하게 결의안을 이행했다. 여기엔 11월 시진핑 주석이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평양에 특사로 파견했지만, 3박4일 내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일도 한몫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현재 북·중 관계는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해빙 무드과 관련해 중국이 긴장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느껴진다. 3월10일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 사설에서 잘 드러난다. 환구시보는 “급변하는 정세에 중국이 주변화(邊緣化)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를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행(雙軌竝行)과 쌍중단(雙中斷)의 방향대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쌍궤병행은 한반도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가리킨다.

 

쌍궤병행은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자, 중국이 내놓은 해법이었다.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이행토록 하되, 동시에 북·미가 직접 협상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3월13일자 1면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회담 소식을 다뤘다.


 

中 달라진 시선 “文 정부 완전 신뢰”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입장 변화가 생겼다. 그 시초는 지난해 9월29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입에서 나왔다. 문 특보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포럼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의 축소나 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는 “문 특보의 개인 생각”이라며 진화했다. 그러나 마침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분노한 중국의 입장에선 아주 솔깃한 발언이었다. 10월말 한·중 정부는 사드(THAAD) 배치로 경색된 양국 관계를 정상화시켰다.

 

12월 들어선 우리 정부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을 국빈방문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쌍중단을 본격화했다. 12월19일 미국 NBC방송 인터뷰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겠다”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3월14일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정의용 실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주도적인 역할로 한반도 정세 완화에 도움을 줬다며 감사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반도 정세 변화가 ‘차이나 패싱’이 아닌 중국의 공헌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시 주석은 정 실장에게 “중국이 제기한 쌍궤병행에다 각국의 제의를 결합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중요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오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체제의 보장을 전제로 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 진전될 경우, 적극 개입할 공산이 크다. 중국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세는 우리가 사드 사태로 수세에 몰렸던 한·중 관계도 바꿀 기회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필자에게 “중국이 이제는 문재인 정부를 완전히 신뢰하게 됐다”며 “시 주석이 헌법 개정으로 장기 집권체제까지 완성했기에 조만간 사드 보복 조치를 모두 해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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