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학교 짓겠단 네팔 아이들과의 약속 지킨다”
  • 노진섭 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1 11:28
  • 호수 147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홍길 대장 인터뷰 "평생 자연 속에서 살다간 산악인으로 기억되었으면"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2007년 12월 남극대륙 빈슨매시프(4897m) 등정을 마지막으로 고산 등반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매년 네팔을 찾는다. 그곳 아이들을 위해 16개 학교를 짓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 약속은 엄 대장이 과거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때와 관련이 있다. 그는 1985년 에베레스트에 처음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이듬해 재도전할 때, 셰르파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좁고 깊은 틈)로 떨어져 사망했다. 그 셰르파가 살던 마을 팡보체엔 홀어머니와 결혼 3개월 된 아내만 남았다. 그 가족에게 셰르파의 죽음을 알릴 때 엄 대장은 꺽꺽 울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 © 시사저널 고성준

 

네팔에 학교를 짓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무엇인가.

 

“히말라야 중턱(약 4000m)에 자리한 그 마을은 에베레스트 등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1988년 삼수 만에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할 때도, 2007년 히말라야 마지막 등반(로체샤르) 때도 그 마을을 거쳤다. 그 마을을 지날 때면 그 셰르파의 죽음이 떠올랐다. 훗날 그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곳 아이들은 5000m 이상에 위치한 학교까지 1시간 남짓 걸어 다닌다. 그래서 히말라야 16좌 등반의 의미를 담아 팡보체 등 네팔 곳곳에 16개 학교를 짓기로 했다.”

 

 

학교 설립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그 문제를 지인들과 상의한 결과, 모금하려면 재단이 필요했다. 우연히 2007년 말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에서 나에게 특별공로상을 줬다. 그때 받은 상금 5000만원이 재단을 설립하는 쌈짓돈이 됐다. 2008년 5월28일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했지만, 정작 네팔에 학교를 지을 돈은 없었다. 재단을 중심으로 모인 지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2009년 5월5일 팡보체에 학교 설립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심상사성(心想事成)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간절히 바라니까 돈이 모였다. 그래서 2010년 5월 1호 학교를 설립했다.”

 

 

16개 학교를 언제 다 짓나. 

 

“처음부터 16개 학교 설립 기금을 모아 시작할 순 없었다. 일단 1호 학교를 지으니까 2호, 3호 학교를 위한 돈이 들어왔다. 여러 기업의 도움으로 현재 15호 학교가 공사 중이다. 마지막 16호 학교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까지 한데 모아 교육타운을 만들 계획이다.”

 

 

네팔에 고산지대가 많아서 공사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 그 마을 사람들은 학교 설립 계획을 반신반의했다. 큰돈이 필요한 데다 고지대까지 물자 수송이 어렵기 때문이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로 산골짜기에 자재를 운반하면 다시 사람이나 소가 3일 동안 그 자재를 이고 져서 날라야 했다. 한 NGO 단체가 식수 시설을 짓겠다고 했다가 자재 운반 문제 때문에 포기했을 정도다. 공사 진척은 더뎠고, 공사 책임자는 공사비를 빼돌렸다. 긍정적으로 간절히 바라면 일이 풀린다는 것을 학교를 설립하면서도 체험했다.”

 

 

16개 학교를 다 지은 후 계획은 무엇인가.

 

“16개 학교는 16좌 등반을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여건이 되면 학교를 더 지을 생각이다. 또 학교만 지어주고 관리하지 않으면 2~3년 후 폐교처럼 될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학교 관리도 할 것이다.”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평생 산과 자연 속에서 생을 살다간 산악인으로 기억되면 바랄 게 없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