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열풍 이어, ‘태움’ 개선 목소리도 확산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5 15:57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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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선욱 간호사 추모 리본, 병원서 떼어내자 동료 간호사 “진실 밝혀라” 대자보 붙여

 

‘미투’와 ‘태움’. 2018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화두다. 미투 열풍이 워낙 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측면도 있지만, 태움 문화에 대한 개선 요구 또한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신입 간호사가 설 연휴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으로 촉발된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근절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해당 간호사를 추모하기 위한 리본이 매달렸으나 병원 측이 떼어낸 사실이 시사저널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시사저널 디지털 2월27일 보도 ‘[단독] 아산병원 자살 간호사 추모리본, 병원서 3시간 만에 떼어내’ 기사 참조)

 

3월2일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하는 다리에 고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리본이 달려 있다. 유족들은 병원 내 괴롭힘을 일컫는 ‘태움’ 탓에 박씨가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박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입니다”

 

첫 시작은 대자보였다. 2월28일 서울아산병원 인근 육교에는 ‘고(故)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박 간호사의 2017년 9월 입사 동료가 쓴 것이다. 박 간호사와 같은 달 발령을 받고, 함께 교육을 받으며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던 간호사 A씨다. A씨는 대자보를 통해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진상을 규명하고 실질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A씨는 “6개월 동안 함께 교육받고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동료 간호사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곁을 떠나갔다”며 “동료를 죽음까지 몰고 갈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삶은 우리의 삶과 같다”고 적었다. 그 삶은 ‘매일 12시간 이상 근무하기’ ‘꾸지람 듣기’ ‘자책하기’ ‘두려움에 떨기’ ‘하루하루 버티기’ 등이었다. A씨는 이어 박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본 사건의 원인이 단편적으로는 간호사 내 태움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간호사들이 내몰린 근로환경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며 “근본 해결을 위해선 서울아산병원 간호부가 간호사 개개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료 간호사들에게 “용기 내어 목소리를 높여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A씨는 “외부적으로는 간호사 문제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정작 진원지인 우리 병원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불편한 침묵을 깨고 우리가 움직이자”고 적었다.

 

A씨가 쓴 대자보는 박 간호사를 추모하기 위해 매달린 흰 리본을 병원 측이 떼어낸 그다음 날 붙여졌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간호사연대 회원 5~6명은 2월26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육교에 하얀 리본을 매달았으나, 병원 측에서 3시간 만에 떼어냈다. 천을 일일이 찢어 만든 리본이었다. 길게 찢긴 하얀 천마다 박 간호사를 추모하고 병원의 태움 문화를 비판하는 글귀가 적혔다. ‘선생님의 못다한 꿈 그곳에선 마음 편히’ ‘박선욱 선생님 미안합니다’ ‘태움 OUT’ ‘개인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의 잘못’ 등이었다. 모두 손으로 쓴 글씨였다.

 

그러나 2월27일 오전 7시에 확인해 보니 리본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측에서 떼어낸 것이었다. 병원 홍보실은 “항의가 들어와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앞에 ‘죽음’과 같은 부정적 표현이 쓰인 것이 불편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면서 “리본을 매단 사람들에게 이동을 요구하려 했으나 누군지 몰라 새벽 3시까지 지켜보다 결국 떼어냈다”고 말했다. 신고를 한 사람의 소속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리본을 매단 간호사연대 회원 중 한 명은 “간호사연대가 주최하는 추모집회 포스터도 붙였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간호사연대가 주도했다고 추론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병원 측으로부터) 연락 온 건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직원들은 그들이 리본을 달았다는 걸 몰랐던 상황”이라면서 “알았다면 직원들이 새벽 3시까지 육교 위에 서 있진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추모 물결을 방해하려던 것은 아니며 병원 측도 동료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육교에는 고 박선욱 간호사의 입사 동료가 쓴 대자보가 붙어 있다. © 시사저널 입수자료


 

“우리가 나서자” 광화문에서 집회

 

이후 간호사연대 회원 일부는 서울아산병원 측으로부터 리본을 돌려받아 2월28일 다시 매달았다. 색동천을 구해 흰 리본뿐 아니라 형형색색의 리본을 수놓기도 했다. 같은 날 대자보도 함께 걸렸다. 2월27일 밤새 내린 비로 리본은 흠뻑 젖었지만, 박 간호사를 향한 까만 문구는 그대로였다. ‘행복한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당신의 눈물은 이제 제 몫입니다’ 등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병원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의 움직임은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고 박선욱 간호사와 같은 시기에 인천의 종합병원으로 입사한 신규 간호사 B씨는 리본 사태에 대해 “동료 간호사의 죽음보다 병원의 이미지가 먼저였다는 말 아니냐”면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 동료의 목숨을 너무 작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B씨는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간호사연대가 3월3일 광화문역 앞에서 주최하는 집회다. 간호사연대는 이날 신규 간호사 태움 근절 재발방지대책, 국가적 차원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등과 더불어 “박 간호사 명예 회복을 위한 정의로운 진상조사”를 외쳤다.

 

7만여 명의 국민이 한마음으로 모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문재인 대통령님 간호사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와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자살 사건 진상규명해 주세요’ 등 두 게시물이 3월2일 현재 최다 추천 청원 목록 7번째와 14번째에 올랐다. 각각 서명 인원 4만271명과 3만1584명을 돌파했다.

 

정치권에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2월27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간호 인력을 확충하고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보다 앞선 2월25일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신입직원 교육 중 폭행·협박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일명 ‘태움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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