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왕따 논란으로 얼룩진 빙판에 국민들 분노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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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불공정성에 분개하는데, 女팀추월 대표팀은 여전히 진실게임

"힘든 훈련을 같이 소화하다 보면 (선수들간에) 저절로 끈끈해져요."​​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2월20일 여자 3000m 계주에서 올림픽 사상 6번째 금메달을 또 목에 걸었다. 계주팀으로 출전한 김아랑 선수는 경기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독보적인 팀조직력의 비결'을 묻자 "함께 힘든 훈련을 소화하다보면 팀워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답했다. 팀 경기에 있어서 팀원 간의 호흡과 신뢰는 중요하다. 김 선수의 말처럼 탄탄한 팀워크는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이 '불화' 논란에 휩쌓였다. 2월19일 경기 직후 박지우(왼쪽 첫번째), 김보름(왼쪽 두번째) 뒤로 노선영이 앉아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자 3000m 계주팀이 하나된 호흡으로 금빛 질주를 선보인 반면, 산산조각난 팀워크로 질타를 받고 있는 올림픽 대표팀이 있다. 여자 팀추월 팀이다. 2월19일 여자 팀추월 경기와 20일 긴급기자회견 이후 연일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급기야 19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팀추월 대표팀 선수로 뛴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한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랐다. 국민 청원은 ​해당 글이 올라온 지 불과 ​하루 만에 30만 건을 넘어섰으며, 21일 오후1시 현재 총 48만8733명​의 청원으로 최다 추천 청원글로 올라있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 자격박탈' 국민 청원 올라

 

빙판 위의 사건이 이렇게까지 전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논란은 강릉 오벌에서 열린 팀추월 ​준준결승 경기에서 시작됐다. 김보름(25)-박지우(20)-노선영(29) 선수로 구성된 한국팀은 이 경기에서 3분03초76으로 골인하며 8개 팀 중 7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 경기를 본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경기 결과가 아니었다. 

 

결승선에 각각 1, 2번 주자로 나란히 들어온 김보름과 박지우는 마지막 주자였던 노선영보다 한참 앞선 상태였다. 팀추월은 마지막 세 번째 주자의 기록으로 성적을 매기기 때문​에 뒤처지는 선수와 호흡을 맞추며 마지막 선수의 기록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자 팀추월 경기에선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체력이 떨어진 동료를 버려두다시피 한 레이스였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김보름과 박지우는 마지막 주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대신, 고개를 들어 전광판에 찍힌 자신들의 기록을 확인했다. 

 

경기 후 고개를 떨군 채 자책하는 듯한 노선영 선수 곁에 함께 질주한 팀원은 없었다. 혼자 앉아 있는 노선영을 위로한 사람은 네덜란드 출신의 보프 더 용 코치였다. ​

 

경기 과정과 결과 모두 좋지 않았던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것은 경기 직후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였다. 마지막 주자 노선영에게 경기의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과 인터뷰 태도가 문제가 됐다. 동료애를 버린 듯한 모습에 비난이 쏟아졌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단에 '김보름 인터뷰'가 줄곧 떴다.

 

여론이 악화되자 ​20일 ​대표팀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 선수가 긴급기자회견을 열였다. 기자회견에서 백감독과 김보름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렇다. 팀추월 준준결승의 전략은 노선영의 의사 표시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었으며, 노선영이 김보름과 박지우의 속도를 따라가겠다고 밝혀 작전이 수정됐다는 것이다. 김보름은 경기장의 함성이 너무 커서 자신과 노선영의 간격이 떨어진 것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기자회견 직후 노선영은 S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순서에 대해) 내가 직접 말한 적이 없다. 전날까지 내가 (김보름과 박지우 사이의) 2번으로 들어가는 거였다"고 했다. 감독의 진술과는 엇갈린 그의 말에 논란은 도리어 확산되고 있다. 이제 여자 팀추월전에서 시작된 논란은 진실게임 공방으로 번져가고 있다. 

 

2월1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에서 한국의 김보름(앞줄 왼쪽부터), 박지우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기록을 살피고 있다. 그 뒤로 노선영이 결승선을 향해 역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빙판 위에서 보인 엇갈린 호흡이 그저 우연이 아니란 것이 분명해져가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대한빙상연맹 내에 만연한 편가르기 구조가 초래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정 선수 밀어주기'와 같은 고질적 병폐가 터져나온 것이란 분석이다. 연맹의 규정 해석 실책으로 노선영이 평창 올림픽행에 실패할 뻔했던 것을 지적하며 연맹의 행정 착오와 선수 관리 실패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준 '불공정성'에 논란 심화

 

결국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 링크 안팎에서 보여준 분열된 모습과 불공정성이다. 실제로 경기 과정과 그 이후 보여준 대표팀의 모습 속에서 '따돌림' 기류를 감지해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경기장 내에서 노선영은 김보름·박지우와 늘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장 밖에서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회견에서 김보름은 "(노선영과는) 방도 다르고 해서 19일 준준결승 뒤에도 따로 얘기를 나눈 것은 없다"고 했다. 이전부터 세 선수 중 노선영만 따로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백 감독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노선영도 SBS와 인터뷰에서 "선수들과 경기 전후에 대화한 적도 없다. 훈련도 따로했다.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말했다. 

 

진위를 떠나 한국 대표팀의 팀워크가 큰 타격을 입은 가운데, 노선영은 여자 팀추월 7·8위 결정전에 출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오늘(21일) 올림픽 마지막 레이스에 나선다. 선수 구성에 변화 없이 김보름·​박지우·​노선영으로 구성된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저녁 8시54분부터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폴란드와 팀추월 7·8위 결정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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