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 트럼프-김정은, 한반도 여전히 '위태위태'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2 11: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럼프의 즉흥성도 위험요소로…"북미회담 실패시 전쟁날 수도"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내가 자리를 곧 뜰지도 모르지만, 그 자리에 앉아서 전 세계 국가를 위해 가장 위대한 타결을 볼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느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북한 정상과의 대화라는 미션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 자신은 연일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중간선거 유세에서 ​5월로 예정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대화를 두고 ​"북한이 화해를 원한다"며 "이제 때가 왔다"​고 말하는 등 벌써부터 ​성공에 대해 의욕 충만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10일 펜실베이니아 중간선거 유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인 자리와 트위터 등을 통해 미국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 관련 실패와 자신의 성공을 대비시키는 등의 언행을 이어가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자신의 대북 압박 정책에 따른 업적임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그의 바람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트럼프에겐 중간선거 승리와 재선이란 값비싼 선물을 안겨주는 결과를 안겨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세계 평화에 현격한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기회를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에서 북한을 대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

 

하지만 워싱턴 외교가와 미 언론을 중심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순탄하게 이뤄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을 상대할 인물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외교관들 중에 북한 측 인사를 직접 만나본 사람이 거의 없다. ​미 국무부는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의 입을 통해 "그런 종류의 대화에 참여할 자격을 갖춘 인물이 많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협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대면접촉 경험인데 그만한 인력은 없다는게 워싱턴 외교가의 반응이다.

 

지난 2년간 미국의 반관반민 트랙으로 북한과 비공식 대화를 이어온 수전 디마지오(Suzanne DiMaggio) 뉴 아메리카재단 국장 겸 선임연구원은 3월10일 외교전문매체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현 상황에서 최대 난제는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인사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마지오 연구원은 "인력의 진공상태는 미국에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백악관은 북한과 협상한다는 게 뭔지 알기 위해 경험 있는 외부 전문가들에게라도 손길을 뻗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외교라인 공백 사태도 미국측 어려움으로 꼽힌다. 현재 미국은 빅터 차 주한미국대사 내정자의 낙마에 이어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은퇴 등에 따라 대북 외교라인이 텅 빈 상태다. 반면 북한에는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미국과의 협상 경험이 풍부한 대미통이 포진해 있다. 디마지오 연구원은 "지금 정부 고위 관료 중에 북한 측 인사를 실제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명밖에 없을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외교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지적했다. 디마지오 연구원이 지목한 '1명'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한국을 찾았던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다. 당시에도 후커 보좌관과 북한 당국자 간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는 게 백악관의 공식 입장이다. 

 

앨리슨 후커 미국 NSC 한국담당 보좌관(왼쪽)이 3월23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이방카 보좌관과의 만찬을 기다리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미 대화가 가시화될 경우 미국 측에선 이전 정부 대북문제에 관여했던 인사가 전면에 나옿 가능성이 솔솔 나오고 있다. CNN은 3월10일(현지시간) 이날 "국무부가 외부로부터 북한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즉흥성도 불안 요소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성'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달인'임을 자처해왔다. 하지만 그의 주 영역이 비즈니스 분야였다. 때문에 보다 정교한 접근이 요구되는 외교협상에서 충분한 경험이 없다는 점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정상회담 수락 과정에서 보여준 '파격' 역시 외교 협상 과정에선 불안 요소로 작용할 뿐이란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평가이다.

 

워싱턴 외교가와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인 결정으로 위험한 도박에 나섰다며 북미정상회담 과정에 우려와 비판을 가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 3월10일(현지시간) "현재 미국에는 경험 많은 외교관들이 부족하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폐기 논의에 따르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벤 로즈 NSC 전 부보좌관은 11일 "북미협상은 부동산 거래나 리얼리티 쇼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무부를 다루는 방식과 북한 이슈에 대해 변덕스러웠던 것 등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CNN방송도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부담이 큰 외교적 협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도 이번 도박판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 뉴욕타임스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회담 준비가 덜 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북미 간 '외교 밀당'은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평창올림픽 전 '로켓맨''미치광이'이라며 서로에 대해 모역적 언사를 주고받았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테이블을 앞에 두고 2차전을 시작한 셈이다. 고도의 전략이 수반되는 북미 정상 간 '수 싸움'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한 그는 최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신과 우려의 시선에 대해 트윗과 유세장 연설 등을 통해 "페이크 뉴스"라며 맹비판했다.​​​ ​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순발력'이란 개인기만 믿고 제대로 된 사전 준비 없이 북한과의 핵 협상에 나서게 된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미 협상에서 김 위원장에게 밀릴 경우 자칫 자신이 그동안 맹렬히 비난해온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으며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미국의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정상국가' 이미지만 주고 핵 개발 시간을 벌어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올 수 있다. 

 

 

빅터 차 "북미 정상회담 실패시 전쟁날 수도"

 

주한미대사로 내정됐다 낙마한 빅터 차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3월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수십년간 이어진 분쟁을 끝낼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두 정상의 드라마틱한 외교 행위가 모두를 전쟁으로 더 가까이 내몰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차 석좌는 "북한은 대가 없이 그 무엇도 내놓지 않았다"며 "북한의 핵무기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동결ㆍ파기를 대가로 미국이 대북 제재 해제 및 에너지와 경제적 지원에 나서든지 북미 외교 정상화 및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더 큰 당근'을 내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다음달 말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청와대는 주요국 협조 요청에 나섰다. 방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오늘부터 다시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찾아 공조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