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늘고 있는 ‘주례 없는 결혼식’ 유감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1 14:19
  • 호수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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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노총각이 지난 주말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 올해 한국 나이로 마흔여섯. 신부는 열두 살 아래 띠동갑을 만났으니 이만하면 대박(?)이다. 노총각의 결혼식을 가까이 지켜보는 과정에서 결혼식 시장에 새로이 등장한 관행들을 접하자니 한편으로는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요즘 신부들은 ‘스드메’(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와 메이크업의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를 패키지 상품으로 구입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신랑들이 ‘상견례 후 프러포즈’ 이벤트를 당연시한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결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양가 부모님 허락 없이는 결혼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니, 젊은 세대의 ‘웃픈’ 현실이 실감 나기도 한다.

 

© 사진=Pixabay


한데 정작 놀라웠던 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택하는 신랑·신부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예전엔 당연히 신랑 쪽에서 명사(名士)를 모시거나 은사(恩師)님께 부탁드렸지만, 요즘은 주례 모시는 일 자체가 번거롭고 부담스러워지면서 예식장에 소속된 전문 주례를 모시거나 아예 주례 없이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원로 교수님들 모시고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마침 결혼식 주례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모두 제자 주례 서는 걸 기쁜 마음으로 수락해 온 분들이셨는데, 점차 주례를 거절하고 있다는 사연을 털어놓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는 신랑 친구 중 한 녀석이 주례 모시는 일을 전담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결혼식장에 도착하면 신랑이 사례금이라며 봉투만 삐죽 내밀며 인사를 꾸벅하고는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덕분에 신랑과 신부의 가족·친지·친구들로 북적대는 결혼식장에서 주례 역할을 끝내고 나면, 낯선 이들 틈에서 어찌 처신해야 좋을지 뻘쭘했던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난 후 가능한 한 주례 자리를 피하기 시작하셨다는 게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의 신랑·신부들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주례를 찾아뵙고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주례의 덕담도 들으며 잘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관행이었건만, 언젠가부터 경비실에 선물만 맡겨 놓고 가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감지덕지, 이제는 안면 바꾸고 입 씻는 제자 녀석들을 보며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불편한 마음에 주례 부탁이 오면 손사래를 치게 되셨다는 게다. 아마도 ‘주위에 이혼 부부들이 많은 걸 보고 백년해로할 자신이 없어 그러나 보다’ 농담도 하셨지만 표정에 씁쓸함을 숨기진 않으셨다.

 

일찍이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2인 관계야말로 그 어떤 관계보다 깨지기 쉽고 상처받기 쉬우며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안고 있음을 간파했다. 부부 관계도 예외가 아닌 만큼, 대부분 사회에서 부부 관계를 공식화하는 혼인의례를 수행하고 있고 결혼 관계에 안정성을 부여하고자 (결혼을) 제도화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부부 관계를 정식으로 공식화하는 그 자리에 어른인 주례 역할이 사라지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큰 듯하다. 사회에서 어른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가족에서도 어른의 자리가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 결혼의례에 상징적으로 표출되고 있음 아니겠는지. 신랑·신부가 결혼식의 실제 주인공으로 부상하면서 고리타분한 주례사 대신 재미와 재기(才氣)가 넘치는 이벤트로 채워지고 있음도 의미심장하다. 전통사회 결혼이 개인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는 가문의 중대사였다면, 오늘날의 결혼은 전적으로 개인사가 되고 만 현실의 반영 아니겠는지.

 

그럼에도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이대로 가다간 조상님들 기억하며 새해를 맞는 설날의 의미가 그저 반가운 연휴로 기억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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